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한신 편]
한신(기원전 230년~기원전 196년)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인물이죠. 젊은 시절 가난하고, 무시를 받았던 인물이, 제후왕에 오르고 소하, 장량과 함께 유방이 중국을 통일하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서 한초삼걸(漢初三傑)로 불리며, 팽월, 영포와 함께 군사가로서 이름을 알린 한초 삼대명장이기도 합니다. 대단한 업적과 활동만큼 관련된 이야기와 성어가 많은 인물이기도 하며, 사기열전 내에서 상대적으로 분량이 많습니다.
한신은 회음(지금의 강소성 회안시) 사람입니다. 그는 매우 가난하고, 일하기도 싫어했던 인물이었던 같습니다. 직접 생계를 유지하기보다는 남에 얻어먹고 다니던 사람이라 주위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을 뿐 아니라 기피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남창지역 정장을 잘 알고 있어, 그 집에서 자주 밥을 얻어먹었는데, 그 기간이 몇 개월이 지나자 정장의 아내가 한신에게 밥을 주는 것이 싫어서, 식사시간을 피해 새벽에 밥을 지어먹을 정도였습니다. 이를 모르고 식사 시간에 맞추어 정장 집에 갔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한신도 화를 내며 그 집에 가는 것을 끊었습니다. 누가 화를 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아무래도, 한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정당당하게 앞에서 얘기해 주지 않은 것에 대한 화를 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떻게 보면 한신이 생각이 복잡한 사람보다는 단순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신이 성 아래서 낚시를 하고 있을 때, 몹시도 배가 고팠던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빨래를 하던 여인이 이를 불쌍히 여겨 수십 일을 밥을 주었습니다. 한신은 기뻐하며, 여인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하자, 여인이 도리어 성을 내며, 대장부가 스스로 끼니도 못 잇는 것이 안쓰러워 준 것이지, 보답을 바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유방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한신을 초나라의 왕으로 봉했을 때, 한신은 이 여인을 찾아 보답으로 천금을 주었습니다.
회음 땅에서 한신을 특별히 멸시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신을 크게 모욕하며, 용기가 있으면 자신을 찌르고, 용기가 없으면 자신의 가랑이 밑으로 지나가라고 했습니다. 한신은 아무 말 없이, 그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나갔고, 이를 본 모든 사람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신이 장수로서 성장하는데 계속 쫓아다니며, 그에게 부정적인 배경으로 알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초기에 항우와 유방에게 쓰임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그러나, 한신에게는 큰 뜻이 있었고, 이러한 치욕은 그에게 큰 장애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항우의 숙부 항량이 회수를 건너 오자, 한신도 항량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그의 밑에서 이름을 얻지 못했고, 항량이 죽고, 항우가 숙부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도 낭중에 임명되었으나, 그렇게 중용을 받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수차례에 걸쳐, 항우에게 계책을 올렸으나, 항우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신은 한왕이 촉 땅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나라로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역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연오라는 높지 않은 벼슬을 얻게 됩니다. 이후에 법을 어겨 참수형을 받게 되었는데, 앞의 모든 사람이 참수된 후, 한신이 자신 앞에 등공을 발견하고 그에게 외치기를 '왕께서 천하를 취하시지 않으십니까? 어찌 장사를 참하십니까'라고 하자, 등공이 이를 기특하게 여겨, 그를 살려주고, 얘기를 나눈 후, 재능을 알아보고 한신을 유방에게 추천했습니다. 유방을 그를 치속도위로 임명했으나 여전히 그를 알지 못했습니다. 뛰어난 군사가에게 농업과 소금, 철을 관리하는 벼슬이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 치속도위治粟都尉 : 중국 한대(漢代)에 농업과 염철(鹽鐵)의 일을 관리하던 벼슬
이후에 한신이 소하와 만날 기회가 생기고, 대화할 시간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하는 대번 한신의 뛰어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방이 항우에 의해 낙후된 한중으로 쫓겨나게 되자, 많은 장수 들이 유방을 떠나 도망치기 시작했고, 한신도 자신의 처우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불만을 갖고 유방을 버리고 떠나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소하는 유방에게도 보고할 시간이 없어, 바로 말을 타고 그를 쫓아가 한신을 간신히 데려고 돌아왔습니다.
