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외곽에는 이민자 밀집 지역이 많다.
그래서 여행 카페나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파리 외곽에 숙소를 잡아도 되는지에 대한 글들,
위험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 섞인 글들이 올라오곤 한다.
나는 주로 파리의 외곽 숙소에서 지낸다.
시내보다 숙소 가격이 저렴하기도 하지만 외곽 동네가 조용하고 한적하기 때문이다.
시내보다 확실히 외곽 동네로 오면 피부색이나 다양한 국가의 출신인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나는 그들이 한 번도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최근엔 7호선 맨 끝 동네에서 지냈었는데 그 지역은 흑인 동네로 유명한 곳이었고
위험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내가 밤늦게 집으로 들어갈 때마다 마주쳤던 흑인들은
항상 나에게 먼저 '봉수아~'라고 인사를 해줬다.
13구의 작고 조용한 동네에서 지낼 때도 내가 매일같이 가서 맥주를 한 아름 사 왔던 슈퍼 주인이
아랍인이었는데 늘 나의 안부를 물어주었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함께 아쉬워했으며
집 앞의 빵집 주인은 나를 보면 항상 밝게 인사를 해주고 하루의 안부를 물었었다.
파리에 '벨빌'이라는 동네가 있다.
'벨'은 아름답다는 뜻이고 '빌'은 동네라는 뜻으로 그곳은 '아름다운 동네'라는 뜻이된다.
하지만 예쁜 동네 이름과는 다르게 어떤 책에서 벨빌은 지하철 출구만 올라가도
들고 있던 핸드폰을 낚아채 갈 만큼 위험한 곳이라고 했고
파리의 지인분은 그곳에서 매춘이 이루어지는데 여성이 지나가면 손을 붙잡고 얼마냐고 물어본다고도 했다.
하지만 호기심에 가봤던 그곳은 젊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파티를 하고 프리마켓을 열며
주말의 오후를 즐기는 곳이었고 동네 주민들이 벼룩시장을 여는 말 그대로 아름답고 한가로운 동네였다.
물론 그 동네에 사는 중국인 여성들이 매춘을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지하철 역을 빠져나오자마자 내 핸드폰을 낚아채가는 사람도 없었고
나를 붙잡고 하룻밤에 얼마냐고 물어본 사람도 없었다.
내가 파리 외곽 동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앙토니'라는 곳이 있다.
그곳은 부촌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당이 있는 2층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아기자기한 동네다.
내가 그쪽에 숙소를 구하겠다고 했을 때 파리의 지인분은 그 동네로 지나가는 외곽 지하철에
흑인들이 많이 타기 때문에 이른 저녁에 들어가도 위험한 사람들이 많다고 만류했다.
물론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라는 것은 아주 잘 안다.
앙토니에서 버스를 타면 7호선 맨 끝 지하철 역이 종점이다.
실제로 그 버스 안에서 동양인은 나뿐이고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온통 흑인들만 있었던 적도 있었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술도 마시고 있었던데다 흑인들의 표정이나 몸짓, 목소리가 컸어서
조금 위축되고 무서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청소년들이었고 아이와 함께 탄 가족들이었고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주부였기에
나에게 어떤 위협을 가할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내가 파리에서 알게 된 홍콩계 프랑스인은 흑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파리의 동역을 지나갈 때
인상을 찌푸리며 나에게 말했다.
"여긴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서 싫어. 흑인들은 항상 문제를 일으켜"
홍콩 출신의 동양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국적이 프랑스라고 해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차별을 받았을 테고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왔을 텐데
그런 그조차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에 대해 그렇게 말을 한다는 것에 조금 실망스러웠다.
물론 파리에는 최악의 우범지대가 있다.
3년 전 7시간 동안 무려 5000발의 총탄을 퍼부었던 테러범이 살고 있던 곳.
'생드니'다.
경찰이나 구급차조차 너무 위험해서 가지 않는 곳이라고 할 정도로 범죄율이 프랑스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흑인이거나 무슬림이다.
우범지대다, 위험하다 라고 말하는 곳의 특징은 그저 단순히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이다.
흑인들이 사는 동네라서 위험해, 중국인들은 매춘을 하고 칼부림을 한다더라,
터키인들이 캣 콜링을 하고 추파를 던진다더라.
그 동네가 위험하다고 들은 이야기들에는 온통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폄하하는 말들 뿐이었다.
그렇다고 생드니같은 위험한 지역에 가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런 일들이 일어났을 수 있고, 나는 그저 운이 좋아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은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그 사람의 피부색이 달라서가 아니라
그저 그 사람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곳들은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은 바로 이방인이다.
이방인인 우리가 그들에게 무섭고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와 피부색이 달라서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를 많이 일으켜서, 그래서 위험하다고 말하기엔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에 눈을 가리고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우리 역시 한국이 아닌 해외에 나가 인종차별을 당할 때도 있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면서도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또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여행에서 어느 정도 경계는 필요하고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편견은 눈과 마음을 멀게 한다.
인종차별보다 무서운 건,
성실히 일상을 살아가는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 보다 무서운 건,
편견을 가진 우리, 이방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