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 Nov 15. 2019

자신감 뿜뿜의 아이러니

못생겨도 자신 있다

          초급반은 시커멓고, 고급반은 현란하다. 수영복 이야기다. 

어두운 색 원피스.
민망하니 3부 정도의 반신 수영복.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이려면 옆라인에 다른 컬러 포인트가 들어갈 것.
무난하게 등은 U자형으로.
가격은 저렴하게.                                                                                                      

          초보의 수영복 고르는 나만의 조건이랄까. 일단 언제 그만둘지 알 수 없는 겁쟁이 초보는 비싼 걸 살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다른 항목은 최대한 튀지 않고 두꺼운 체형을 조금이라도 슬림하게 보이는 색으로 노출이 적은 수영복을 고르는 것이다. 
             수영 수업 첫날 이런 고민을 나만 한 게 아니라는 듯이 다들 비슷한 스타일로 등장했다. 하지만 수영모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고급반 수영복 못지않은 다양한 색깔들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닌다. 나는 가장 저렴이를 고르다 보니 수영복+수경+수모 세트를 구매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다른 수강생들은 달랐다. 노란 오리, 보라색 반짝이, 초급인데 해운대 북극곰 수영 대회를 비롯한 갖가지 색깔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을 모자의 특징으로 지칭하거나 구별한다. 
               발가벗은 몸을 보이기에는 목욕탕이 최고다. 수영장 탈의실과 샤워실은 조금 더 조심스럽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지라 왠지 남의 체형을 아닌척하며 관찰하게 된다. 수영복은 샤워실에서 몸을 씻은 뒤에 착용해야 한다. 사전 정보로는 수영복과 몸에 거품을 충분히 내어 입으면 아무리 코딱지만 한 수영복도 몸에 쏙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나만 버거운 건가...' 이러는 와중에도 허벅다리에 장미 문신이 있는 늘씬한 여자를 곁눈질하고 있다. 좀 지나고 보니 그 누구도 내 몸에 관심 두지 않고 뭐라 하지 않는데 나 혼자 의식하고, 걱정했다.
             수모 착용은 내 못생김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평소 머릿발로 그나마 자신감 가지고 있는데 까만색 수모로 머리카락을 다 말아 넣어 버리니 내 얼굴이 낯설다. 처음 보는 사람 같다. 평소 모자도 안 쓰는데 어쩔 수 없는 머리카락 없는 동그란 얼굴이란 정말, 못났다. 
                마지막으로 수경을 끼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게 뭐라고 검은색 수경을 끼는 순간 내 시선의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못생겨진다. 그래서 별 거리낌이 없다. 허리와 어깨가 펴지고 고개도 자연스럽게 세워진다.
            놀랍게도 제일 못생김을 확인하는 순간, 온몸에서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내 눈에 어떤 렌즈를 넣느냐가 내 마음을 움직인다. 마음이 움직이니 자세가 달라졌다. 몸매보다, 얼굴보다 쓸데없는 걱정이 못났다. 
          어떤 날은 회색 반짝이 수영모자의 "언니, 머리 긴 모습이 훨씬 나아요!"라는 말에 또 울컥하기도 한다.      

이전 04화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음~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