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례 -
1. 밤의 센소지
2. 내가 손을 내밀게
여름밤의 센소지. 1. 밤의 센소지
언젠가 좋아하는 작가가 말했다.
“나는 한 번만 읽고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글, 쉽게 밑줄 칠 수 없는 글, 가볍게 페이지를 휙휙 넘길 수 없는 글, 그럼에도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고스란히 기억으로 남는 저력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실로 그녀의 글은 자신의 바람대로 쓰여 있었다. 가끔은 눈물 나게 와닿다가도, 가끔은 한 번 읽고 뜻을 알 수 없어 갸우뚱했다. 한 번 읽고 나중에 생각이 나서 또 읽었다.
나는 그녀의 글이 좋았다.
비단 그녀의 글만이 아니다. 물 흐르듯이 읽히는 글보다는 처음에는 의중을 정확히 알 수 없다가 마지막에는 마음에 묵직한 한 방을 날리듯 와닿는 글이 좋았다. 그렇다 보니 직접 글을 쓸 때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내고 싶어 했다. 글을 쓴 결과가 봐줄 만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누군가는 반대로 말했다. 읽기 쉬운 글이 가장 가장 좋다고. 이해하기 어렵게 쓴 글은 자기만족일 뿐이고 읽는 사람이 어려워하니 물 흐르듯이 읽혀야 한다고.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두 개의 의견으로 나뉘었지만, 결국 어떠한 글이든 독자 중심으로 쓰는 글이 옳은 것 같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작성하면서 독자의 머릿속에 남을 만한 글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후에는 생각하게 만드는 묵직한 글을 좋아하는 독자, 물 흐르듯이 쉬운 글을 좋아하는 독자 등 취향에 따라 무엇이 좋은 글로 기억에 남느냐가 다를 뿐이다. 글쓰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모두에게 완전한 글도 없다. 조금 더 독자에게 닿으려고, 완전해지려고 노력할 뿐.
얼마 전 마음에 와닿은 글이 있어 필사를 했다. 읽을 때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로 보았는데 필사를 해보니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핵심 문장인 데다가 ‘는’ 하나에 문장의 뉘앙스가 달라질 수 있기에, 글쓴이는 자신의 의견을 최대한 잘 전달하려고 '는'을 넣을지 뺄지 고민했을 것이다. 조금 더 완전한 뜻을 전하기 위해, 조금 더 완전한 글을 쓰기 위해 고심했을 것이다. 만약 글쓴이가 그러지 않았더라도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글뿐만이 아니다. 글이든, 일이든, 인간관계든 완전할 수 없거늘 나는 왜 불완전함에서 조금이라도 탈피하려고 애쓰는 걸까. 과연 불완전함에도 미학이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도쿄에서 가장 불완전한 곳으로 향했다.
‘9월 더운 여름날, 밤의 센소지’로.
센소지로 향하는 입구의 가미나리몬. 그리고 상점 문을 닫은 나카미세도리. 아사쿠사역 3번 출구로 나와 몇 걸음만 나아가면 당신은 붉고 커다란 대제등에 바로 시선을 뺏길 것이다. 도쿄에서 가장 큰 사찰인 센소지(淺草寺) 입구에 해당하는 화려함으로 무장한 가미나리몬(雷門)이 있기 때문이다. ‘벼락의 문’이라는 뜻을 지녔고 불길한 기운을 막아준다는 가미나리몬은 반드시 거쳐 가는 도쿄의 입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받는 관광지다. 이곳을 눈에 담은 사람은 가미나리몬의 잔상이 기억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무게 700kg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로 우리를 압도하는 대제등의 카리스마가 가히 어마어마하니까. 그래서일까? 내국인과 외국인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는 가미나리몬을 낮에 처음 봤을 때, 비로소 도쿄 여행을 시작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도쿄의 입구인 가미나리몬이 웅장하고 묵직한 목소리로 나를 반겨주는 듯했다.
