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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다 Apr 28. 2024

그렇지 뭐~

개운하게 아침잠을 깨고 기지개를 시원하게 해 주고는 이부자리를 정돈 후 말끔하게 씻고 어제저녁 미리 생각해 둔 출근 복장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봄과 여름 사이 시원한 바람이 볼과 목선을 타며 지나가고, 걷는 두 다리는 가볍게 앞으로 나아간다. 얼마 전까지 싸늘했던 아침 공기에 저항하지 못한 채로 그저 서 있기만 한 나무들이 누그러진 공기 온도를 알아채고 힘을 내어 가지를 뻗고, 뻗은 자리에 푸른 이파리들을 자라게 하는 모습을 보니 불현듯 오늘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것만 같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힘차게 발돋움 해 어제보다 이른 출근 시간을 만난다.

전날 정돈했던 책상 위 메모지와 볼펜들은 흐트러짐 없이 줄을 맞추고 있고 그 옆에는 오늘의 중요한 일정이 적힌 탁상달력이 말없이 내가 우선 뭘 해야 할지 알려주고 있다. 그럼 나는 머릿속에서 오늘의 업무 진행 사항을 그림 그리듯이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진하게 덧 그린 다음 색을 칠해가며 완성되는 걸 보게 된다.


'좋아. 이렇게만 하면 완벽하겠어.'


바로 작업을 위해 모니터와 키보드를 바짝 가까이 대고 손을 내미는데 띠롱, 띠롱 메신저 하나.


'급히 파악해야 할 사항입니다. 힘드시겠지만 오늘까지 부탁드립니다.'


뭐 이것쯤이야 하고 자신 있게 발을 들이는데

메신저 발신자가 왜 '힘드시겠지만'이란 말을 썼는지 곧 이해가 되고 나의 일정 그림은 점점 색이 옅어지고 도로 백지상태로 돌아가는 게 보이고 만다.


출근길은 참 좋았는데... 여지없이 여느 날과 같네. 하. 하. 하.

...

에효~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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