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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Aug 07. 2023

다시 한번 물 마시기

반려 텀블러 만들기


사무실에 출근할 땐 호기롭게 텀블러를 들고 다녔다. 텀블러로 물을 먹으면 왠지 건강하고 멋진 사람이 되는것 같았다. 여름에는 차가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을 넣어 부지런히 마셨다. 하지만 요즘은 텀블러를 잊고 산다.




건강하자고 다짐했던 마음은 어디 가고 해이해졌다. 여름이라 더 물을 자주 마셔줘야 하는데 전보다 더 안 마시고 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면 물 생각이 나는데 정작 맘 놓고 마시지 못한다. 저녁에 물을 마시면 자다 깨서 화장실을 가기 때문이다. 몸 순환이 잘 안돼 고생을 한 적이 있다. 염증반응으로 알러지가 나기도 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은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도록 물을 조금씩 자주 마셔야 한다고 하셨다. 물 마시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지만 다시 물 먹는 습관을 들이려니 쉽지 않았다.


텀블러를 카페에 들고 가면 할인을 해줘서 들고 다닌 적도 있다. 가끔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는데 텀블러에 담으면 다 못마셔도 남은 커피를 가져올 수도 있어 일석이조였다. 그런데 커피도 거의 마시지 않게 되면서 이마저도 하지 않게 되었다. 식당에 갈 때도 물이 늘 있으니 텀블러가 필요하지 않았다. 어쩌다 텀블러를 가지고 가도 그대로 들고 오기 일쑤였다.


며칠 전 오랜만에 사이렌 오더로 주문을 했다. 음료가 안 나와서 확인했더니 매장컵이 아니라 텀블러 사용으로 주문한 것을 알았다. 텀블러를 주문데스크에 내지 않았으니 음료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카페에 가도 텀블러를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예전의 패기 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하면 다시 물을 잘 마실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차나 각종 가루의 힘을 빌려볼까 싶지만 물은 물로만 마셔야 한다고 한다. 차나 커피를 마시면 이뇨작으로 몸의 수분을 더 뺏아가 오히려 물을 더 마셔 채워줘야 한다. 그냥 물도 안 마시는데 더 마실 순 없다. 이러다 물을 영영 잘 못 마시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늘 함께 하기로 한 반려 텀블러


얼른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텀블러를 꺼냈다. 물 뜨는 시간을 일어나서 한 번, 점심을 먹고 나서 한 번, 저녁을 먹기 전에 한 번, 총 3번으로 정하고 다음 물을 뜨러 가기 전까지 다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 무겁더라도 외출 시 텀블러를 들고 나가기로 했다. 항상 나와 함께 하는 반려 텀블러로 만드는 것이다. 텀블러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부끄럽지만 이름도 붙여줬다. 물이니까 '수분이'가 어떨까 한다.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나만 부를거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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