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여행 에세이만 편애해서 읽다가 새해를 맞아 인기 도서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기 계발서를 읽었을 때, 부등호가 일자로 펴지듯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크기가 커졌다.
책: 돈을 좋아하는 자신을 인정하세요.
나: 아… 그래. 돈 좋아하지… 돈이 있어야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영위할 수 있으니까. 돈이 가장 귀중하다고 직접 말한 적은 아직 없지만.
책: 잘 때도 돈을 생기는, 저절로 돈이 생기는 시스템을 구축하세요.
나: 본업인 번역의 순수한 기능만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 다른 일도 찾아봐야 하나?
책: 뇌가 잘 작동하도록 하루에 7시간 이상 자세요.
나: 엇… 바쁠 때 밤을 거의 새우며 일한 적도 많은데…
무작정 ‘노력’하라고 강요하는 책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나? 내가 당시 매일 맞닥뜨리고 풀어나가야 했던 건 컴퓨터 모니터 안의 번역을 기다리는 수많은 일본어였고, 이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고 노력을 쏟아야 무사히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내 업무 해결 속도가 빠르지 않아 확인하고, 재차 확인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고 노력을 쏟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는 책에서 강조한 내용처럼 쉽게 돈을 버는 시스템을 지금까지 구축하지 못했다. 고군분투하면서 돈을 벌었고 일한 만큼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이십 대 때부터 꿈꿔온 프리랜서 번역가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일에만 몰두하고 다른 일은 생각하지 않은 채 이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문제일까?사실 나에게는 번역가가 까만 하늘의 유일하게 빛나는 희망찬 별이더라도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저 조금 반짝일 뿐인, 관심 없는 별일지도 모른다. 당시 유독 바빠서 마음이 지쳐 있던 상태였기에 ‘적게 일하고 많이 벌어라’고 하는 책을 읽고 품이 많이 드는 번역이라는 업무의 효율성에 난생처음 의문이 들었다. ‘이 직업이 과연 최선인가?’ 번아웃 때문에 부린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당신은 자신이 일하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고 생각하는가?
사랑하는 직업에 느낀 씁쓸한 의문을 다른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자신이 일하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입을 모아 말한 것은 잘못된 사회 구조 때문에 일한 만큼 돈을 못 받는 사람도 많고, 여러 이유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 분명 주변을 둘러보면 그랬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 내게 감사하게 찾아온 번역 업무라도 완벽하게 해내야지 무슨 투정이냐. 업무를 대하는 자세는 변함없이 지키되, 자기계발서에서 나온 내용 중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부분은 수용하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친구에게 전했다.
조금 더 생각을 확장해 보겠다. 나는 지금까지 자신의 노(동)력을 일정 이상 쏟아부어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 SNS를 보면 돈을 벌 때도 쿨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와’ 소리 나오게 벌어야(벌은 '척'해야) 주목받는 것 같다. 가끔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해야지', ‘열정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야’라는 말을 듣거나 보면 노력밖에 할 줄 모르는 나는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평소에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인지라 오늘도 아침부터 노력했다고 말 못 할 때가 있을 정도다. 게다가 앞에서 언급했듯 자기 계발서를 보면서도 버티고 노력한 자신이 틀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대놓고 노력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도 노력이라는 주관적이기 그지없는 기다란 끈을 무 자르듯 쉽게 자르거나 느슨하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최고의 번역가가 아니니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용자도 지울 수 없는 컴퓨터 파일처럼 내 머릿속에 내재하여 있으니까. 오늘도 번역가로 살아남고 싶어서 최고가 아니라면 최선이라도 다해야 한다는 말을 무의식중에 되새겼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두 손으로 꽉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 같다.
오모테산도 거리.
그럼에도 노력의 옳고 그름은 타인이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이러한 판단은 도쿄 오모테산도의 거리를 걸으며 할 수 있었다.
도쿄 오모테산도를 걷고 있자면 ‘젊지만 시부이(渋い)’한 배우를 보는 것 같다. ‘시부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분위기를 나타낸 매력적인 단어다. 사전에 검색하면 가장 먼저 떫다는 뜻이 나오지만, 사람에게 차분한 멋이 있는 것, 화려하지 않지만 자신만의 중후한 멋을 뿜어내는 것, 세련된 것이라는 뜻으로도 자주 쓰인다. 주관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배우로는 적당히 무게감이 있으면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송강호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같은 인물이 떠오른다.
