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의 늙은 소는 눈물을 흘렸을까

by 이상현

소의 눈물을 본 적이 있나요? 하품 후 흐르는 눈곱 낀 눈물 말고, 정말 슬픔 속에서 흐르는 눈물 말입니다.

강아지의 미소를 본 적은요? 정말 즐거워서 웃음 짓는 미소를.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있지요. 늙은 소와 할아버지의 오랜 우정과 삶, 그리고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서 할아버지는 인생의 긴 시간을 자신의 소와 함께 농사지으며 살아갑니다. 시간이 흘러가며 할아버지도 늙고, 소도 함께 늙어갑니다. 허리가 꼬부라진 할아버지는 점차 힘이 부치십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슬프게 바라보는 소의 흐르는 눈물이 클로즈업되어 화면을 꽉 채우지요.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내놓고 먼저 세상을 떠나는 소의 모습을 할아버지도 하염없이 슬프게 바라봅니다.


몇 년 전 저희 집에 딸이 입양되었습니다. 조그만 그 아이는 말을 못하고 아직도 네 발로 걷습니다. 아, 진짜 여자 아이가 아니고, 저희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 말입니다. 이름이 ‘마음이‘인 이 강아지는 저희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아차리는 저희 집 막내 귀염둥이지요.


어릴 적 개를 골목길에서 만나면 쓰레기통 위에 올라가 그 개가 지나갈 때까지 떨고 있을 정도로 아내는 개를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그런 아내가 아들 둘만 있는 삭막한 저희 가정 분위기를 바꾸고 아이들 정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저의 꼬임에 넘어가 암컷 강아지를 어렵게 구해 키우게 되었지요.


강아지를 키우면서 저희 가정에 한 가지 논쟁이 붙었습니다. 주제는 ‘강아지는 웃는 가‘이었지요. 강아지가 웃는다고 하면 아내는 처음에는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강아지가 웃긴 뭘 웃어.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하며 개에게는 표정이 없다고 아내는 한동안 우겼습니다. 그러나 요즘 강아지에 폭 빠져 있는 그녀는 "얘가 스트레스 받아서 우울해 보여" 혹은 "어 정말 좋은가 보다. 즐거운 표정이네"하며, 강아지의 표정을 읽고 있습니다. 집에 여자라고는 달랑 혼자뿐인 아내는 그 강아지를 자신의 딸처럼 여기며 예뻐하고 있지요. 무뚝뚝한 남편과 아들과는 나눌 수 없는 여성들만의 끈끈한 감정적 연대감을 그녀는 저희 막내딸인 강아지와 나누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지금도 강아지가 웃지 않는 것 같아?”라고 물으면 아내는 대답은 안 하고 강아지를 보며 미소만 짓습니다.


저는 소의 눈물을 믿습니다. 강아지의 미소를 믿는 것처럼. 왜냐하면 포유류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뇌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을 변연계라고 합니다. 파충류의 뇌를 1층이라고 칭한다면, 이 감정의 중추인 변연계는 그 위에 자리 잡고 있어 뇌의 2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충류는 1층에 자리 잡고 있는 본능 중심의 뇌로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어와 같은 파충류에게 감정적 요소는 거의 없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단정 짓는다면 너무 파충류를 무시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포유류와 비교하여 파충류의 상대적 뇌의 분포를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포유류인 애완견과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는 물론 도마뱀과 같은 파충류도 애완동물로 키우기도 하지만, 강아지를 키울 때 가질 수 있는 감정적 교류와는 사뭇 다를 것입니다. 파충류의 1층 뇌와 포유류의 2층 뇌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지요.


그러한 감정적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개를 그렇게도 무서워하고 싫어했던 제 아내도 저희 집 강아지를 자기가 낳은 자식처럼 예뻐하나 봅니다. ‘워낭소리’의 소와 할아버지의 애틋함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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