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단상

나의 슬픈 강박적 사랑에 대하여

피우지 못한 아름다운 작은 씨앗들에 대하여

by 수필가 박신영
안다. 이젠 나도 안다.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이 정도만 알아도 정말 많이 깨우친 거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었는데
이제 이렇게 인정할 줄도 안다


수년 전 알량한 사랑을 스스로 깨뜨리고 만 후, 깨뜨린 것이 나를 참 많이 지탱해오던 것이었음을 안 후 죽도록 힘든 시간들을 꽤 오래 보냈더랬다. 지극히 기쁘고 찬란하던 3개월을 후딱 보낸 후엔, 죽도록 아픈 이후 3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20여년 전 스무살 즈음에 내 이런 상황을 예언한 친구가 있었다. 한참 나를 좇던 친구, 어느날 공중전화를 통해 그럼 내게 반지를 사줄래 라고 말했다. 잠시의 침묵 끝에 돌아온 답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다. "너는 우리가 시작하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할거야. 똑같은 일상을 보내게 될 거야. 지금에서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거야"

친구의 답이 의아했다. 그렇게 나를 쫓더니 이제 생각이 바뀌었나. 그냥 그렇게 거절의 뜻으로 알아들었다. 그리고 전혀 대수롭진 않았다. 그저 뜬금없던 답에 의아할 뿐이었다.

그 후로 20년을 훌쩍 지나온 후 그 아이의 말을 깨닫는다. 아, 사랑. 참 별게 아닌데. 마음의 빛이 될지언정 그게 마음과 일상을 잡아먹어서는 안될 터인데.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태양보다 더 뜨거웠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온기가 아니라 열기가 되어 활활 다 태워버리고 말았다. 그 아이는 내게서 일상과 양립할 수 없을 정도의 불꽃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 때.


내 강박적 사랑에 똑같이 행하지 않음에 격하게 화를 내고 혼자 분노하다가 이별을 고하고 사랑을 산산조각 낸 후, 결국 산산조각낸 것이 다름 아닌 내 마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수없이 울었다. 그 옆에 있어주지 못하였음에 한없이 미안했다. -대체 당시의 나야. 더 어떻게 해야 했다는 거니. 참 대책없던 나였으니.-


내 심장에 내 스스로 칼을 꽂은 후 내가 이겼다며 기뻐했다. 몰랐다. 세상 모든 것에 다 이기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은 져주는 것. 이 경우엔 그것이 진정 이기는 것이라는 걸. 나를 살리는 일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 좀. 좀 달라졌으려나 했더니 아직 나는 활화산이다. 대책없고 천지 구분 모르는 활화산이다. 아아 정말. 너무 어렵다.

그래서 난 20년 전 그 현명한 친구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우리가 사랑을 한다고 하여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거야. 그다지 바뀌는 것 없는 일상을 살게 될거야. 그러나 마음 속에 빛이 하나 생기게 될 거야. "


그리고 예쁘게 피우지 못했던 나의 장미꽃들도 떠올린다. 친구와 나의 몽우리. 그와 나의 몽우리. 세상에 못다피운 수많은 크고 작은 꽃송이들을... 강하고 운좋은 사람들만 크게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거라고... 생각할 때.


기억하자.


Just remember in the winter far beneath the bitter snows

Lies the seed

That with the sun's love

In the spring

Becomes the rose.


《The Rose 가사, 작사: Amanda Mcb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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