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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자매는 전을 부친다

김치전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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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가까운 사이도 자주 보지 않으면 어색해지는 법이다. 우리 형제들이 그렇다. 대학시절부터 각자의 둥지를 튼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명절이 아니면 모두 모이기 어려워졌다. 명절이라고 해도 집으로 손님들이 오가고 틈틈이 친척집을 방문하다 보면, 겨우 아침저녁 한두 끼를 다 같이 모여 먹고 뿔뿔이 헤어지기 일쑤였다.


뿐만 아니라, 경상도 출신답게 타고난 무뚝뚝한 성격은 나이가 들면서 모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어 단란하게 이야기 꽃을 피우거나,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뜨거운 형제애를 확인하게 되는 살갑고 닭살 도는 순간들은 이미 가물가물 해졌다. 각자의 형편에 맞춰 띄엄띄엄 집으로 찾아 들어서 엄마에게 저녁상을 여러 번 차리게 하는 불편함을 끼치고, 잠을 자러 들어가기도 애매한 시간에 소파에 걸터앉아 역전의 대합실에 모인 사람들처럼 어색하게 텔레비전을 봤다.


이런 서먹하고 싸늘한 순간을 깨기 위해‘화목’이라는 날카로운 송곳을 뽑아 드는 건 언제나 큰 언니였다. 언니는 우리의 어색함을 쓰러뜨릴 아킬레스 건을 잘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알코올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맥주 한두 잔으로 슬슬 취기가 오른 동생이‘우리가 어릴 때 말이야’하고 옛날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오버가 섞인 언니의 리 액션이 이어졌다. 그리고‘내가 기억하기로는 그래… ’로 번복되는 또 다른 버전의 내 이야기가 바통을 잇고, 맥주잔을 손에 쥔 오빠가 벌떡 일어서 동생의 머리를 과하게 쓰다듬으며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 순간, 우리는 자주 한방에 모여서 놀던 과거의 사이좋은 4남매로 타임 슬립을 하곤 했다.


주말을 끼고 제법 길었던 명절의 끝 날, 오후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언니는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그런 그녀를 눈으로 따라가던 나는 동생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맥주를 사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언니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묵은 김장김치를 꺼내고 걸쭉한 반죽을 만들었다. 오늘의 안주로 선택된 김치전을 위해 나는 양파와 오징어를 재빨리 썰어 준비하고 프라이팬을 꺼내 기름을 둘렸다. 무뚝뚝한 자매의 손으로 뚝딱 만들어진 김치전은 지글지글 고소한 소리를 내며 먹음직스럽게 구워졌다. 어색했던 우리는 군데군데 우리의 손때가 잔뜩 묻은 낡은 식탁 앞에 모여 앉아 맥주잔을 부딪히고 김치전을 먹으며 또 그렇게 타임 슬립을 했다.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 무뚝뚝한 자매의 김치전 – 기억 속에서 시끌벅적거리던 우리를 꺼내며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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