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인맥을 자랑하는 손오공, 그 스승들을 파헤쳐보자

오공이 배운 필살기들

by 세온


장문주의


드래곤 볼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은 단연 오공과 베지터다. 그러나 둘은 타고난 혈통부터 다르다. 사이어인 종족의 평범한 하급 전사 후손이었던 오공에 비해 베지터는 무려 왕자로 태어났다. 이를 반영하듯 두 사람의 전투력 차이는 어마어마해서, 처음 벌인 일대일 싸움에서 오공은 완벽하게 패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거꾸로 오공이 베지터를 압도하기 시작해, 종국에는 완전히 능가해버린다. 그럴 수 있었던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주요 원인은 바로 스승이라는 존재의 여부다.

타고난 천재이자 엘리트였던 베지터는 아버지인 왕을 제외하면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고, 언제나 혼자서 수련했다. 반면 오공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자기보다 뛰어난 무술가를 사사해왔으며, 동료와 함께 수련하기를 즐겼다.

결과적으로 오공은 이런 관계에서 매우 유용한 기술을 익히고 적재적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는 곧 전투의 승기를 잡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나아가 오공이라는 전사의 레벨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로서 작용했다.

이번 글에서는 드래곤 볼에 등장한 스승들의 면면을 차례로 살펴보고, 그가 전수한 유형과 무형의 비기 중 가장 핵심적인 한 개를 골라 매치해보겠다.



무천도사 - 에네르기파

만화 후반의 말도 안 되게 심해진 파워 인플레이션 때문에 무천도사는 그냥 이빨 빠진 변태 노인네 정도로만 기억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상 오공의 첫 스승은 무천도사이며(그 전에 양 할아버지 손오반이 있었으나 정식으로 결투를 배운 건 무천도사 밑에 들어간 후였다), 의외로 아주 중요한 자질들을 그에게 전수받았다.

무천도사는 우선 전투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닦아주었으며, 늑대소년이나 다름없던 오공에게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화가 끝날 때까지도 멈추지 않고 사용되는 필살기인 ‘에네르기파’를 가르친 장본인이다.

에네르기파는 온몸의 기를 양손에 집중시켜 순간적으로 증폭시키는 기술로, 시전하는 데 별다른 준비나 요건이 필요치 않아 사실상 거의 모든 전투에서 사용되었다. 그리고 무천도사 라인 – 오공, 크리링, 야무치, 오반, 오천 등 – 은 모두 이 기술을 쓸 줄 안다. (심지어 나쁜 놈인 셀까지도...)

효율과 파괴력이 뛰어나다 보니 적에게 입히는 데미지도 아주 크지만, 의외로 이 에네르기파 자체로 적을 완벽히 제거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강력했던 것은 역시 셀을 없애기 위해 초사이어인2 오반이 사용한 에네르기파다.


에, 네, 르, 기, 하며 한마디 한마디를 꾹꾹 씹어뱉는 오반의 모습에서 비장함이 묻어난다. 셀은 여기에 맞서 역시 에네르기파로 응수하지만, 결국 이름처럼 세포까지 소멸되고 만다. 이때 두 거대한 에네르기파의 충돌을 묘사한 작화의 스케일이 웅장하다.


카린 - 선두

카린은 오공에게 아이템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가 준 세 가지 아이템은 초성수, 초신수, 그리고 선두이다.

초성수는 어린 오공이 살인청부업자(무지 나쁜 놈) 타오빠이에게 처절하게 패배한 후 파워업하기 위해 마신 물이며, 초신수는 피콜로 대마왕을 이기기 위해 마신, 숨은 파워를 이끌어내주는 영험한 물이다.


그러나 카린은 이 약수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어쩌면 드래곤 볼 전체에서 가장 귀중하고 희귀한 아이템을 제공했으니 그것이 이름도 유명한 선두다.


초창기 선두의 설정은 이렇게 하나만 먹어도 배부른콩이었으나, 점점 의미가 확대되어 부상을 치료해주는 콩이 되었다.


한 알, 아니 반 알만 먹어도 다 죽어가던 사람이 멀쩡히 살아나고, 모든 부상이 낫고 체력이 원래대로 회복되는 이 마법의 콩은 아마 만화를 본 독자들이라면 한 번쯤은 다 탐냈을 만한 사기템이다. 실제로 이런 음식이나 약이 있다면, 그걸 독점할 수 있다면 부르마 저리가라 할 정도의 부자가 될 것이다. 과학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어서 그렇지.

사실상 카린의 가장 큰 업적이 선두 재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작은 콩은 몇 번이나 정의의 편에 서서 전사들의 생명을 구했다. 또 오공과 베지터는 죽기 직전의 상태에서 살아나면 수십 배로 강해지는 사이어인의 특성을 이용해 일부러 자해하며 수련하기도 하는데, 이것도 선두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전략이었다.