한참 동안 많은 부하 장수 들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다는 소식에 실의에 빠진 유방에게 소하조차 도망갔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때, 소하가 돌아온 소식을 듣습니다. 한편은 기쁘고, 한편은 화가 난 유방이 소하를 질책하자, 소하는 당당히, 자신은 도망을 친 것이 아니라, 한신을 쫓은 것뿐이라고 합니다. 유방은 수많은 장수가 도망을 쳐도 가만있던 소하가 이름도 없는 한신이라는 사람이 도망갔다고 쫓아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소하는 왕이 한중에서만 왕 노릇하려면 한신이 필요 없지만, 만약 천하를 취하고자 한다면 한신이 필요하다고 하며, 그는 천하에 둘도 없는 뛰어난 사람이며 그를 크게 중용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유방이 당장 대장으로 삼겠다고 하자, 소하는 의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유방에게 재계를 하고 단을 만든 후에 임명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식에 여러 장수 들이 자신이 대장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한신이 장수로 제수가 되자 모든 사람들이 놀라게 됩니다.
한신이 없었다면, 유방은 강력한 경쟁자 항우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한신의 잠재된 능력을 보지 못할 때 이를 알아보고, 한신을 끝까지 쫓아 다시 데리고 와 유방에게 대장의 자리까지 요구한 소하가 없었다면, 한신의 명성도 유방의 천하 통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소하의 업적을 유방은 장수들의 전쟁터에서 목숨을 건 업적보다 높게 인정했습니다.
장수의 제수를 마친 한신을 유방이 불러,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어봅니다. 이때의 상황은 진나라는 유방과 항우에 의해 멸망을 당했고, 관중을 먼저 차지한 유방이 관중지역(옛 진나라 지역)의 왕이 되어야 하지만, 항우의 위세에 밀려, 거의 목숨만을 부지한 채, 낙후된 한중과 촉 지역으로 한왕(韓王)이라는 명목만 받고 쫓겨나게 됩니다. 항우는 진나라를 멸한 후 자신은 초나라의 왕이 되고, 나머지 지역을 18개로 나누어 유방을 포함하여 제후왕을 임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제후국가들은 유방이 중원으로 나아가 초나라의 항우와 대결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할 대상이었으며, 특히, 지리적으로 중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중 지역에서는 반드시 관중 지역으로 먼저 진출해야 하기 때문에 그 지역을 나누어 관리하고 있는 3개의 작은 진나라(옹, 새, 적)의 각각 제후왕으로 제수된 장한, 사마흔, 동예와의 승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중원으로 진출로가 꽉 막힌 상황에서 유방으로서는 독 안에 든 쥐와 같은 느낌으로 중원으로 나아가기에는 적이 너무 많아 보이고, 자기 수하의 장수 들은 너도 나도 자신을 버리고 도망을 가버리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 답답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소하의 추천으로 장군이 된 한신에게 유방은 당연하게도 한편은 전략을 강구하는 입장에서, 한편은 의심의 마음으로 물어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한신은 유방의 질문에 직접 답하기 전에 도리어 유방에게 항우와 비교하는 질문을 합니다. 개인의 용맹함과 타인에 대한 어짐이 누가 더 나으냐는 질문에 유방은 솔직하게 자신이 항우보다 못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한신도 동의합니다. 그러면서, 항우는 용맹함에 있어 타인이 따를 사람이 없고, 모두들 두려워 떨지만, 능력 있는 장수에게 병권 일임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사람들에게 무척 친절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병을 돌봐주는 사람이지만, 부하가 공을 세워, 마땅히 벼슬을 부여할 때 임명을 매우 주저한다고 했습니다. 한신은 이것은 그저 아녀자의 인(婦人之仁) 일뿐이며,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것이 국가 차원의 조직을 운영하는의 것과는 거리가 있음을 말합니다.
