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다이어리
나는 다이어리를 사용한다. 다이어리를 사용하는 이유는 계획을 체크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보다 단순히 메모를 하기 위해서이다. 메모를 하고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지운다. 또다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생겨나지만 일단 메모를 하고 나면 조금 후련해진다.
메모를 하면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체크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 메모는 넘쳐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생각이 많다. 그 생각 속에는 일정이나 처리해야 할 중요한 것들도 있지만 오늘 구매한 것과 내일 구매해야 할 것, 점심에 먹을 메뉴, 갑자기 생각난 음악, 좋은 카페 등 아주 사소한 것들이 많다. 메모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빼고 추가하면서 아예 다시 쓰기도 한다. 그렇게 메모지들이 하나씩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잘 제본된 다이어리는 찢기도 애매하고 추가하기도 불편해서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다이어리는 대학생 때부터 사용했다. 포켓에 들어갈만한 작은 수첩 스타일부터 카페에서 커피를 구매할 때마다 받은 적립금으로 받은 대중적인 스타일, 문구점에 갔다가 디자인에 홀딱 반해서 산 유니크한 스타일까지 많은 다이어리가 나를 거쳐갔다. 연초에는 새것이라는 신선함 때문에 열심히 빽빽하게 채워 사용했지만 한 해의 반이 넘어가면서 쓴 곳보다 빈 곳이 더 늘어나게 되었고 나중에는 거의 보지도 않았다. 연말이 되면 때도 타지 않은, 새것 같은 다이어리를 보면서 자괴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하지만 메모를 안 한 건 아니었다. A4용지나 막 쓰는 스프링 노트에 메모를 하고 낱장으로 들고 다녔다. 다이어리의 특성상 무겁다 보니 월간계획도 2~3개월 분만 따로 떼서 들고 다닌 적이 많다.
그러다 작년에 타공 다이어리를 알게 되었다. 원래 알고 있는 다이어리 스타일이었지만 예전에는 업무용으로 나온 것이 많아 디자인이 한정적이어서 아예 관심도 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타공 다이어리가 인기를 얻게 되었고 커버 디자인도, 내지도 다양해졌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발견하고 다이어리를 구매했다. 그때는 연말도 연초도 아닌 9월이었다. 이렇게 어중간한 시기에도 구매할 수 있는 건 언제든 원하는 내지를 끼웠다 뺄 수 있는 타공 다이어리만의 장점 때문이다. 나처럼 메모를 자주 하는 경우 메모지 정리를 자주 해줘야 하는데 이때도 쉽게 빼고 추가할 수 있는 타공 다이어리의 장점이 빛을 발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열두달 월간계획 내지만 추가로 구매해서 사용하고 있다. 나머지 뒷부분은 노트를 계속 채워 사용하고 있다. 모자라면 A4용지를 잘라 타공을 해서 쓰기도 한다. 거의 일 년 정도 사용해 보니 꽤 만족스럽다. 다른 다이어리와 마찬가지로 무거워서 잘 들고 다니지 않지만 필요한 부분만 꺼내서 썼다가 다시 끼워두면 되니 편하다. 그리고 매년 다이어리를 사지 않아도 되니 고민을 할 필요도 없고 환경적인 면에서도 좋다. 내게 맞는 다이어리를 이제라도 찾았으니 참 다행이다. 아직 한 장씩 손에 잡히는 대로 메모하는 습관이 남아있어 A4용지가 책상 여기저기에 굴러다니지만 한 번씩 타공을 해서 다이어리에 정리한다. 얼마 전 스프링만 별도로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이 나왔다고 한다. 제2의 메모지 뭉치가 나올까 봐 두렵다. 자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