다만 선두는 자연물이다 보니 수요자가 원할 때마다 제때 열리지는 않아서, 오공 일행도 그 덕을 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 베지터와의 첫 전투가 그러했는데 그때 오공은 전신의 뼈가 부서지고도 선두가 없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신 – 정신과 시간의 방

피콜로 대마왕 주니어(우리가 익히 아는 그 피콜로)와 대결을 앞두고 오공은 지구의 신 밑에서 수련했다. 신은 무천도사나 카린처럼 강력한 기술이나 아이템을 전수하지는 않았지만, 전체 만화의 대단원까지 지속된 중요한 배경을 제공했다. 바로 신전이다.


인간 세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으며 일반인들에게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신전은 오공 일행에게 피난처와 휴식처로 기능했다. 그리고 그중 어느 한 곳은 셀 전과 마인부우 전에서 다른 어떤 장소와도 비견될 수 없는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했으니, 정신과 시간의 방이 그곳이다.


정신과 시간의 방은 잘 알려져 있듯 안에서의 1년이 밖에서의 하루와 같은 장소다. 즉 이쪽 세계와는 아예 다른 차원의 시공간이다.

상대조차 하기 어려운 강력한 적을 만났을 때, 오공과 동료들은 이 방을 이용해 단시간에 대단히 큰 폭으로 파워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이 방이 아니었다면 오반이 초사이어인이 되는 건 한참 늦었을 테고, 오천크스가 마인부우를 상대하며 시간을 끌지도 못했을 것이다. 특히 부우 전에서는 이전까지 수련용으로만 쓰이던 이 곳이 뚫려서 결전의 장소가 되어 버리면서, 전개에 한층 긴박감을 더한다.

정신과 시간의 방은 당연히 현실 세계에는 없는 장소이지만 나는 가끔 직장 사무실이 그 방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 안에서의 1시간은 집에서의 대여섯 시간만큼 길기 때문이다.


계왕 – 원기옥

계왕은 오공에게 참으로 다양한 기술을 가르쳤는데, 대표적인 것이 계왕권, 썰렁 개그(?), 그리고 원기옥이다.


계왕권은 신체의 힘을 2배, 3배 식으로 폭발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오공이 초사이어인이 되기 전까지 매번 써먹은 기술이다. 효과가 훌륭하지만 지속 시간이 짧고 몸에 큰 무리를 준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워낙 많은 힘을 소모하기 때문에 계왕권을 쓴 상태에서 적을 후다닥 해치워야 하지만, 상대와 격차가 너무 커서 금방 이기지 못할 때는 체력만 낭비하는 꼴이 된다.

계왕이 가르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역시 원기옥이다. 원기옥은 이제 (특히 인터넷 등지에서) 거의 일상적인 단어로 쓰일 만큼 높은 명성을 자랑한다. 아마 드래곤 볼은 안 봤어도 원기옥은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기옥은 주위의 인간 혹은 생물에게 힘을 조금씩 나누어 받아 거대한 에너지원을 만드는 기술로, 베지터 이후의 전투에서 그야말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게다가 이걸 시전하는 사람은 오공이 유일해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기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력하고 멋있는 무기인 만큼 커다란 핸디캡이 있으니, 바로 주위의 기를 모으는 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또 상대가 너무 강할 경우 튕겨내거나 버텨낼 수도 있다. 그래서 파괴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원기옥의 성공률은 의외로 그다지 높지 않다.

오공이 원기옥을 시도한 결과는 다음의 세 가지다.

베지터의 지구 침공 시 사용 → 실패
프리더와 싸울 때 사용 → 실패
마인부우와 싸울 때 사용 → 성공

이렇게 원기옥은 3분의 1, 30프로 정도의 성공률을 보였다. 유일한 성공인 마인부우에게 선사한 원기옥은 전 지구인의 체력을 대부분(!) 뽑아내어 보탠, 원작 만화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에너지볼이었다.


원기옥의 또다른 독특한 점은 ‘마음이 착한 사람은 받아칠 수 있다’ 는 것이다. 이 말은 악인은 원기옥을 튕겨내거나 막을 수는 있어도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도로 쳐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나쁜 놈 시절의 베지터와 싸울 때 오공이 만든 원기옥을 베지터가 피해버리자, 바로 뒤에 있던 오반이 위험에 처했던 순간이 있다. 그때 오공이 황급히 텔레파시로 메시지를 준 덕분에 착한 오반은 있는 힘껏 원기옥을 받아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정통으로 맞은 베지터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는다.