항우는 진을 멸망시키고는 자신의 힘의 의지해 당시 왕의 자리에 있던 의제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아끼는 자들 위주로 제후 왕들로 임명하고, 의제도 다른 곳으로 쫓아버렸습니다. 항우의 군대는 지나가는 곳마다 잔인하게 파괴하였고, 그의 무력 앞에 백성들이 조용할 수밖에 없었으나, 천하의 인심은 모두 잃었다고 하며, 이러한 강함은 쉽게 약화될 것이라고 합니다.
장한, 사마흔, 동예는 본래 진나라의 장수였으나, 항우에게 투항을 했고, 그들에게 속한 진나라 병사 20만 명은 항우가 자신의 군대보다 많아 반란이 두려워 모두 땅에 매장해서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셋은 각각 옛 진나라 영토를 분할 후 제후왕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 관중 땅에서의 민심이 좋을 리가 없으며, 많은 이들이 원망이 사무쳐 있음을 유방에게 알려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방이 항우보다 먼저 관중 땅으로 들어왔을 때, 백성들을 보호하고, 잔혹한 법을 폐지한 것에 대해 백성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 유방이 삼진에 격문을 돌리면 많은 백성들의 지지로 쉽게 관중 지역을 평정할 것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유방은 매우 기뻐하며, 한신을 늦게 얻은 것을 후회할 정도였습니다.
손자에 비교될 정도로 뛰어났던 군사가인 한신은 중원 진출전략에 있어, 신출귀몰한 전략도, 강한 외부 세력과 협력도 아닌, 민심의 중요성과 내부 부하들에게 대한 적정한 대우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았던 것입니다.
유방은 항우에게 한중으로 쫓겨날 때, 관중에서 한중으로 이어지는 절벽에 붙어있는 유일한 통로인 잔도를 태워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항우에게 더 이상의 중원에 대한 자신의 욕심이 없음 알리고, 또 초나라의 추가적인 군대의 추격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삼진 지역의 책임자는 유방이 혹시나 중원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하며, 이 잔도지역을 집중관리하고 있었습니다. 한신은 일부 병력을 보내, 잔도를 수리하는 모습을 보이자, 장한 등은 이곳에 집중적으로 대비를 합니다. 이때, 한신은 진창으로 몰래 군사를 우회시켜 순식간에 장한의 뒤를 공격하여 적을 제압합니다. 삼진을 평정하고, 그에 인접한 위나라와 부근 땅을 점령하자, 한왕(韓王)과 은왕(殷王) 모두 유방에게 항복했습니다.
한신의 이야기는 사기열전에 상대적으로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한신의 각각 사건 크기에 비하여 볼 때 상당히 적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이 사기열전의 한신을 이해하는 데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한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는 다른 인물의 자료를 통해 다각도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한나라 유방은 한중 지역을 벗어나 관중 전투에서 쉽게 승리하였고, 주위의 한왕(다른 한자의 한나라)과 은왕이 항복을 했습니다. 이후 주위의 제후국과 연합군을 이루어 60만 대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연합군은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의 수도 팽성(현 강소성 서주지역)까지 함락했습니다. 제나라를 공격 중에 팽성의 함락 소식을 들은 초나라의 항우는 정예병 3만 군사를 몰고 와 승리에 도취한 유방의 60만 군대를 대파시킵니다. 추풍낙엽처럼 항우에 의해 한나라 연합군은 무너졌고, 초군의 추격에 너무나 다급했던 유방은 자식들 조차 도피하는 수레에서 발로 밀쳐서 떨어뜨릴 정도였습니다. 한신이 이에 다시 유방과 합류해서, 초나라 군대를 치고, 더 이상의 진군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팽성 전투의 패배는 관중으로 진출했던 한나라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로 항복하여, 연합군에 동참했던 새왕 사마흔과 적왕 동예, 그리고 제나라와 조나라 또한 한나라를 배신하고 초나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우가 임명한 제후들로 세력이 약해진 유방을 떠나 항우로 돌아간 것은 약육강식의 시대의 강한 자를 쫓는 것으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관중 진출부터 유방의 우군이었던 위왕 표조차, 한나라를 배신하고 초나라로 돌아서게 됩니다.