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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사담 Aug 15. 2023

고집스런 황제와 일하는 법

[사기열전 숙손통 편] 사기열전으로 배우는 삶의 지혜

숙손통 (생몰미상)  지역(현재 산동성 텅조우시 부근) 사람이었습니다. 설지역은 이전에는 제나라에 속했던 나라입니다. 진나라에 의해 중국이 통일된  숙손통도 진나라에 가서 관리로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나라에서 박사 생활


숙손통은 진나라에서 유생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아마도 학식이 많은 숙손통은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진나라로 갔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진나라는 2 황제 실정으로 반란이 시작되었습니다. 2 황제는 초나라 지역에서 발생한 병사들의 난에 대해서 박사와 유생들을 모아 놓고 그들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반역이므로 황제가 급히 군대를 내어 토벌을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2 황제는 노여워하는 안색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숙손통이 나서서 말하기를 이것은 반란이 아니며, 유생들의 생각은 틀렸다고 했습니다. 어진 황제가 있고, 법령이  갖추어져 있으며, 백성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반란이 있을  없다고 하며, 그들은 사소한 도적 떼라고 말하고, 지방의 군수나 군위들이 그들을 잡아들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말을 듣고, 2 황제는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다시 유생들에게 물어보니 어떤 이는 반란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단순 도적이라고 말하자, 2 황제는 반란이라고  자들을 형리에 넘겨서 조사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숙손통에게는 비단 20 필과  한 벌을 하사하고, 박사로 제수하였습니다. 박사는 당시 관직명이며, 도서와 경서를 관리하고, 역사에 통달하여 황제의 고문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후에, 유생들이 숙손통을 향해 어찌 그렇게 아첨하는 말을   있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거의 호랑이 입에 들어갈 뻔했으며, 그곳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고 말하며, 바로 자신의 고향인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당시  땅은 이미 반란을 주도하고 있는 초나라에 항복한 상황이었습니다.


2 황제는 환관 조고의 도움으로 황제 자리에 오른 , 올바른 정치보다는 유흥에 취해있었으며, 자신이 듣기 좋은 것만 듣고, 듣기 싫은 소리는 배척하였습니다. 반란이라는 것은 자신의 통치에 대한 불만과 실정의 결과이며, 단순한 도적은 일반적인 상황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나라에는 이미 반란의 물결이 크게 일기 시작했으며, 들불과 같이 퍼져나가 진나라의 몰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단계였습니다. 숙손통은 2 황제의 됨됨이를 미리 알고, 그의 물음에 지혜롭게 답을 하므로, 위기에서 벗어날  있었습니다. 그는  나아가 진나라의 어려움을 예측하고, 진나라의 관직을 버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현명한 판단을 하였습니다.

 


여러 군주를 모시게  숙손통


고향에 돌아온 숙손통은 당시 초나라 장수로서 덕망이 있던 항량에 의해  땅이 점령되자, 항량을 따랐고, 항량이 죽은 이후에는 당시 항량이 과거 초나라의 왕족을 찾아 반란군의 왕으로 옹립한 회왕을 따랐습니다. 항우가 회왕을 장사로 옮기자, 숙손통은 항우를 섬겼습니다. 다시, 한왕 유방이 연합군과 함께 초나라에 쳐들어오자, 숙손통은 유방을 섬기기 시작했고, 유방이 항우에게 패해 돌아가게 되었을 때도 그를 따라갔습니다. 이를 보면, 숙손통은 여러 군주를 지조 없이 모신 사람으로 보이나, 유방을 만난 후에는 그의 패배에 상관없이 따라간 것을 보면, 진정한 주군을 기다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숙손통은 원래 유생의  옷을 입고 있어서 유방이 몹시 싫어했는데, 이를 알고 짧은 옷으로 갈아입었더니, 유방이 몹시 기뻐했습니다.

