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금)

by anego emi

" 언니, 나 이 책 좀 빌려 가도 돼? " 월차를 내고 집으로 놀러 온 나의 보물 1호, 대학 후배 H는 커피를 내리는 내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나는 커피를 내리며 '그럼' 하고 짧게 답을 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눈에 들어온 내 책은 어떤 녀석일까 궁금해졌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했다. 책장도 없이 무더기로 쌓아놓은 내 책들을 훑으며, 그녀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했을까? 함께 청춘을 보내고,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동안 인연을 이어가며 알던 내가, 저 책들 속에서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 어 저런 책을 다 읽다니... 의외인걸"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을까...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흐릿한 하늘을 등지고, 그녀는 아이처럼 두발을 쭉 뻗고 책장을 넘기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마치 그림 같다. 그녀가 골라든 책은 러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작가가, 중년이 되어 그 시절 단짝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나는 이야기다.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친구들과의 극적 조우와 삶에 대한 성찰은 감동적이다. 역시, 그녀 다운 선택이다. 그녀와 도란도란 책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그녀와 내가 보이지 않은 그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은 그런 것이다.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같은 스포츠 팀을 응원하는 것과 같고,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는 것은, 응원하는 팀의 승리에 환호성을 지르는 것과 같다. 나는 오래오래 그녀에게 읽을 만한 나를 닮은 책을 빌려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아네고 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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