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설득을 해도 위왕 표가 말을 듣지 않자, 유방은 한신을 좌승상으로 임명해서 위나라를 공격하게 합니다. 한신은 임진에서 대규모의 배를 동원해서 황하를 건너는 것처럼 해서, 위나라 군대가 대규모로 방어를 갖추게 한 후 다른 방향으로 군대를 보내 위나라의 수도 안읍을 기습 공격을 하였습니다. 이에 위나라 군대는 한신에게 크게 패하고, 한신이 위나라를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유방은 장이를 보내 한신과 함께 대나라를 치게 했고, 한신은 대나라를 격파하고 조나라로 군대를 이동하였습니다. 당시 조나라왕과 성안군은 20만의 군대를 가지고 한신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조나라의 광무군 이좌거는 성안군에게 한나라의 군대가 멀리서부터 군량미를 대고 있고, 오는 길이 좁아 군대가 이동하기 어려워 군대와 군량미 수송이 상당히 떨어져 있으므로, 후방의 군량미 수송을 방해할 경우, 한나라의 군대는 혼란에 빠지게 되니, 이때에 한나라를 공격하자고 계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유자였던 성안군은 남을 속이거나, 정도가 아닌 계책은 옳다고 여기지 않고, 자신의 군대만 믿고 광무군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한신은 염탐을 통해 광무군의 계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무척 기뻐하며, 깃발과 함께 기병 2천을 먼저 보내 산속에 매복시킵니다. 장수들에게 조나라 군대와 마주친 후 거짓으로 패해 후퇴를 하면, 조나라 군대가 누벽을 버리고 쫓을 때, 매복한 군사로 하여금 누벽에 조나라의 깃발을 빼고, 한나라의 붉은 깃발을 세우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밤에 조를 격파하고 잔치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부하 장수들은 겉으로는 한신 명령을 받아들였지만, 속으로 그 말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조나라 병력을 유인하기 위해 대장 기를 앞세워 만 명 군사를 먼저 나아가게 한 후, 잔여 병사들은 모두 배수진을 치도록 하였습니다. 조나라 군사들은 이를 보고 크게 웃었습니다. (한신은 이 전투에서 승리 이후 배수진의 이유를 장수들에게 설명해 주었는데, 한나라의 병사들은 대부분 훈련된 병사들이 아니라, 시장에서 모은 사람들로서 큰 위기가 닥치면 곧 모두 달아날 것이기 때문에, 배수진으로 달아날 곳을 원천적으로 없애고 모두에게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배수진이라는 표현은 역사상 사기열전 회음후(한신) 열전에서 처음 나옵니다.) 새벽녘에 한신이 대장 깃발을 앞세우고 나아가자, 조나라 군대가 누벽을 열고 공격했습니다. 오랜 싸움 끝에 한신과 장이가 패한 척, 강가의 진지로 달아났고, 강가의 진지 앞에서 또 격렬하게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한신의 매복한 병사 2천은 비어있는 조의 누벽으로 들어가, 조의 깃발을 뽑고, 한나라의 붉은 깃발 2천 개를 세웠습니다. 이즈음, 강가의 한나라 군대의 강한 저항에 밀려, 조나라가 군대는 누벽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누벽에 빽빽이 꽂힌 한나라의 깃발을 보고 모두 크게 놀라고 조나라 병사들은 자신의 장수들이 모두 패했다고 생각하게 되자, 군대는 삽시간에 큰 혼란에 빠졌고, 군사들이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조의 장수들은 달아나는 군사를 죽이면서까지 이를 막고자 했지만, 거대한 혼란에 빠진 병사들의 탈출을 막을 수가 없었고, 이때 한나라의 군대가 공격하자 크게 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성안군과 조왕이 사로 잡히게 되었습니다.
조나라 정복 후, 한신은 광무군을 찾기 위해 천금 현상금으로 수배령을 내리자, 광무군을 곧 찾게 되었고, 그에게 융성한 대접을 해주고, 스승처럼 모셨습니다. 한신은 광무군에게 북쪽에 위치한 연나라와 동쪽에 위치한 제나라를 칠 방법을 물어보았습니다. 광무군은 쉽게 계책을 내어주지 않았으나, 한신이 끈질기게 설득하자 다음과 같은 계책을 내놓았습니다.
