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뭘 입어야 하나? " 옷장 문을 활짝 열고, 그 앞에 10분째 쪼그리고 앉아 빼곡히 걸려있는 옷들을 올려다봤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원망스러워졌다. 어제처럼 초여름 날씨라면, 그냥 얇은 후드티에 헐렁한 청바지를 입으면 그만 일터인데, 오늘처럼 흐리고 제법 쌀쌀한 바람이 강하게 부는 요상한 이런 날씨에는, 도대체 멀 걸치고 나가야 할까? 이걸 입자니 더울 것 같고, 저걸 입자니 추울 것 같았다. 나는 모처럼 점심 약속을 한 광화문으로 가는 김에, 한 시간쯤 일찍 도착해 교보문고에서 느긋하게 책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후다닥 메이크업도 끝냈건만, 스타일이 좋은 것도 아닌 주제에, '옷 고르기'에서 어이없이 30분 이상 까먹고 말았다. 신입 시설, 맨날 똑같은 스타일의 옷만 입던 선배가 있었다.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단벌 신사로 오인받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광고 회사 디자이너의 옷 꼴이 그게 뭐냐고 핀잔을 주고 했는데, 그때마다 선배는 담담하게 말했다. " 이 스타일도 내 루틴이야. 루틴을 정해놓으면 고민이 반으로 줄어. 그 시간에 다른 걸 더 할 수 있거든... " 그 당시에는 무슨 말도 안 되는 개똥철학이냐고 웃어넘겼지만, 오늘 문뜩 선배의 이 이야기가 머릿속에 반짝하고 떠오르며, 그 말의 깊은 속내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선배는 선택해야 할 것들을 최소화함으로써, 하루를 단순하게 만들고, 그것을 소위 삶의 루틴이라고 여긴 것이다. 루틴이 생기면 체계가 생기고, 체계가 생기면 그만큼 여유가 생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나도 외출복 루틴부터 정해야겠다. 무조건 편하고 헐렁한 것으로.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