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둥근달이 가슴속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예전에 마실을 갔다가 늦은 밤 귀가 할 때면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 언덕 위로 보이던 그 보름달은 꿋꿋하게 내 옆을 지키면서 따라오곤 했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동짓달은 음력 11월이고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동지가 있는 달이기도 합니다. 음력 12월은 섣달이라고 하는데 밤공기가 차고 그래서인지 달 기운이 더욱 프레쉬한 느낌을 줍니다. 섣달은 새해의 설이 있는 달이라는 뜻이기도 한데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는 전례력도 보면 12월을 새해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음력 1월에 설을 쇠는 것이 전통이지만 말이지요. 보통 음력이 양력보다 1개월 이상 뒤쳐져 오기 때문에 음력 1월 즉 정월 대보름에도 예전에는 농사 준비를 위해 쥐불놀이 등을 했습니다. 쥐불놀이를 통해 논밭의 마른풀들을 태워 해충 등의 알을 없애 버리는 효과를 거두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효과는 겨울이 추울수록 풍년이 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암튼 요즘 밤길을 걷다 보면 맑고 청명한 보름달을 볼 기회가 많습니다. 특히 겨울 달은 여름 달과는 다르게 고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보통 머리 위에 있는 경우도 흔하지요. 그러 달은 내가 어디에 있어도 나를 찾아다니는 듯합니다. 그런데 달이 주는 느낌은 도회지와 시골이 완전히 다른 것 같습니다. 도회지의 달도 여전히 맑고 크고 청명하긴 한데 그 달에는 정이라고 해야 하나 따뜻함이 없어 보입니다. 아마 달이 없어도 늘 도회지는 환한 불빛 속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느끼셨을지 모르지만 들판 위에 달이나 초가지붕 위에 높이 뜬 달, 혹은 서낭당 느티나무 위에 뜬 달은 왠지 고즈넉하고 따뜻함이 있습니다.
현재의 외교부 장관인 조태열의 부친 조지훈 시인이 쓴 ‘달밤’이라는 시를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순이가 달아나면
기인 담장 위로
달님이 따라오고
분이가 달아나면
기인 담장 밑으로
달님이 따라가고
하늘에 달이야 하나인데…
순이는 달님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분이도 달님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시집 <풀잎단장>. 1952년
이처럼 달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동화 같은 감성을 안겨줍니다. 달이 왜 이런 느낌을 주는 걸까요? 달이 과거 어느 날 지구와 거대 행성의 충돌로 인해 생겨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달은 지구 안의 생명을 만들고 자라게도 합니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와 달의 지구 공전이 유기물의 화합을 도와 많은 생명을 잉태시켰다는 것입니다. 연구 내용들은 탄생의 신비가 바다의 밀물과 썰물 현상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루 두 번 들고 나는 조석으로 밀물과 썰물이 나타나는데 이런 현상이 유기물의 결합과 밀접한 상관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 민족에게는 달과 관련한 많은 생명 축제가 있습니다. 생명축제라는 단어는 제가 쓴 말인데요. 오랜 옛날부터 땅을 비옥하게 만들고 그 땅에서 농작물의 새싹을 틔워내 병충해나 자연재해로부터 굳건히 이겨나가게 하여 수확하고 하늘에 제를 올리는 일련의 과정마다 축제를 벌였는데 우리고 알고 있는 고구려, 옥저, 동예 등 상고시대에서부터 10월 추수 시에 드리는 행사가 보름날 행해진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정월 대보름이나 팔월대보름에도 많은 축제를 벌이고 있습니다. 보름날의 축제 놀이 숫자는 다른 축제날보다 전통적으로 훨씬 더 많습니다. 이 모두가 달의 운행주기와 농사의 주기를 맞춘 것들이 대부분이고 또한 풍년을 기원드리는 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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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달은 측정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서양의 의 월이나 달 즉 month나 moon는 계측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는 mensis와 어원이 비슷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우리도 그럴까요? 일부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달이라는 단어도 측정과 같은 뜻이 있다고 합니다. 또 우리 달은 땅이라 뜻도 포함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땅의 경우 상고시대 ‘아사달’이라는 지명을 본 적이 있으실 듯한데 이 지명의 현대적 해석은 '아침의 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한자의 뜻을 찾아 쓰면 조선이라는 지명 혹은 국명이 되는 것이지요.
측정이라는 뜻의 경우 예전 시골에서 돼지를 사사로이 잡을 때도 거대한 저울에 달아 측정한 후 도살하기도 했는데 이때 저울에 달아보자라는 말을 했는데 이때 ‘달아보다’ 역시 측정하다와 같은 뜻이지요. 쌀이나 콩 등의 수확물을 시장에 내다 팔 때에도 저울에 달아 측정한 후 양을 균등하게 배분해 자루에 담아 시장에 팔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달을 측정하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지요.
서양이나 동양에서 달은 인간의 삶에서 생명 탄생과 노화, 죽음의 길을 달이 초승달부터 그믐에 이르기까지 일정시간 반복됨으로써 생겨나는 것과 일치시켜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고대 국가에서 달을 왕권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달과 주변의 별들이 어쩌면 왕과 백성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달은 유목민들에게 방향을 잡아 주는 역할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