조나라에게 승리한 한나라 병사들은 사기가 높은 듯하나 실제로 지쳐있고, 연나라가 버틸 경우 군량미까지 다 쓰게 되어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연나라와 제나라가 연합하게 되어, 두 나라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조나라 백성을 다독이고, 조나라를 안정시키고, 연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설득하면, 그 기세에 연나라가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한신이 이대로 시행하자 연나라가 쉽게 투항을 했습니다.
한신이 연나라를 쉽게 평정한 후, 유방은 초나라와 연합한 제나라를 공격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벌이고 있는 전장의 사정이 다급한 유방은 한신의 군대를 이끌고 가 버렸습니다. 한신은 남은 군사들을 모아 제나라를 치기 위해 가는 도중에, 유방은 한신의 공격이 늦다고 생각하여, 제왕 전광에게 역생을 사신으로 보내 초나라를 배신하고 한나라와 연합하도록 설득했고, 결국 제나라가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진군 도중 이 소식을 듣게 된, 한신은 군대를 돌리려 하였으나, 한신과 함께한 괴통이 유방의 명령은 아직 취소되지 않았고, 여기서 멈출 경우, 역생의 세치 혀가 한신의 공보다 크다고 말하며, 제나라를 공격하도록 설득하였고, 한신도 그것이 옳다고 여겨 진군을 계속했습니다.
제나라는 역생의 말만 믿고 잔치를 벌이고, 한나라 군대에 대해 방어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신은 이를 틈타 제나라를 공격하고, 수도 임치를 점령합니다. 제왕 전광은 분노에 쌓여 역생를 삶아 죽이고, 초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였습니다.
항우는 장수 용저에게 20만 대군을 주어 제나라를 구원토록 했습니다.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용저의 부대에서는 한나라 군대가 먼 곳에서 왔으며, 아직 제나라 왕이 살아 있고, 구원군인 초군이 온 소식이 사방에 퍼지게면, 항복한 제나라 사람들도 한신를 등지게 될 것이고, 결국 한나라 군대가 보급이 끊겨 싸우지도 않고 이길 수 있는 방안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용저는 한신을 우습게 여기고, 자신의 공을 위해서 지구전보다는 속전을 택했고, 유수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습니다.
한신은 밤에 몰래 군대를 움직여 모래주머니로 유수의 물을 막고, 용저에게 싸움을 걸었습니다. 한신의 군대가 초나라의 공격에 패한 모습을 보이며 달아나기 시작하자, 용저는 과연 한신은 겁쟁이라고 하며, 그의 부대를 쫓아 유수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막아 놓은 댐을 터뜨리자, 용저의 군사들은 삽시간에 휩쓸려 내려갔고, 한신이 급습하여 용저를 죽였습니다. 아직 강을 건너기 전의 초나라 군대는 이를 보고 달아나기 시작했으나, 한신이 추격하여 모두 사로잡았습니다.
제나라를 평정한 한신은 유방에게 사신을 보내 제나라에 왕이 없어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제나라 사람은 변심을 잘하므로, 자신을 가왕(假王)으로 삼아 속히 제나라를 안정시키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유방은 초나라에 포위되어 매우 위급한 시기였는데, 이 편지를 본 유방은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자신은 큰 곤경에 빠져있는데, 한신은 왕이 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량과 진평이 유방의 발을 밟고 귀속말로 지금 한신에게 잘 대우하지 않는다면, 그가 돌아서게 되고, 더 큰 화로 발전될 수 있으니, 지금 왕으로 삼고, 제나라를 지키도록 하는 게 낫다고 설득하였습니다. 유방 역시 이 말이 옳다고 여겨, 사신에게 사나이가 진왕(眞王)이 되어야지 가왕(假王)이 무엇이냐며, 장량을 보내 한신을 제왕으로 삼고, 초나라를 치도록 하였습니다.
