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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보물들입니다.

우리 만남은 쉽지 않았어

by 빛나다

큰아이가 태어났을 때 몸무게가 1.2킬로그램. 30주 미숙아였다.


28주 태아 정기검진 차 산부인과에 방문했고 초음파 검사 중 폐수종이라는 진단명으로,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내 아이를 받아줄 의사 선생님이 없다는 말과 함께 당시 선생님이 소개해준 지역의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를 마친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생존율이 50대 50이라 말했고, 그 자리에서 나는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그때 선생님은 말했다.


"왜 우는 거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때부터였을까? 큰 아이가 퇴원하고 몇 번의 무호흡증으로 응급처치를 하는 순간에도 나는 아이의 아픔 앞에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


나는 바로 분만실에 입원했다. 아이가 자가호흡이 가능한 몸무게가 적어도 2킬로그램 이상은 되어야 수술(제왕절개)을 할 수 있어 그 몸무게가 될 때까지 치료를 하고, 치료 중 진통이 오면 바로 수술실로 들어가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치료는, 산모는 마취하지 않고(아이한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태아를 마취시킨 후 폐에 차 있는 물을 주사기로 빼내는 시술이었다.

나는 치료실 침대에 누웠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몇 분이 드러난 내 복부에 소독을 한 후 주사기 바늘을 이용해 우선 태아를 마취시켰다. 그런 다음 시술이 시작되었다.

태아의 폐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주사 바늘을 복부에 놓았다. 아무리 태아가 마취된 상태였어도 양수에 둘러싸인 아이의 움직임은 어찌할 수 없어 일곱 번, 여덟 번의 주삿바늘이 내 복부 안을

오갔다.

그때마다 목을 타고 치밀어 오르는 통증을 입술을 물어가며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혹시라도 내가 아프다고 신음이라도 한다면 내 아이가 그걸 듣고 살겠다는 용기를 잃어버릴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술이 끝나고 선생님은 두께가 두껍고 긴 주사기 몇 개를 보여줬다. 주사기 안에는 누런 물이 가득 차 있었고 선생님은 그것이 아이의 폐에 차 있던 물이라고 했다.


이제 1킬로그램 언저리 몸무게를 가진 아기인데, 그런 아기한테 저 누런 물이 어디서 그렇게 나오는 걸까? 누군가가 날카로운 칼로 내 가슴을 계속해서 찌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분만실에 누워 있는데 아기가 움직인다. 내게 안심하라고 토닥여주는 것 같아 나도 아기에게 속삭였다.


"우리 꼭 만나자"


아기의 폐수종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는 날부터 완치되었을 때까지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쓰다 보니 전문용어의 경우는 당시 제가 이해했던 대로 적었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조건 선생님이 하시는 대로 믿고 따랐고, 제가 뭘 잘못해서 아이가 이렇게 아프게 된 건지에 대한 죄책감은 접어 두었습니다.


저는 그저 하나만 생각했고, 그에 대한 확신만 가졌어요.


"내 아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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