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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온 Mar 18. 2023

우리 집 매트는 마약 매트

이제 물건까지 예찬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어느 거실에나 깔린 것이 있다. 그렇다, 바로 놀이방 매트다. 나는 5년 전, 아이의 100일을 맞으면서 매트를 구매했다.

      

“아빠, 수빈이 100일인데 선물 뭐 없어?”

“뭘 좀 사줄꼬?”

“매트 사는데 좀 보태줘.”     


이렇게 못된 딸래미는 당당하게 친정 아빠의 고혈을 짜내어 자기 딸래미의 매트를 장만했다. 물론 백 퍼센트 손을 벌린 건 아니었다. 내가 고른 매트는 무지 비싼, 그쪽 세계의 브랜드 제품이었으므로.   

   

남편은 내심 중저가의 물건을 사고 싶은 눈치였지만 나는 확고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깔아두어야 한다, 요즘 층간소음 때문에 칼부림까지 나는 거 보지 않았냐, 소재도 안전하고 청소도 쉬운 것으로 해야 한다, 등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고가의 매트를 무려 3장이나 들였다.     


무엇이든 돈 따라간다고, 매트는 비싼 값을 톡톡히 했다. 아이보리와 그레이가 적절히 배합된 심플한 디자인은 거실을 더 따뜻하고 예쁘게 보이게 했고, 도톰하면서 적당한 쿠션감은 절로 몸을 누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그랬다. 푹신함의 정도가 너무 절묘했던 탓에 우리 부부는 매트에 중독되어 버렸다.      


부지런한 분들이 보시기에는 옹색한 변명에 불과하겠지만, 맞벌이의 하루하루는 고되다. 나나 남편이나 저질 체력인 건 매한가지라, 평일에는 번갈아가며 매트에 드러누웠다. 아이와 놀아줄 때도 누워서 놀아줬다. 이것이 진정한 눕육아.. 라고 남편은 말했다.

    

비록 누워서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놀아주긴 했다. 어쨌든 서거나 앉아서 노는 것보다 가늘고 길게 갈 수 있으니 이것도 괜찮은 방식 아니냐며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아이도 이런 우리에게 익숙해져서, 엄마 아빠가 너무 피곤하다고 하면 ‘그럼 누워서 놀아줘!’라고 한다.     


우리 애가 ‘집에 있는 어른들은 원래 다 저렇게 누워서 생활하는 건가 보다’라는 잘못된 지식을 습득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가끔 하지만, 크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되겠거니 생각하며 또 주섬주섬 드러눕는다.     


우리의 마약 매트는 남편의 표현으로는 쫀쫀하게 허리를 잡아준다고 하고, 나의 표현으로는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푹신하지도 않다. 그런 매트에 누워 또다른 중독물질인 극세사 담요를 덮고 아이의 거대 하츄핑 인형이나 포비 인형을 베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1분 안에 잠들기 쌉가능'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 말고도 중독자가 한 명 더 있으니, 바로 남동생이다.     


어제도 동생이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조카와 놀아주겠다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삼촌은 엄마 아빠와 다르게, (즉 더 재미있게) 놀아주기 때문에 아이는 삼촌을 아주 좋아한다. 둘이 매트에서 스케이트 놀이랑 어린이집 놀이를 하는 동안 나는 밀린 설거지를 했다.      


한참을 신나게 놀아주던 동생은 체력이 다했는지 매트 위로 쓰러졌다. 아이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 앉을 기미가 안 보였다. 나는 동생에게 한계가 왔음을 알고 조용히 티비를 틀었다. 아이는 이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엄마로서의 양심과 찰나의 휴식을 맞바꾸었다.     


곧이어 동생이 누운 쪽에서 드르렁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들리더니, 또 얼마 안 있어 잠꼬대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가는 말소리가 들렸다.

“누나야... 여기 진짜 편하다. 진짜 좋다. 일어날 수가 없다...”

동생은 그렇게 중얼대고는 다시 코를 골았다. 그래, 우리 집에 맨날 사는 우리도 좋은데 가끔 오는 너는 오죽하겠냐.

“누나랑 매형이 맨날 널부러져 있는 이유를 알겠제?”

“어... 진짜... 너무 좋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결혼하면 애가 생기기도 전에 매트부터 깔 것 같다.    

 

동생은 그 뒤로도 잠깐씩 깰 때마다 너무 좋다라는 소리를 남발하더니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역시 매트의 위력은 만인 공통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너무 게으른 엄마 아빠의 모습은 보여줘서 좋을 게 없으니, 조금씩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등이 아니라 엉덩이로 앉는 연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려면 등받이가 필요하니 소파에 기대야 하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몸이 기울어지고, 자연스럽게.... 아니다, 안 된다.    

 

언젠가 아이도 본격적으로 공부에 시달릴 때가 오면 지금의 우리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을까? 그때까지도 매트가 남아있다면 집에 오자마자 드러누우려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도 과거를 생각해서 화내지 말아야지. 대신 엄마 티비 봐야 되니까 니 방에 가서 누워.... 라고 하면 안 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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