과거 한신은 항우의 부대에 속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신은 여러 계책을 내어 놓았지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한신의 놀림받을 만한 과거의 소문과 그의 변변찮은 집안 배경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신이 성동격서의 방식으로 위나라를 정벌 후, 배수진과 매복으로 매우 불리한 상황에도 조나라와 싸움에 이기고, 연나라까지 평정했으나, 여전히 초나라의 장수들은 한신을 무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초나라의 20만 대군이 패하고, 뛰어난 장수 용저마저 죽음을 당한 것을 본 항우는 한신을 크게 두려워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신의 명성은 위나라 공격에서 시작하여, 이 시점에서 전국에 퍼졌을 것입니다.
항우는 무섭을 사신으로 한신에게 보내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의 결과는 모두 한신 손에 달렸다는 것과 계속 초나라를 공격하여 결국 초나라가 없어지게 된다면, 그다음 한신도 유방에게 죽음 당하게 될 것이라며, 천하를 삼분하여 나누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한신은 유방이 자신을 잘 대해준 것을 기억하며, 항우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사신이 떠난 후, 괴통은 한신에게, 천하삼분지계의 필요성과, 무섭의 말과 같이 항우가 죽으면, 곧 한신에게도 화가 닥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괴통은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며 한신을 설득하였습니다. 한신이 더 생각을 해보겠다고 하자, 며칠 후 다시 찾아와 한신을 설득하였으나, 한신은 유방이 자신을 계속해서 제나라 왕으로 삼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괴통의 제안도 거절했습니다.
역사적인 해하전투입니다. 해하는 현재 안휘성내에 있는 광활한 평원이었습니다. 이 싸움 전까지는 유방은 항우와의 싸움에 번번이 패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하와 부하 장수들의 도움으로 끊임없이 군대를 보급받아, 패했음에도 어느 정도 항우와 힘의 평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유방은 패했지만, 다른 방향에서 한신과 팽월이 초나라를 공격하자, 초나라는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여, 유방이 초나라를 공격하였으나, 도리어 초나라에게 크게 패했습니다. 유방은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한신과 팽월에게 큰 영토를 줄 것을 약속하고, 해하에서 집결토록 하였습니다.
해하에 집결한 한나라의 군대는 30만, 항우는 18만의 군사로 모였습니다. 한나라는 아래와 같이 부대를 배치하여 초나라의 군대를 맞이했습니다. 사기에는 해하전투에 대하여 한신열전, 고조본기(유방), 항우본기 등에 기술되어 있으며, 고조본기에 가장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나라의 군대는 한신이 지휘를 한 것으로 보이며, 중앙 가장 앞에 한신의 부대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뒤로 2개의 부대를 위치시켜 중앙 부대를 튼튼히 했고, 좌, 우익에 부대를 배치했습니다. 초기 싸움에 중앙의 한신의 부대가 밀리자, 항우의 부대는 깊숙이 들어오게 되자, 넓게 퍼져있던 한나라의 좌, 우익 부대가 초나라 부대를 둘러싸게 되었고, 이때, 중앙의 한신의 부대가 다시 밀고 앞으로 나오자, 항우의 군대는 크게 패하게 되었습니다.
항우는 간신히 방어벽을 구축했지만, 이미 병력과 식량은 크게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진밖에 사방에서 한나라 군대로 부터 초나라의 노래가 불려지자 (四面楚歌/사면초가), 항우의 군대는 많은 초나라 사람조차 한나라의 군대에 가담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자 크게 낙담하게 되었습니다. 항우는 탈출을 감행했으나, 결국 오강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 전투는 결국 초, 한의 최후의 결전이 되었으며, 승리한 유방이 전국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항우가 죽자마자, 유방은 한신의 군대를 빼앗고, 한신을 제왕에서 초왕으로 삼아 버렸습니다. 유방은 끊임없이 한신을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참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해하전투는 기원전 202년 중국 영토를 두고, 초한의 영웅들이 벌인 대규모 전투였습니다. 특히, 항우의 용맹함과 그의 부대의 전투력은 한나라가 번번이 패하게 되는 원인이었습니다. 동일한 시기에, 서양에서는 지중해 지역을 두고, 두 나라가 대규모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카르타고와 로마입니다.
