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아보는 나의 어린일기 #9
초등학교 6학년 때 첫 휴대폰으로 애니콜 폴더폰을 갖게 되었다. 통신사에서 어린이용으로 만든 '알요금제'를 쓰면서 문자 한 통에 몇 알, 전화 몇 분에 몇 알을 소진했기 때문에 굉장히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문자 한 통에 90Byte 정도의 단문만 쓸 수 있었고, 그걸 넘어가면 MMS로 전환되어 추가 요금이 부가됐기 때문에 문자 하나를 쓸 때 고민을 거듭해서 썼던 기억이 난다.
이듬해 여름에 삼성전자의 갤럭시S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왔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에게 스마트폰이란 것은 엄청난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한 학년에 3~5명 정도만 그 휴대폰을 갖고 있어서 너도나도 한 번 써보겠다고 달려들었다. 내 자그마한 폴더폰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향키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그 때부터 요금이 미친듯이 불어서 절대 누르면 안되는 걸로 생각했는데, 이 폰은 항상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니. 같은 해에 카카오톡이 출시되었다길래 보아하니 문자 길이도 상관없고, 몇 통을 쓰던 마치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낼 수 있어서 이게 바로 혁신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음 해에는 갤럭시S2가 나오고 카카오톡 게임인 애니팡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혁신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 일기에서 내가 비교한 것은 1950년대와 2000년대 같다. 빗자루에서 로봇청소기로, 가마솥에서 전기 밥솥으로 변화하는데 걸린 시간은 못해도 30~50년은 될 것이다. 그 이전 인류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반 세기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기계화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그 이후로는 점점 가속도가 붙어 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다. 스마트폰 갤럭시S의 출시는 고작 12년 전의 일이다. 3G 데이터를 겨우 쓰던 당시에 비해 12년 후인 지금은 5G망을 사용하고, 화면이 접히는 기술이 생겨 휴대폰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폰과 맥북을 사용하는 나는 아이폰에서 복사한 텍스트나 이미지를 맥북에서 바로 붙여 작업을 하고, 3G 데이터 속도로는 꿈꿀 수 없었던 라이브 방송이 없어서는 안될 핵심 콘텐츠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우리는 이 빠른 속도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몇백명이 넘는 단체 대화방에서도 끊김 없이 실제 대화를 하듯 메시지가 오가고,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인플루언서의 라이브 방송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며 댓글을 쉴새없이 남긴다. 조금이라도 늦게 전송되거나 로딩이 안되면 바로 와이파이를 끊고 데이터를 연결하거나 새로고침을 눌러댄다. 12년 전만 해도 휴대폰이 인터넷에 연결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연결이 되어있지 않으면 답답한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전 카카오 블랙아웃 사태 때 이 사실을 한 번 더 뼈저리게 느꼈다. 매 분, 매 초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던 국민 메신저가 갑자기 먹통이 되니 국가적인 혼란이 왔다. 문자나 전화 등 다른 대체 연락 수단들이 있음에도 카톡으로 실시간 대화처럼 메시지를 주고 받던 사람들은 단체 멘붕에 빠졌다. 그 뿐만 아니라 카카오는 워낙 서비스의 수가 많다보니, 결제, 음악감상, 교통 등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도 많은 지장이 생겼다. 나 역시 카카오맵, 택시, 페이, 심지어 브런치까지 모든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으로서 갑자기 일상에 큰 조각이 떨어져 나간듯한 느낌을 받았다. 친구들과의 약속에 나가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대체 맵을 켜서 길을 찾아야했고, 급한대로 만나기로 한 친구들에게는 문자를 보냈다.
