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기야 어디까지 갈꺼니?
너를 기다리는 시간
너무 멀리 가버릴까봐 안달하는 시간
내꺼 잘 하다가 밥 시간되면 숙제 못한 아이 마냥 똥줄 타는 시간
그래, 밥 정도는 차려놓고 기다려야지.
밥은 먹고 다니냐.
아이와 나는 일생의 가장 위험한 생애주기를 통과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엄마'는 이 시간을 얼마나 잘 버틸 수 있는지 맷집을 키워온 시기라고나 할까. 그만큼 가족구성원의 역대급 쓰나미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꽁꽁 붙들어 매고 쓰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임신도 출산도 글로 배워 한 두 군데쯤은 우습게 펑크가 나있었고 그래도 생존에 가까운 지난 양육을 잘 수행했다고 믿었다. 그 기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냐며 남자들 군대시절 무용담 풀듯 쏟아내는 시간은 솔직히 이제 우습기까지 하다. 그 뒤 얼마나 ‘험한 것’ 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지 겪어보지 않으면 가늠할 수 없다.
나갔다 잠깐 돌아오기도 하는 전두엽의 농간, 아이의 전두엽 공백에 나는 양육에 관한 책을 십 여년 만에 다시 챙겨보기 시작했다. 요즘 사춘기는 나 때랑 다른 건가. 뭐가 그렇게 다를까봐 유난스런 거야. 아니다. 확실히 달랐다.
엄마에게도 다시 공부가 필요했다.
요즘 청소년들의 특징
1. 협소한 인간관계에 몸부림
2. sns중독-보여주는 것에 심취
3. 결핍 없는 시대-금전만능주의
4. 기승전폰!
공부가 끝난 나는 4가지의 특징이 보인다고 혼자 끼적거렸지만 사실은 디지털 중독이 가장 크다. 모든 것은 스마트 폰으로 비롯된 스트레스와 마찰 그리고 우울과 집착으로 귀결된다.
요즘 청소년들은 메시지로 대화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인간관계가 마치 엄청 넓어진 듯 보여도 ‘너 친한 친구 있니?’ 라고 물으면 똑바로 대답을 못한다. 친하다고 할 수 있고 친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 모호한 관계가 도처에 난무하고 정작 반에서는 친구가 없는. 급식실 갈 친구가 없어 점심을 굶기도 하고 도서관에 자주 간다고 ‘찐따’라고 놀림을 당한다. ‘절친 데리고 와바’ 하면 친구는 있는데 ‘절친’은 없다고 한다. 학급인원이 25명 정도고 여자 친구들이 보통 45% 정도 되면 12명 정도가 이성이다. 그 안에서 2-3개의 그룹이 만들어지는 데 들어가지 못하면 ‘은따’가 된다. 학년 초마다 그룹에 들어가려 치열하게 노력하는 여학생들이 많다. 우리애도 그랬다. 엄마가 조금 도움이 될까 좋은 말과 좋은 책을 권하기도 하고 마음을 위로해주는 시간이 길었다. 최근엔 좋아졌다가 다시 2학기가 되니 관계문제가 또 꼬인 모양이다. 기분에 따라, 학교에 안가겠다거나 공부해서 뭐해 이런 소리를 수시로 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아이는 소수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실패로 명명되어지는 학교 안 야만의 사회에서 일부의 아이들은 이렇게 구석탱이로 몰려 다른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 어서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르고 달래고 혼을 내도 도무지 길이 안보여 결국엔 병원과 상담실까지 가보았다.
adhd라고 하였다. 후천적 adhd, 조용한 adhd(내 입장에선 조용하지 않지만) 마음 한 구석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드러지게 집중이 안 되고 충동적이고 괴로운 마음은 병명이 따로 있었구나. 병명이 명확하면 치료도 명확하니까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으니까.
이 adhd는 왜 생겼을까? 핸드폰 때문이었다. 기질의 특성도 약간 있었지만 스마트 폰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거의 집착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sns로 수시로 본인을 표현하고 맘에 안 들면 기술로 왜곡하고 여러 개의 자아를 설정해 부캐 계정을 운영하며 거짓의 삶을 살기도 하고 남과 비교할수록 자존감은 작아졌다. 작지만 큰 세계에선 뭐든지 가능하니깐 아이는 점점 그 속에 빠져 살게 되었다. 목은 거북이처럼 휘고 반짝이던 맑은 눈은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다.
폰이 고장 나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서로의 눈을 보고 오래 이야기 한건 좀 오랜만인 것 같다. 마주보며 천천히 대화를 이어갔고 맛집에 가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우리끼리 평가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폰을 사달라는 요구다. 그것도 최신 아이폰. 아이폰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닥다리이자 아날로그 예찬자인 나에게 15살의 최신 아이폰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되는 일이다.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타일러봐도 먹히질 않는다. 친구들 다 아이폰 가지고 있고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건 그것뿐이라고. 자신처럼 못생긴 아이에게는 아이폰만이 살길이라고 그래야 ‘찐따‘가 아니라고 했다.
일주일을 끙끙 앓고 단호하게 말한 어느 날 아이는 폰 없어서 곧 죽을 것 같다며 집을 나갔다. 방학이라 마음 놓고 있었는데 밤이 다가도록 연락도 안 되고 불안함에 압도당한 밤이 지나갔다. 다음날에 아이의 베이킹수업이 있는지라 작정하고 학원으로 갔다. 여기는 꼭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이는 베이킹을 너무 사랑한다. 역시나 수업을 듣고 팔랑팔랑 아무 일 없는 듯 학원 밖을 걸어 나왔다(애초에 멀리 갈 생각은 아니었구나) 실랑이 끝에 집으로 데리고 와서 결국 중고 아이폰으로 합의를 봤다. 끝까지 안 되는 것도 있다는 있는 것을 알려주려 했는데 요번에도 졌다. 이게 전두엽의 교란이 있는 시기라 요번에 본인이 이기면 본능적으로 아이는 집을 나간다느니 학교를 안 가겠다느니 하면서 본인이 승리한 기억으로 부모를 위협할 것 같았다. 나는 괴로운 싸움의 물꼬를 내가 또 열어 준거라 자책했다.
요번에는 나의 자책과 상심도 아이 못지않다. 나는 마음이 많이 아팠다. 스치고 지나가는 여름의 꿉꿉한 바람에도 참을 수 없이 통증이 느껴졌다. 아이에게 부모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말라고 이야기 할 동력을 상실했다.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책들은 내안에 남아있지 않은 걸까. 나를 지탱해줄 것만 같았던 보석 같은 명문장과 마음을 쓰다듬는 이야기, 그리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그림책들은 8년 동안 서점 주인으로 만나왔던 보호 장치 였다.
엄마노릇을 못한 내가 아이를 더욱 힘들고 병들게 만든 걸까 생각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다. 무너진 마음을 들키지 않아야 하는데 방 한구석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던 나를 아이가 발견했다.
“엄마, 괜찮아?”
나를 안아주는 아이의 몸에서 낯선 온도와 체취가 느껴졌다. 아이의 커다란 몸에 나도 모르게 푹 얼굴을 파묻고 큰소리로 울어버렸다
“엄마, 미안해”
“괜찮을거야”
내가 그랬고, 아이는 물을 한 컵 떠다주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뒤에 작은 쪽지 한 장을 내밀며 다시 들어갔다.
갈등의 끝은 어디일까 어떤 모양의 행복이 찾아오려고 이러는 건지. 나는 쪽지 한장을 받아들고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아이도 나도 분명 이 긴 터널을 나올때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