지중해 지역에서 과거의 지배자 카르타고와 새롭게 지배력을 넓히는 로마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었으며, 1차 전쟁에서 패배한 카르타고가 힘을 비축하여, 2차 전쟁에서 한니발을 앞세워 이탈리아 본토까지 들어가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한니발은 초승달과 같이 부대를 배치하여 보병 중심의 로마군대를 감싸서 궤멸시키는 전략으로 이탈리아 곳곳에서 승리하게 되고, 로마는 한니발의 뛰어난 전략과 전투력에 직접 싸움을 피하고, 한니발의 보급과 후방인 본국을 공격하므로,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물러나도록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두 국가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며, 기원전 202년 카르타고 자마 평원에서 일대 회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로마는 스키피오를 지휘관으로 그동안의 패배를 통해 한니발에 대응할 수 있는 더 나은 전략을 준비했고, 결국 한니발의 부대를 한니발의 방식으로 감싸서 궤멸을 시키게 됩니다. 이 싸움으로 카르타고는 세력이 크게 약해졌고,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가지게 됨으로 제국으로서 성장에 발판을 곤곤히 하게 되었습니다.
동일한 시기에 동서양에서는 유사한 대규모 전쟁이 있었으며, 각 전쟁의 영웅도 유사한 항우와 한니발이 있었고, 전쟁의 결과로 한나라와 로마라는 두 제국이 성장할 수 있었으니 참으로 흥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신은 해하 대전투에서 승리의 기쁨도 잠시 어이없게 유방에게 순식간에 군대도 빼앗기고 제나라 왕의 위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유방은 항상 한신의 재능을 두려워했습니다. 항우가 제거된 이상, 그다음 자신을 가장 위협할 수 있는 인물은 한신이었습니다. 유방은 한신이 초나라 출신으로 초나라를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초나라 왕으로 임명을 합니다. 물론, 자신은 황제로 추대가 되었습니다.
초나라 왕이 된 한신은 먼저 자신이 가난하고 굶주렸을 때 자신을 도와준 여인을 찾아 천금을 하사하고 (漂母飯信/표모반신), 남창정장을 만나 끝까지 도와주지 않고, 일부만 도와준 것을 옳지 못하다고 하며, 100전을 주었습니다. 자신을 시장에서 욕보였던 당시의 사내를 찾아 중위를 삼고, 자신이 용기가 없어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큰 뜻을 품었기 때문이었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이즈음 항우의 죽음 이후 도망 온 초나라 장수 종리매는 과거 한신과 관계가 좋았기 때문에 한신에게 피신해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초한전쟁 시 종리매에 원한이 맺혀 있어, 종리매를 찾고 있었습니다. 종리매가 초나라에 있다는 것을 알고 초나라에 종리매의 체포를 명했습니다.
평상시에 한신을 모반을 두려워했던 유방은 진평의 계책에 따라, 황제로서 제후들을 회동한다는 명목으로 한신을 포함한 제후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한신은 자신이 황제의 의심을 사서 회동에 가면 화를 당할 것을 두려워하자, 어떤 이가 종리매의 목을 황제에게 바치면 황제가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한신이 이를 종리매에게 얘기하자, 종리매는 크게 실망하며, 한이 초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 초에 있기 때문인데, 자신이 죽으면 한신에게도 화가 임할 것이라고 한 뒤, 자결을 했습니다. 한신이 그의 목을 가지고 황제를 만났으나, 황제는 한신을 바로 체포해 버렸습니다. 한신은 그제야 사냥감이 죽으면, 사냥개도 삶아진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말하며, 낙양으로 끌려갑니다.
