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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라떼 Oct 30. 2022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금 돌아보는 나의 어린일기 #10

유난히 어른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20대 후반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어른스럽다는 말은 아니고, 인생 3회차 같다는 말을 듣고있다. 신입사원일 때도 사소한 실수에는 흔들리지 않거나, 또래 동료들은 다들 부장님 맞춰드리기를 힘들어하는데 나는 정말 거침없이 대했다. 내가 2020년 2월에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때가 딱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유행하고 MZ세대라는 말이 퍼지기 시작할 때였다. 난 개인적으로는 윗세대에게 주입된 그 생각들이 오히려 우리에 대한 편견을 낳기도 했다고 보는데, 어쨌든 그 때문에 처음 입사했을 때 오히려 윗분들이 나를 대할 때 굉장히 조심하셨다. 하지만 나는 MZ 치고는 꼰대스러움에 상당히 무딘 편이라 얼마 후에는 거의 70년대 생 동년배 같다고 하는 분도 계셨다.


서론이 길었다. '어른'이라는 같은 주제로 쓴 일기 두 편이 있어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다. 11살의 나는 어른스럽다는 말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듣기 좋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나보다. 그리고 한 살이라도 더 젊어보이고 싶어하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2006. 3. 13. / 2006. 8. 3.  11살 때의 일기

학창시절 어른들한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로 "공부할 때가 제일 좋은거야"가 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지원해주는 부모님이 계시고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나쁘지 않긴 한데, 그래도 내 나름의 힘듦이 있는데! 공부가 쉽다니요. 대학교 3학년 때 인턴으로 처음 회사란 곳에 갔을 때도 팀원분들이 "이거 끝나면 다시 돌아갈 학교가 있는 학생이라는게 부럽네요", "그 때가 제일 좋으니 많이 즐겨두세요" 등의 말을 자주 했었다. 물론 대학교 정말 재밌긴 한데, 어린 내 눈에는 돈도 벌고 스스로 멋지게 일을 하며 삶을 개척해 나가는 회사원들이 더 멋져보였다. 인턴으로 회사에서 일하는 지금이 더 좋은데, 학교로 돌아가면 또 재미없는 시험 공부랑 과제에 허덕여야 하잖아요! - 라고 답하면 아직 어려서 몰라서 그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직 고작 스스로 밥벌이를 하기 시작한지 3년밖에 안된 사회초년생이지만 당시 어른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일단 인생은 내가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들로 이루어져 있다. 회사 일도 그렇고 월급을 받아서 관리하고 투자하는 것도, 밖에 나가 노는 것도, 연애를 하는 것도, 사소한 집안일도 모두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 것 투성이다. 더이상 보호자가 나를 대변해서 일을 처리해주지 않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나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달라진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결혼이나 출산을 하게 된다면 매일의 선택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이고, 책임져야 하는 범위도 방대해질 것이다. 적어도 30년 가까이 더 해야 하는 사회생활 속에서도 나이가 들수록 내가 짊어지고 풀어야 할 과제들의 난이도는 점점 올라갈 것. 과연 어른이 된다는 게 내가 어렸을 적 꿈꿨던 것처럼 멋지고 좋은 일일까?




미래의 나는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컨트롤이 가능한 현재에 집중해보면, 위의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어른의 삶을 살고 있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내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 일기에서 어른이 되면 '진정한 자유'가 생긴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어른이 되었으니 내 삶의 방향키는 내가 잡고 움직일 수 있다. 사회적 규제, 경제적 여건 등 많은 외부적 요인들로 모든 것을 하고싶은 대로 할 수는 없지만 그 장애물을 어떻게 피해서 더 멋진 삶의 여정을 개척할 것인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어른이기에 누릴 수 있는 이 자유를 어찌하면 더 멋지게 활용할 수 있을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끊임없는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앞으로의 여정에 좋은 밑거름이기도 하다. 이런 마인드로 살다보니 하루하루 힘든 일도 있지만 오히려 즐겁다. 게임 퀘스트를 깨나가는 기분이랄까? 레벨업을 했을 때 다음 퀘스트에서 내 캐릭터가 어떤 모습일지를 기대하는 것처럼, 오늘의 내가 이런 행동을 하고 선택을 했을 때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는 맛이 있다. (게임처럼 목숨이 여러개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번도 학생인 후배들에게 아직 그 때가 좋았다는 말을 한 적은 없다. 물론 그 때는 그 때 나름대로 좋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말한 것처럼 공부할 때가 좋은 것도 맞고, 재밌게 놀며 공부할 수 있는 대학생 때가 좋은 것도 맞다. 하지만 지금이 그 때에 비해 안좋냐고 묻는다면 그건 절대 아니다. 과거의 나는 그 때 그 상황에서 행복했던 것이고, 지금의 나는 또 다른 이유들로 만족하며 살아간다. 이게 바로 자존감이 높은 어른이 되기 위한 중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어서 앞으로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더 다부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10년, 20년 후의 나 혹은 지금 나보다 연륜있는 분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20대 후반의 패기라고 앞으로는 힘들어질거라고 할 수 있지만, 그 패기마저도 오늘의 내가 행복하고 멋진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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