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재판, 드디어 끝났다

가정법원 소년재판을 하고 나서

by N잡러

“아무리 동기가 선하더라도 폭력은 안 된다.”


1월 12일 서울 가정법원에 출석하라는 소환장이 왔습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폭행)’의 사건명이었습니다. 일명 집단폭행인 거죠.


재판을 기다리며 복도에 앉아있는데 초등학생도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훔쳤고 신고를 해서 재판을 받게 됐다고 합니다. 만 14세 미만이면 소년 재판에 바로 오고, 만 14세 이상이면 검찰로 가서 기소유예가 되면 그걸로 끝이지만 기소가 돼서 죄가 무거우면 형사 법원으로, 죄가 가벼우면 소년재판으로 온다고 지난번 부모 교육받을 때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우리 앞에 재판을 받은 또 다른 학생은 부모가 아닌 할머니와 온 것 같았습니다. 재판장에 들어간 학생은 나오지 않고 법원 직원이 학생 소지품 일부를 주며 보호기관으로 바로 갔다고 알려줬습니다. 황망해하던 할머니를 보며 혹시라도 아들도 저렇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됐습니다.


우리 차례가 돼서 아이들과 함께 들어가니, 판사는 사건에 대해 읽으며 맞는지 확인하고 “세 집 중 한 집은 재산이 많네요. 같이 합의 볼 생각하지 말고 집안의 경제사정에 따라 아이들을 위해 각자 1:1로 합의를 보세요.”라고 하더군요. ‘피해자는 맞았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냐, 가해자는 여러 명이니 서로 의지도 되고 의논도 하고 했을 거 아니냐, 그러니 위안도 됐을 거’라는 데 어이가 없었습니다. 가해자 부모는 힘들어야 하는 건 당연한 건가요. 오히려 마음 위안을 받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건데, 피해자의 억지스러운 과한 합의금은 전혀 문제 삼지 않고, 동기나 폭행의 정도는 고려사항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재판에 그것도 가해자 부모로 와 있으니 그저 잘못했고 선처를 바란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교육받는 동안 졸았던 다른 아이에게 화를 내며 반성하지 않았다며 잠이 오더냐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도 피해자와 만나 제대로 서로의 심정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으니 심리전문가 등과 함께 그런 시간을 마련할 거라며 화해 조정 절차를 거치라며 심의를 마쳤습니다.


이젠 기다림의 시간이 익숙할 만도 한데 그렇지 않더군요. 마음이 안정이 안 되니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500조각 퍼즐을 하루에 두 개씩 완성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감정조절이 안 돼서 울컥울컥 했습니다.


다시 시간이 지나고 2월 29일 3시에 다시 법정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이 왔습니다. 당연히 피해자와 만나는 것인 줄 알고 갔는데, 지난번과 같은 법정으로 들어갔습니다. 지난번 판사가 아닌 다른 판사가 심리를 진행했습니다. 지난번엔 다 같이 들어갔는데 이번엔 한 명씩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그동안 합의가 됐는지 물어보고 아들에게도 지금의 심경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아들의 잘못했다는 대답을 듣고, 판사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아무리 동기가 선하더라도 폭력은 안 된다.”였습니다.


법정에서 나와서 아들은 판사의 그 말 한마디가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다 만회해줬다며 웃었습니다. 법원의 처분은 1호 보호자 등에게 감호 위탁(6개월), 3호 사회봉사 40시간을 받았습니다. 1년의 가까운 시간이 지나 판결을 받고 나니 이젠 정말 끝이구나 싶으며 그동안 마음 졸였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인 듯 가벼운 처분이 감사했습니다. 아들이 걱정한 소년 분류심사원에 들어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너무 다행이었습니다. 6개월 동안 보호자의 지도하에 아무 일없이 지내야 하고 만약 그 기간 중에 다른 일이 생기면 가중처벌을 받게 되는 겁니다. 우리 부부는 아들에게 ‘고생했다’며 어떤 일에도 관련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귀가 시간도 철저히 지키게 했습니다. 아들도 저의 규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졸업 전에 판결이 나서 천만다행이었습니다. 학생생활기록부에도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말에 다시 감사했습니다.


이제 정말 사회봉사만 받으면 모든 게 끝이다 했는데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그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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