야트랜드 사람들 – 순간이동

오공의 순간이동 스킬은 상당히 이질적인 재주다. 기본적으로 신체의 힘과 스피드를 이용해 정면승부하는 드래곤 볼의 격투관과 어긋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좀 사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얍삽해 보이기도 한다.

순간이동 역시 오공 말고는 구사하는 사람이 없는, 오공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로 알려져 있다. 그는 셀 전 이후 이 기술을 적재적소에 기가 막히게 사용해 적의 허를 찔렀다.

특히 순간이동이 잘 먹힐 때는 잠깐 나타났다가 금방 도망쳐야 할 때인데, 날아서 도망갔다가는 더 빠른 적에게 잡힐 게 뻔하지만 순간이동은 말 그대로 순간적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도주가 가능해진다.



오공은 이런 식으로 동료들의 목숨을 많이 구했다. 한번 오공이 순간이동으로 데리고 가면 그 뒤엔 다 같이 기를 죽이고 신전에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구 밖의 다른 별이나 저승 세계로도 이동 가능해, 융통성도 뛰어나다.

순간이동은 많은 사람들이 현실 세계에서 제일 쓰고 싶은 기술로 손꼽히기도 한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빨리 움직여야 할 때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는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메타몰 성인 – 퓨전

솔직히 고백하겠다. 나는 어렸을 때 방구석에서 혼자 퓨전 포즈를 연습해 본 적이 있다.


포즈는 요상하지만 이래 봬도 퓨전은 굉장히 효과적이고 강력한 무기다. 체격과 파워가 비슷한 두 사람이 일련의 동작을 취하며 퓨~전! 이라고 외치면 ‘합체’할 수 있는 기술인데, 합체 후 외모는 두 명을 적절히 섞은 모습이고, 파워는 두 명의 힘을 단순히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강해진다.

퓨전에 완벽히 성공한 오천크스


그런데 원작 만화를 기준으로 퓨전을 시도한 인물은 단 두 명, 오천과 트랭크스(합체 후 오천크스) 뿐으로, 이것은 체격과 파워가 비슷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요건 때문이다.

사실 그 조건에 해당하는 커플(?)이 두 쌍 더 있긴 했다. 오공과 베지터, 그리고 오공과 오반이다. 첫 번째 커플은 죽었으면 죽었지 저 괴상한 동작을 할 수는 없다는 베지터의 필사적인 거절로 퓨전이 불발되었다. 그리고 후자는.., 이미 고난을 많이 겪은 찌찌에게 남편과 아들이 합체되는 불행까지 안겨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두 아이 오천과 트랭크스는 어린 나이에 살벌한 싸움에 나서는 처지가 되었지만 둘 다 천재인데다 퓨전의 힘이 너무 강력해, 부우와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며 최종 승리에 기여한다.


계왕신 – 이것저것 모두

여기서 계왕신이라 함은 젊고 힘없는 계왕신 말고, 그의 선배의 선배의 선배의 선배 노계왕신을 말한다.


노계왕신은 드래곤 볼에 나오는 캐릭터가 다 그렇듯이 무천도사 류의, 행실이 가볍고 한심하기 그지없는 할아버지이지만, 의외로 오공 일행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먼저 오반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내어 줌으로써 부우를 한때나마 능가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오공과 베지터가 퓨전 없이 합체할 수 있게 마법 귀걸이를 주었다. 파괴된 지구를 대신해 계왕신계를 격투장(?)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번 죽어 다시 살아날 수 없는 오공에게 자기의 목숨(!)을 주었다.

사실상 이 노계왕신이 없었더라면 부우를 이기고 지구를 구하기란 불가능했을 정도다. 그가 오공의 스승이라고 하기엔 좀 어폐가 있을지 몰라도 귀인인 것만은 확실하기에, 이 리스트의 마지막 주인공으로 다루어 보았다.



지금까지 오공을 가르치거나 핵심적인 도움을 준 일곱 명의 도인(혹은 신)들을 만나보았다. 이들은 파워 면에서는 점점 제자보다 뒤처지게 되지만, 끝까지 든든한 조력자이자 친구로 곁에 남아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지혜를 주어 마지않는다. 대가들의 풍부한 노하우를 그대로 흡수한 오공이 우주 최강의 전사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제 드래곤 볼 매거진도 두 개의 글만을 남겨두고 있다. 마지막 두 편은 대對 사이어인 전, 프리더 전, 마인부우 전의 심층분석으로 장식하고자 한다. 남은 2주 동안 파이팅하기로 스스로를 격려하며 여덟 번째 글을 마치겠다.


(+ 퇴고하다가 중대한 오류가 있어 수정했습니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의 1년은 바깥세계의 일주일이 아닌 하루입니다~저도 어느새 기억이 감퇴했나봅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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