입구 '가미나리몬', 상점가 '나카미세도리(仲見世通り)'를 지나면 사찰 '센소지'가 나온다. 같은 센소지임에도 밤과 낮의 센소지는 뚜렷하게 달랐다. 낮의 센소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유명인을 보는 듯했다. 입구인 가미나리몬과 상점가 나카미세도리, 이곳의 주인공인 센소지는 많은 사랑을 받는 관광지가 어떠한지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도쿄에서 가장 큰 사찰인 데다가 사람도 많았다. 사찰임에도 떠들썩한 축제에 온 듯해 마음이 들떴다.
이 센베이 비닐을 도로에 버리지 마세요. 간장 센베이의 소스가 묻은 손으로 다른 가게 상품을 만지지 않도록 협력 부탁드립니다. 500엔이 채 되지 않는 간장 센베이 비닐에 다른 상점에 민폐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담겨 있을 정도로 센소지 앞 상점가 나카미세도리에는 많은 상점이 서로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고 추구하며 장사를 하고 있다. 상점 한 곳에서 군것질거리를 하나 산 후 알록달록한 기모노를 입은 사람, 교복 차림 학생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걸어 들어갔고, 이윽고 거대한 향로와 함께 센소지 경내가 펼쳐졌다. 센소지에 마련된 제비를 뽑아 자신의 길흉을 점치는 오미쿠지(おみくじ)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단, 가미나리몬에서 센소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없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많은 인파는 각오해 두어야 했다. 낮의 센소지에 사람은 공기처럼 당연하게 존재했다.
그렇다면 밤의 센소지는 어떨까? 도쿄 여행 마지막 밤에 향했다. 낮에 땡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렸던지라 밤에 선선하게 팔에 와닿는 따뜻한 바람이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 기분 좋은 촉감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떠들썩하던 나카미세도리의 상점은 늦은 밤이어서 모두 셔터를 내린 상태. 기모노를 입고 센소지를 수놓는 관광객도 당연히 없었고 센소지로 향하는 조금 어둡고 좁다란 길만이 나를 맞이했다. 센소지에 공기처럼 존재하던 사람들은 많이 줄었고 금발 머리의 외국인 관광객과 몇몇 무리만이 주위 풍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여러 부분이 없었고 낮의 센소지보다 불완전했다. 그럼에도 하나같이 웃는 낯빛인 관광객들. 그 표정에서 안정감과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왜일까?
24시간 개방이지만 너무 으슥하지 않을까, 위험하지는 않을까, 밤에 과연 볼만한 게 있을까, 마치 ‘센소지’라는 거대한 연극이 끝난 것처럼 사람들이 돌아가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이 남아서 마음이 쓸쓸해지지 않을까. 여러 걱정을 안고 간 자신이 무안해질 정도로 밤의 센소지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나를 사찰 안으로, 안으로 이끌었다. 불완전함에도 마음을 은은하게 감싸는 안정적인 느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살이 에는 듯한 겨울바람이 아니라 친구가 팔짱을 끼듯 따뜻하게 살에 부딪치는 여름 바람 덕분에 마음이 이토록 활짝 열리는 것일까?
아니다. 그보다 더- 더- 큰, 나를 안심시키는 안전장치가 있었다. 바로 ‘조명’이었다. 가미나리몬과 센소지를 비추는 주황빛 조명은 센소지를 위해 태어난 듯했다. 센소지 내에서 신쿄(志ん橋, 거리 이름)라고 한자로 적힌 거대한 대제등이 조명을 받아 빛나는 모습, 그 아래 봉납함, 뒤의 검은색과 금색이 동그란 패턴으로 새겨진 벽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우아함까지 느껴졌다.
조명이라는 안전장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불완전하게 보일 수도 있는 센소지 안으로 나를 이끌었다. 괜찮다며, 안심하라며 서서히 나를 끌어들인 밤의 센소지. 그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나는 낮이 아닌 밤의 센소지에 반했다.
밝은 조명.
이것만은 낮의 센소지에 없었다.
불완전하지만 밝은 조명으로 자신을 빛낸 밤의 센소지.
밤의 센소지처럼 불완전한 나에게도
자신을 빛나게 해 줄 밝은 조명이 있을까?