오모테산도는 세계적인 명품 숍이 모여 있기도 하지만 요샛말로 힙한 감성이 그득한 곳이기도 하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으며 젊지만 시부이하다. 톡톡 튀는 젊음과 세련된 분위기를 골고루 갖춘 고급스러운 패션 거리, 오모테산도.
오모테산도의 네즈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 스튜디오의 무심하게 놓여 있는 연두색 의자가 보였다. 동그란 조명 밑에서 젊은 사람들이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레스토랑, 벽을 타고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초록빛 나뭇잎과 짙은 다홍빛 벽돌이 조화를 이룬 옷 가게… 오모테산도의 골목 사이사이를 걷기만 해도 젊지만 시부이한 이곳의 매력에 당신 역시 매료되리라. 매력적인 배우가 나온 영화 한 편을 감상하는 듯 어느새 오모테산도의 감성에 취해 조용한 거리를 혼자 걸었다.
네즈 미술관 입구 쪽
2.너한테는 노력해도 아깝지 않아
이후 나는 네즈 미술관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걸려 있는 흐린 노란색의 후리소데(振り袖, 일본 기모노 종류 중 하나. 소매가 긴 것이 특징이다)를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꼼꼼하게 꿰매거나 짜서 만든 옷들이 몇백 년 혹은 몇천 년 전, 그러니까 17세기나 19세기, 더 나아가서는 8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아 만들었다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아름답기 그지없고 섬세한 문양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었고, 염색된 부분도 바라보며 고급스러운 옛 의상의 매력을 흠뻑 느꼈다.
네즈 미술관은 일본을 비롯한 해외의 다양한 작품들을 매번 테마를 바꾸어 전시하는 곳이다. 팸플릿과 여기저기에 적힌 이번 전시회의 제목인 縫と織(자수와 직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수와 직조가 무엇이 다른지 두껍게 쓰인 제목의 글자에 시각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자수와 직조가 무엇이 다른지 눈으로 보고 바로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러한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그들의 기획전에는 빈틈이 없었고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목적이 뚜렷했다.
네즈 미술관 기획전.
한글이 적혀 있던 우에노 공원 내 미술관과 달리 영어와 일본어로만 작품이 설명되어 있었고 촬영은 일체 금지였다. 그렇다 보니 더욱 시각에 집중해 눈으로 부지런히 구경해서 머리에 담는 수밖에 없었다. 어스레한 주황빛 조명이 내리쬐는 전시실에서 작품을 눈에 담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그림에 관한 감상과 설명을 수첩에 쓰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이들도 며칠 내로 끝나는 전시를 최대한 머릿속에 오래 간직하고 싶었으리라.
꿰매고 수놓은 작품 외에도 보석이 잔뜩 박힌 영국 시계, 여러 사람의 시선이 머문 중국 시인 임화정(林和靖)이 붓으로 그린 한 폭의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술관 내 정적은 홀로 서 있던 나의 집중력을 높여주었다. 사실촬영이 어렵고 설명도 한국인에게는 불충분한 네즈 미술관을 유심히 보면서 즐기려면 혼자인 편이 좋았다.
그렇다고 누군가와 함께 네즈 미술관을 방문해도 될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놀랍게도 네즈 미술관은 누군가와 함께하기에도 완벽에 가까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네즈 미술관은 건물 옆에 꽤 크게 자리한 정원과 카페가 있는데, 이곳이 아주 유명하다. 입구에 위치한 달 모양의 돌배(月の石船, 돌로 만든 배 모양의 석조물)를 시작으로 텐진노히바이시(天神の飛梅祠, 돌로 만든 도리이가 세워진 곳) 등이 이어지는 정원은오모테산도라는 젊지만 세련된 도심과 이질적이면서도 무척 잘 어우러지는, 일본 정원의 정취가 담뿍 담겨 있는 곳이었다. 안내도에 휠체어 이용 고객을 위한 통행로까지 표시해 둔 것을 보니 배려심이 느껴져 더욱 마음에 들었다.