그 난리를 겪으니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디지털 의존적인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비단 카카오 서비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휴대폰으로 처리하고 있다. 교통, 쇼핑, 뱅킹서비스, 운동과 건강, 사진, 영화보기, 책읽기, 식당 예약... 이 모든 일을 우리 손바닥만한 기기의 디스플레이로 처리하고 있다. 12년 만에 생활이 이렇게나 바뀐다고? 이제는 스마트폰 이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신기하다. 처음에 얘기한 것처럼 문자 한 통에 내용을 꽉꽉 눌러담고, 그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건 정말 해봐야 내장된 게임을 하거나 사진과 영상을 좀 찍는 정도였는데 말이다. 그 시절에는 지하철 앱 없이 어떻게 시간표를 봤으며 지도 앱 없이 어떻게 골목골목 길을 찾아갔던걸까. 일기 마지막에 적힌 것처럼 '옛날엔 도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나도 그 때를 살았지만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제는 초연결이 너무나 당연해졌다.
이토록 빠른 성장 속도 덕에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음은 분명하다. 모든 걸 휴대폰 하나로 처리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특히 친구들과 모임을 한 후 더치페이 기능으로 수금이나 송금을 할 때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냥 친구의 휴대폰 화면 속 숫자가 내 화면으로 옮겨왔을 뿐인데, 친구의 자산 중 일부가 나한테 온거라니. 이거 진짜인가? 실물 화폐가 없는데 화면 속 내 계좌 잔고는 진짜 돈인가? 이 모든 것이 허상은 아닌가... (한 가지 웃긴 점은 내가 핀테크 회사 직원이라는 것.)
하지만 이 편리함이 때로는 우리를 조여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인 간에 흔한 다툼 사유로 '연락'이 자리잡은지 오래다. 한 사람은 틈날 때마다 연락을 하고 시시각각 무슨 일이 있는지 얘기하는 타입인데 상대방은 메시지를 쌓아놨다가 한꺼번에 답을 한다거나, 술자리에 갔을 때 연락이 두절되거나 해서 싸우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부모님 세대는 이걸 신기해 하신다. 도대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냐, 그럼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냐. 그러게 말이에요, 편지 부쳐서 연애하던 시절에는 서로 연락이 닿지 않는 시간 동안 쌓여있던 일들을 만나서 밤새도록 얘기했을텐데. 이렇게 생각하면 연락을 자주 안해서, 혹은 너무 많이해서 생기는 모든 갈등이 예전에는 없었던 유형의, 어쩌면 전혀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는 휴대폰에 뜨는 모든 알림을 바로바로 읽어야 하는 사람이다. 메시지 답장은 늘 빠르게 하고, 메일도 그 때 그 때 바로 읽는다. 숫자가 쌓여있는 걸 견딜 수가 없다. 휴대폰이나 노트북 업데이트도 나오자마자 바로 해버린다. 어느날 문득 그런 나 스스로가 피곤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내 말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데 나만 혼자 바로 대답하는 것도 피곤하고, 화면 속에 갇혀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걸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생각해보다 모든 알림을 다 꺼버렸다. 숫자가 쌓인 걸 볼 수 없다면 숫자 표시를 안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알림을 끄고 산지 3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숫자가 없어도 앱을 들락날락 하며 메시지가 와있는지 확인하는 건 아직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마음은 좀 가벼워졌다. 잠금화면에 아무것도 뜨지 않으니 속이 편하다. 원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보낸 메시지가 화면에 떠서 바로 읽게 되었지만, 지금은 내가 원할 때 들어가서 확인이 가능하니 조금이나마 디지털 디톡스에 성공한 기분이다.
이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를 넘어 쓰나미 격으로 과한 정보가 많다. 온라인 콘텐츠 양산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내가 보고싶지 않은 불필요한 정보들까지 머리 속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다. 이런 것에 피로감을 느낄 때마다 가끔 스마트폰을 쓰지 않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생긴다. 저 일기를 쓰던 2005년의 나는 집집마다 있었던 집전화로 친구네에 전화를 걸어 "OO인데, OO 좀 바꿔주세요" 해서 친구랑 놀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전학을 가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날 때면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생각해 뒀다가 만나면 이야기로 회포를 풀었는데. 혹자는 과거에 대한 미화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초연결 시대의 역효과로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디지털 고독과 피로에서 벗어나려면 가끔은 과거로의 회귀가 필요한 듯하다. 가끔 휴대폰과 전자기기를 멀리하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