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그 남자의 감자 샌드위치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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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지는 지루한 문장들과 그리기도 어려운 한문으로 범벅이 된 교육학 개론 수업을 끝으로, 이제 내가 선생님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 남은 건, 한 달 간의 교생실습뿐이었다. 내가 그다지 관심도 흥미도 없는 교직을 전공수업과 병행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이 교생실습이라는 설레는 엔딩이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고교시절 봄날의 깜짝 손님처럼 교실문을 열고, 담임선생님과 함께 들어오는 정장 차림의 교생 선생님이 너무 근사해 보였다. 고등학생인 내가 꿈꾸는 대학생활을 생방송으로 지금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고, 우리의 교복만큼이나 일괄되고 답답한 선생님 스타일이 아닌, 세련되고 감각적인 대학생 스타일을 날마다 우리에게 선보이는 것 같아 두근거렸다. 함께 교직을 이수한 과 동기들은 대부분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있는 남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지만, 난 여학교를 희망했다. 독일어를 가르치는 여학교가 많지 않아 – 여학교는 불어와 일어가 대부분이었다 - 실습을 나갈 곳을 찾는 게 녹녹지는 않았지만, 학교의 도움으로 어렵게 한 곳을 소개받았다.

실습 전에 인사를 간 학교의 교정에는 옅은 분홍빛의 벚꽃이 군데군데 피어나고 있었고, 자주 빛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의 까르륵까르륵 해맑은 웃음소리가 교실마다 터져 나오고 있었다. 실습 첫날, 교무실에서 조회를 끝낸 선생님들은, 교생들이 모인 실습실의 문을 열고 자신의 반과 짝이 된 교생들을 불러냈다. 네 번째로 내 이름이 불렸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 선생님은, 국어를 가르치는 1학년 3반의 담임이었다. 마치 관공서나 은행의 구인 모집 포스터의 메인 모델로 나올 법한 반듯한 인상과 길쭉한 팔다리와 적당히 마른 체격은, 약간은 촌스러울 수도 있는 회색 체크무늬의 양복바지와 미색의 와이셔츠를, 제법 여고 선생님 다운 풋풋한 느낌으로 소화해내고 있었다. 드디어 교실의 문이 열리고 나의 예상대로 학생들은 그때의 나처럼 환호했다.


나는 독어 수업이 없는 날이면 담임인 국어 선생님의 수업을 참관했다. 학생들은 나를 핑계로 10분 빨리 교과서를 덮게 하고, 나에게 두서없는 질문들을 던지고 심지어 노래를 해달라고 생떼를 부리기도 했다. 국어 선생님은 나에게 수업 참관은 교생에게 꼭 필요한 것이니, 앞으로도 시간이 나면 같이 수업에 들어가자고 했다.

아침 조회가 끝난 월요일 아침마다 선생님과 나는 티타임을 가졌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쿠킹포일에 곱게 싼 감자 샌드위치 한 조각을 나에게 건넸다. 으깬 감자에 잘게 다진 계란과 당근, 오이를 넣어 두툼하게 만든 감자 샌드위치는 집에서 직접 만든 듯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오랫동안 동네에서 빵집을 했던 선생님 어머니의 솜씨였다. 커피와 감자 샌드위치를 먹으며 선생님은 나에게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다가 뜬금없이 주말에 뭘 했냐고 묻기도 하고, 취미가 뭐냐거나 최근에 본 영화가 있냐는 등과 같은 지극히 사적인 질문들을 대화 속에 슬쩍 끼워 넣었다. 한 달 간의 실습 기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월요일 아침의 티타임도 오늘 이면 끝이었다.


포근한 햇살과 훨쩍 핀 벚꽃들로 봄기운이 완연해진 월요일 아침, 선생님은 변함없이 감자 샌드위치를 나에게 권하며 커피를 마셨다. 선생님은 5월 초에 떠나게 될 수학여행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주말에 놀러 가면 좋겠다’하고 혼잣말처럼 툭 내뱉다가 무언가 결심을 한 듯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김 선생님, 주말에 뭐해요? 약속 없으면 나랑 같이 산책할래요? 벚꽃이 너무 좋잖아요. 요즘…”순간 한입 베어 문 감자 샌드위치가 턱 하고 목에 걸렸다.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몹시 당황스러웠다. 딴 약속이 있다거나 싫다고 하면 아직도 남은 5일의 시간이 어색하고 불편해질 터이고, 그렇다고 버젓이 있는 남자 친구를 숨기고 이분과 주말의 꽃 길을 걸을 수도 없었다. 나는 우물우물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어쩌죠? 같이 실습을 나온 교생들과 쫑파티 겸 모이기로 했는데…”선생님은 알겠다는 듯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리며 남은 감자 샌드위치를 무덤덤하게 먹었다. 그때 창밖에는 벚꽃비가 한껏 들뜬 봄바람을 타고 보슬보슬 내렸다.


월요일이면 나를 향해 수줍은 고백을 하듯 건넨 선생님의 감자 샌드위치 – 선생님에게 조금씩 흔들리는 내 마음과 함께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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