2. 내가 손을 내밀게
밤에 조명으로 빛나는 센소지. 삼십 대 여자, 프리랜서, 미혼, 7년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진 사람. 자신을 불완전하다고 규정짓게 하고 무리 속 섬처럼 느끼게도 만드는 문장들. 하지만 누군가는 밤의 센소지 속 조명처럼 빛나는 문장이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정답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이렇게 존재하기에 쓸 수 있는 글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같은 스터디의 남자 멤버가 2024년이 되었으니 카카오톡 대화방 프로필에 의무적으로 작성하는 나이를 한 살 올려서 적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아서 수정하기 싫지 않냐는 말을 스무 명 남짓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악의는 없었을 거다.
그다음 날 체력 단련을 위해 다니는 헬스장에서 선생님이 나이를 묻길래 말해주었더니 한창 좋을 때라고 했다. 아직 어리니까 이루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다 하라고 해 주었다. 함께 운동하던 여자 수강생은 내가 그 나이로 돌아가면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진심일까? 그곳 수강생 중 미혼은 나 혼자다.
그 주에 단골 미용실에서,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서른 살이 넘으면 정확한 나이가 아닌 ‘말띠예요’, ‘92년생요’처럼 말한다는 걸 SNS에서 봤는데 나도 그렇게 한다며 웃으며 말했다.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도 나와 같은 삼십 대인 줄 알고 말했는데, 알고 보니 이십 대 후반이었다. 함부로 추측해서 미안해요,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 미용실 직원들과 나 중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것 같다.
어제 SNS에서 자신이 스물네 살부터 스물아홉 살까지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마흔 살이 된 지금 생각해 보았을 때 다시 돌아가면 그때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는 영상을 보았다. 그 이유인즉슨 삼십 대가 되어서야 사업을 시작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비로소 알게 되고, 내면적으로 성장하면서 남편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서른 살 이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었다는 부분에 감응해 '좋아요'를 눌렀다. 무서워서 댓글은 보지 못했다. 적어도 그때 결혼했으니 다행이지 지금은 못 한다는 둥, 너를 좋아할 이성이 있겠냐는 둥 비난에 초점을 맞춘 댓글이 있을까 봐.
어딘가에서는 나이가 많고
어딘가에서는 어리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같은 나이의 취급이 이토록 다르다.
나이에 대한 자료와 경험이 축적될수록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부한 말이 진리의 문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위에는 쓸쓸하게도 나와 달리 같은 나이에 ‘엄마’라는 숭고한 역할을 맡은 여자들이 많다.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나이와 위치를 지닌 불완전한 나. 그래도 지금 내가 이렇게 존재하기에 쓸 수 있는 글이 있을 것이다.
규정하기 힘든 불완전한 것이 비단 나이뿐일까.
우리 엄마는 귀에 닳도록 설명해 드려도 프리랜서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셨다. 방구석에 처박혀서 일한다고, 게다가 결혼도 못 한다며 딸 가슴에 걱정이라는 껍데기를 쓴 멍만 새기셨다. 하지만 내 이름이 찍힌 책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골프 동호회 사람들에게 책을 나눠주며 딸이 아파트를 구해 혼자 산다고 이야기했더니 다른 아주머니가 번역가인 데다가 능력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나 보다. 그때부터 엄마의 칼처럼 날 선 말투와 표정이 조금은 둥글어졌다. 엄마는 나의 설명 백 마디보다 주변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늘고 프리랜서를 위한 정책이 나왔다는 소리를 어깨너머로 듣곤 하지만, 아직은 우리 엄마처럼 직장에 나가서 정기적으로 근무하는 사람만을 사회에 적응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프리랜서 번역가가 노트북 앞에 앉아 번역이라는 전쟁터에서 싸우든 말든 관심은 없다. 그저 돈벌이가 되는지 관심을 보이는 호기심 어린 시선만 있을 뿐. 현업에서 일하는 나조차, 평생 번역하고 싶다는 나조차 “열정과 시간을 꽤 들여야 하는 번역가라는 직업이 금액, 시간 면에서 가장 효율성이 있는 직업인가? 이 직업이 나에게는 최선일 수 있지만 모두에게도 최선인가?”라는 질문에 정확히 대답하지 못하니(이러한 질문에 단호하게 답하지 못할 때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다른 누구에게 추천하고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좋은지, 안 좋은지 규정짓기 어려운 불완전한 직업인 것 같다.