 


제자들을 천거하지 않는 숙손통


한나라로 가게 되었을 , 선비와 제자 1백여 명이 숙손통을 따랐습니다. 그가 학문적으로, 선생으로서 존경받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는 한왕에게 자신의 제자들을 천거하지 않고, 도적과 힘센 사람들만 추천했습니다. 이에 대해 제자들은 숙손통만 믿고 쫓아온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에 그는 천하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는 전쟁 통에 필요한 것은 선비와 유생이 아니라, 싸움을 잘할  있는 힘과 용기 있는 사람이라며, 그들에게 잊지 않을 테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한나라의 의식과 호칭을 제정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였으나, 황제인 유방을 따르던 무리들은 기존의 귀족이나 지식층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로서, 모이기만 하면 큰 소리를 지르고, 서로 자신의 공이 크다고 다투었습니다. 그중에는 칼을 뽑아 기둥을 내리 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황제는 매우 근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전투에서는 뛰어난 장수와 용감한 군인으로 거친 행동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전쟁이 없어진 이후에 그들의 행동은 정상 국가의 신하들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본 숙손통은 황제를 만나, 선비와 함께 천하를 얻을 수 없으나, 얻어진 천하를 지키는 일은 선비가 할 수 있다며, 자신의 제자들을 불러 모아 조정의 의례를 정할 수 있도록 청하게 됩니다. 황제는 의례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복잡한 의식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주저했으나, 결국 숙손통에게 의례를 시험 삼아 만들도록 허락하였으며, 쉽게 만들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황제의 승인을 받은 숙손통은 의례에 밝은 노나라로 가서 선비 30여 명을 모집했습니다. 그러나, 이 들 중 몇몇은 숙손통이 자주 군주를 바꾼 것과 숙손통이 아첨을 일삼는 사람으로, 이를 통해 관직을 얻고 있다며 비난하고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숙손통은 웃으며, 그들을 가리켜 시대의 변화를 모르는 고루한 선비라고 말하며, 30명의 선비를 모두 데리고 한나라로 돌아왔습니다. 이 선비들과 숙손통 제자 1백여 명이 의식에 대해 정하고, 야외에 장소를 정해, 풀로 사람을 만들어 한 달여 동안 연습을 하였습니다. 연습이 완료된 후 숙손통은 황제에게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고, 황제는 나가서 보고는 만족하며, 그 의례를 시행토록 승인하였습니다.


의례도

 

10월 조회에 숙손통의 정한 의례대로, 모든 신하와 군대가 정렬되어, 전차, 기병, 보병, 위병의 순대로, 공신, 열후, 장군, 군 리는 서열대로, 무신은 서쪽에서 열을 만들어 동쪽을 향하고, 문관은 동쪽에서 열을 만들어 서쪽을 향했습니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제대로 진행하지 않는 자는 현장에서 즉시 데리고 나가자 어느 누구 하나 예를 위반하는 사람 없이 의례가 집행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황제는 오늘에서야 황제가 얼마나 고귀한 지 알게 되었다며 숙손통을 태상에 제수하고 황금 5백 근을 하사했습니다. 숙손통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과 같이 동고동락을 해온 제자들을 추천하여 관직을 요청하자, 황제는 흔쾌히 그들 모두에게 관직을 내렸습니다. 숙손통은 자신이 받은 황금 5백 근 모두 여러 선비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매우 기뻐하며, 숙손통을 성인으로 추앙하며, 그의 능력을 칭송했습니다.

 


태자를 보호한 숙손통

 

황제 유방은 자신이 보잘것없을 때, 결혼한 본 부인인 여태후에게서 난 아들을 태자로 삼았는데, 총애하고 있는 척부인의 아들인 여의로 태자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숙손통은 태자를 바꾸어서 혼란을 겪은 나라의 역사 예를 들고 가까이는 진시황제가 태자 선정을 지연하다 결국은 나라까지 망하게 된 예와 모든 어려움을 같이하고 내조를 했던 여태후를 배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태자를 폐한다면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자, 황제는 농담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숙손통은 태자의 선택은 천하가 진동하는 일로서, 천하를 논하는 것을 농담할 수 없다고 얘기하자, 황제는 태자 폐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장량의 계책으로 황제는 마침내 태자 교체에 대한 생각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사마천은 숙손통에 대해 말하기를 시세의 변화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나 결국 유학의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매우 곧은 것은 굽어 보이고, 길이란 원래 꾸불꾸불하다는 노자의 도덕경의 말을 들어 숙손통을 비유하였습니다. 모든 길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어져 있지만, 목적지까지 곧게만 뻗어 있지 않습니다. 숙손통이 유연성과 지혜로움 없이, 고집스러운 학자의 모습으로 군주들을 대했다면, 그는 하급관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자신의 뜻을 펼쳐 볼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군주와 신뢰관계를 형성한 이후에는 자신의 소신을 강하게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진정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이었으며, 잠시나마 돌아갈 뿐 자신이 정한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향을 잃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큰 뜻을 품고 이루어 나가는 자세로서 숙손통만큼 좋은 교훈을 주는 사람은 없다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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