도심 속 일본 정원에서 돌계단을 천천히 내려가 보거나 석탑과 깔끔하게 조경된 나무가 자아내는 분위기를 사진으로 담으며 시간을 보냈다. 네즈 미술관의 일본 정원은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었다. 계절, 시간에 따라 빛과 그림자, 뺨을 스치는 바람, 바람에 작게 흔들리는 나뭇잎,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석조물들에서 또 다른 감정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겨울에 방문해도 고즈넉하고 아름다웠지만, 옷깃을 여미게 되는 쌀쌀한 1월보다는 햇살이 밝고 꽃이 활짝 피어나는 3, 4월 봄에 방문하면 더욱 빛나고 매끄러운 추억이 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귀중한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그림 같은 일본 정원을 구경한 후, 네즈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네즈 카페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더욱 좋을 것이다.
미술관 내부는 나 홀로 보기에 아주 적합했지만 외부의 정원은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더 즐겁지 않았을까. 혼자서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 오는 만족감도 분명 존재하니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눈이 호강하는, 안고 있던 시름마저 잊게 되는 풍경을 혼자서 보았을 때 떠오르는 귀중한 사람이 있다는 것 또한 행운이고 행복이며 혼자 여행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다.
네즈 미술관 옆 정원의 일부.
네즈 미술관의 정원에서 나는 그를 떠올렸다. 그는 도쿄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그러니까 이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절망의 심연을 몇 번 겪은 뒤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었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캐리는 빅과의 우연이 몇 번 반복되자 본격적으로 빅과 데이트를 하게 된다. 몇 번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사람을 완벽하게 신뢰할 수는 없으니 어떤 사람인지 의심하고 불안해했지만, 캐리는 결국 도망치지 않고 사막에서 ATV를 타고 달리듯 감정의 격렬한 오르내림을 겪으며 짜릿한 연애를 즐긴다.
마치 캐리처럼 시작부터 이십 대가 아닌 삼십 대였던 이번 연애는, 나이가 들면서 쌓인 경험과 이로 인해 피어난 섣부른 걱정 때문에 연애의 파도에 뛰어들기까지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완전하든, 무섭든, 불안하든, 걱정되든 ‘뛰어든다’는 결론은 결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짜릿하고 따뜻하며 매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나기 전 연락할 때부터 그에게 끌린 나는 만나기 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지어 처음 만나는 날에는 최선을 다해 준비했음에도 너무 긴장되어서, 이를 없애려 냅다 소주를 집에서 두 잔 마시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혼자서 소주를 마시고 첫 만남이라니 부끄럽다. 하지만 7년간 연애했기에 새로운 누군가와 만나는 일 자체가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어느 날, 살이 찔까 봐 라면을 반으로 쪼개고 튀긴 면을 먼저 끓여서 기름을 빼낸 다음, 다른 냄비에 수프를 넣고 다시 끓여서 라면을 먹는다고 했더니 그가 놀란 듯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외적인 모습에 신경을 쓰는 것 외에도 평소에 그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말주변이 부족하지만 최대한 말로, 때로는 글로 표현하려고 애쓴다(그는 자신이 더 많이 표현하고 좋아한다고 주장하지만). 소소하지만 인생에서 쉽게 하지 않았던 행동들이다. 나의 행동에 그는 무리하지 말라며 다정한 말로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노력은 앞서 언급했듯 '최고가 아니라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나의 행동이었다. 무언가 원할 때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모르니까... 연애에서는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후회 없는 노력을 쏟아도 괜찮지 않을까?
문득 이십 대 초반에 연애할 때와 지금 모습이 비교되었다. 상대방에게 취향에 맞는 선물을 받아도 시큰둥하게 독설이나 내뱉던 이십 대 때의 모습이 떠올랐고 혼자서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 근저에는 사랑받은 적이 그다지 없어 베풀 줄 몰랐던 정신적으로 어린 자신이 있었다.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베풀 줄 안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삼십 대가 되기까지 다른 사람들과 견고한 유대감을 쌓으며 사랑받을 기회가 있었고, 이십 대 때보다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지금 연애하면서도 노력할 수 있는 듯하다. 사랑은 한 인간을 성장시킨다.
노력하면 바보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지금 우리 관계에서는 바보가 되는 것이 아쉽지 않았다.
그와 손을 맞잡은 채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기대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최선을 다해 앞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