그래도 사람들이 프리랜서에게 관심이 없으니, 혹은 잘 모르니 오히려 우리가 더 소리를 내고, 열심히 하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진실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상대방이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질문에 요즘은 최대한 성실하게 대답하고 설명한다. 내 직업의 발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
참 모호하고 불완전한 직업. 안타깝게도 내 주위에 프리랜서는 많지 않다. 그렇기에 오히려 번역을 바라보는 자세는 더욱 진지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렇게 존재하기에 쓸 수 있는 글이 있을 것이다.
헬스장에서 다시 내 나이가 되면 결혼하지 않을 거라던 아주머니는 삼십 대 미혼인 나에게 기혼과 미혼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며, 관심사부터 달라진다며 웃으며 말했다. 동감했지만 그녀의 말은 어쩐지 나를 섬처럼 느끼게 했다. 그녀들과 나는 섞이기 어려운 것인가. 그 무리 속에 얼른 속하지 못하면 불완전한 존재인가. 그곳에서 채찍질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얼른 다수가 속한 저 무리 속에 들어가라고 옥죄이는 듯했다.
하지만 아주머니, 저는 알아요.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을 다니며 당연한 듯이 집단 혹은 무리에 속해 있었지만 완벽하게 행복하지는 않았어요. 심지어 십 대 때 즐거운 것만 눈에 담는 수학여행을 가서도 집단에서는 전혀 재미있지 않았는걸요. 무리에 속한 기쁨보다 서로를 이해해 주는 한 사람과의 교류가 자신을 살아있게 해 주었어요.
다수가 있는 집단에 속했다고 해서 완벽하게 행복하지는 않을 거예요.
어디선가 외로움을 느낄 거예요.
불완전함을 굳이 찾아서 느낄 거예요.
어느 날.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 혼자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밝은 색채라고는 보이지 않는 검은색으로 뒤덮인 나. 나는 아직 불완전해, 불완전해, 불완전해. 사회적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고 일도 불완전하고 가족과도 불완전하고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조차 완벽하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일으킬 때가 많아. 나는 왜 완벽하지 않을까? 아니, 애초에 왜 이런 고민을 할까? 세상에서 먼지와 같은 나는 완벽할 수 없는데 완벽을 갈망하는 것 자체가 웃겨. 나는 어떻게 해야 인생의 지각생이 된 기분, 불완전함으로 점철된 마음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때, 여름밤에 방문한 센소지가 떠올랐다. 이미 하루의 장사를 끝내고 문을 닫은 상점들. 공기처럼 존재하던 사람들도 많이 줄어든 그곳. 완전하지 못한 모습에도 밤의 센소지는 따뜻한 색감의 밝은 조명으로 나를 이끌었다. 비록 자신도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한 나에게 손을 내밀 듯이.
도쿄의 여름밤 센소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펴고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금 멀지 않은 거리에 나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이제야 보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어깨에 작은 손을 살포시 올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
"혼자 둬서 미안해. 힘들었지?
나도 완전하지 못해서,
자신만 돌보느라 바빠서
너에게 공감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줄 몰랐어.
과거의 상처를 지울 순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불완전하다는 생각에
부족하다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꼭 함께 있을게.
꼭 함께 숨 쉴게.
꼭 함께 나아갈게.
모르는 척하지 않을게.
도망가지 않을게.
포기하지 않을게.
너는 정말 아름답고 귀중한 사람이니까…"
인생의 지각생이 된 기분, 불완전함으로 점철된 마음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으로 사는 인생은 불완전한 내가 다른 불완전함을 느끼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에서, 괜찮다고, 지금도 멋지다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시 한번 말해본다.
지금 내가 이렇게 존재하기에 쓸 수 있는 글이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프리랜서 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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