낙양에 도착한 황제는 한신을 풀어주고, 왕에서 한 단계 낮추어 후(회음후)로 삼았습니다. 한신은 유방이 자신을 믿지 않고 두려워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병을 핑계로 황제의 조회에도 나가지 않고, 밤낮으로 황제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보다 못한 장수들과 같은 반열이 된 것을 몹시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진희가 거록의 군수로 임명되어, 임지로 떠날 때 한신과 인사를 하자, 한신이 그에게 모반을 제의하고, 한신의 능력을 아는 진희도 이에 동의를 하고 떠났습니다. 약속과 같이 진희가 모반을 하자, 황제가 군대를 이끌고 정벌을 떠났습니다. 한신은 병을 핑계로 따라나서지 않고, 내부에서 사람을 모아, 태후와 태자를 공격할 모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어 한신에게 죽임을 당하게 될 사람의 아우가 이 사실을 태후에게 알렸습니다. 태후는 상국 소하와 이를 논의하여, 진희가 이미 사망한 것처럼 하여, 모든 이에게 궁에 들어와 축하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소하도 한신에게 병중이라도 억지로 나와서 축하토록 종용했습니다.
한신이 궁에 들어가자마자 준비된 무사들에게 한신은 잡혔고, 태후의 명령에 따라 한신의 목을 베었습니다. 한신은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과 아녀자에게 죽음 당한 것을 한탄하였습니다.
진희를 정벌하고 돌아온 황제는 한신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신이 제거된 것에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 옛 동료에 대한 측은 한 마음도 들어서, 한신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한신이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아 화를 당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 괴통을 체포토록 하여 죄를 물었습니다. 괴통은 자신의 그렇게 말한 것을 인정하자, 황제는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괴통은 도척의 개도 어진 요임금을 보면 짓는다는 비유(후에 걸견폐요(桀犬吠堯)라는 성어가 됨)를 들어, 자신은 한신의 부하로서 한신만 알았고, 황제를 몰랐으니 한신을 위해 말할 수 있다는 정당성을 주장하자, 황제는 그를 풀어 주었습니다.
한신의 이야기에는 전투에 있어 한신과 그 주위 인물 들과의 비교가 극대화되어 있습니다. 한중에서 나와 관중을 얻은 유방은 그 기세에 눌린 주위 제후국과 연합을 이루어, 항우가 없는 초나라의 수도까지 점령하는 큰 전과를 이룹니다. 유방은 아마도 전국을 통일한 듯한 기분이었을 테고, 큰 방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곧바로 3만의 항우 정예병에 의해 60만의 군대가 순식간에 대패를 하게 됩니다.
조나라의 성안군은 많은 군대와 자원을 가져 충분히 한신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계책을 자신의 고집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한신은 위나라를 공격 시 성동격서의 전략으로 대군을 도하할 것처럼 속여 위나라의 군대를 한쪽으로 모은 후, 다른 곳으로 군대를 돌려 위나라의 심장부를 향하자, 위나라는 쉽게 정복당합니다. 조나라와 전투 시에도 자신의 군대의 상황을 잘 알기에 배수진을 펼치고, 적의 빈 누벽에 수천 개의 깃 발을 세우는 방법으로 상대 군사의 사기를 일순간에 무너뜨려, 승리를 합니다. 또한, 한 번의 전투도 없이 계책만으로 연나라를 쉽게 무너뜨립니다.
한신은 전투에 앞서 자신과 상대를 너무나 잘 알았고, 이것은 이미 전투 시작 전에 승리할 가능성을 매우 높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계책을 듣고, 올바른 판단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마천은 한신의 능력을 과거 주나라 세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후대까지 추앙받는 주공, 소공, 태공과도 견줄 수 있는 공훈이 있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겸손이 필요할 때 공손하지 못하고, 자신을 뽐내며, 천하가 안정된 시기에 모반을 꾀한 어리석음을 얘기했습니다.
한신은 큰 뜻을 품고 어려움을 참아내고 결국 큰 성과를 이룬 사람이었으며, 자신을 잘 대해준 유방에 대하여, 충성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죽음을 당한 것은 자신의 잘못 보다는 군주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져, 군주 스스로 두렵게 만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도 생각됩니다. 천하를 삼분하여, 유방, 항우와 어깨를 견주지 못한 결정적 원인은 유방의 주위에는 풍부한 인재들이 있었고, 유방은 이들을 적절히 활용했으나, 한신은 괴통에는 인물이 없었고, 자신을 믿고 찾아온 뛰어난 장수 종리매까지 자결토록 만들었습니다.
그전에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천하가 안정된 시기에 모반을 계획한 한신에게 한편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