온 세상이 하얗다. 첫눈은 원래 온 듯 안 온 듯 아쉽게 내리는데, 이번 첫눈은 존재감이 확실한 첫눈이었다. 함박눈이 하루종일 끝도 없이 내리고 그다음 날에도 또 눈이 왔다. 도로 사정은 안중에도 없이,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났다. 온 동네 아이들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첫눈을 만끽한다. 두껍게 쌓인 하얀 눈 위에 누워도 보고, 아이들이 힘을 합쳐도 굴리기 힘들 만큼 큰 눈덩이도 만든다. 가지각색 눈집게로 눈오리, 눈하트, 눈곰, 눈토끼, 눈캐릭터 등 다양하게 찍어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무장한 아가들은 동글동글 걸어 다니는 인형 같다. 엄마아빠가 끌어주는 썰매에 앉아 난생 첫 스릴을 즐겨보기도 한다. 신이 난 아이들 옆에는 엄마아빠들이 추위에 떨며 고생이다. 그래도 해맑은 얼굴로 눈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추워도 참을 수밖에.
신난 아이들은 아쉽겠지만, (어른들에겐 다행히도) 눈이 그쳤다. 눈이 미쳐 녹기도 전에 영하로 추워진 날씨에 바닥은 꽁꽁 얼어붙어 울퉁불퉁 얼음길이 되었다.
"뛰지 마! 넘어질라!"
앞서 뛰어가는 아이에게 엄마는 외친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얼어버린 길 위로 마구 달려간다. 얼어버린 눈 위만 골라서 간다. 아이는 대단한 모험가가 된 양 이리저리 뛰어간다. 넘어질 듯 말 듯 뒤뚱대면서도 균형을 잡으며 걷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 한참을 앞서가다 뒤돌아 본 아이는 엄마를 보고 씩 웃는다.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는 얼굴에 어찌 안 웃으랴.
빙판길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눈이 녹은 곳만 골라 걷다가, 문득 아이의 해맑음과 약동이 부러운 날이었다.
여담. 처음 그린 그림에는 눈사람이 모자만 쓰고 있었는데, 아이가 그림을 보더니 목도리랑 장갑도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에 대한 기준이 높은 둘째 녀석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급 모자랑 장갑 추가. 음, 더 낫긴 하네. 고맙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