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계포 편] 사기열전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계포(생몰미상)는 초나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초나라 사람으로 항우를 도와 자주 한나라를 괴롭혔습니다. 사마천은 그의 용맹함이 항우의 기개보다 높다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유방이 해하전투에서 항우에게 크게 승리한 후, 마침내 전국을 통일하였습니다. 자신에게 많은 위협을 가한 계포에게 많은 현상금을 걸었고, 그를 숨겨주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계포는 몸을 피해, 복양의 주 씨 집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추적이 곧 들이닥칠 것을 예상한 주 씨는 계포의 머리를 깎고 허름한 옷을 입힌 후에 자신의 하인 수십 명과 함께, 노나라 땅의 주가에게 팔았습니다. 주가는 그가 계포임을 알면서도 그들 무리를 사들인 후에 아들에게 그가 누구인지는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잘 대해줄 것을 일러둔 후, 낙양으로 향했습니다.
주가는 계포의 문제를 풀기 위해, 여음후 등공을 찾아갑니다. 여음후 등공의 본명은 하우영으로 삼국지에 나오는 하우돈, 하우연의 조상입니다. 등공이라고 불린 것은 그가 등현의 현령을 지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유방과 사귀고, 그를 보호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유방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공을 세우고 항상 유방과 함께 했습니다. 특히 팽성전투에서 한나라가 대패를 한 후, 유방이 탄 수레를 하우영이 몰았는데, 다급한 유방이 자식들을 발로 걷어차 수레 밖으로 떨어트렸는데, 그때마다 하우영이 수레를 세우고 왕자와 공주를 태우곤 했습니다. 당시 유방이 화가 나서 칼을 뽑아 하우영을 목을 베려고 10여 차례 하였으나, 하우영은 왕자와 공주를 끝까지 보호했습니다.
주가는 하우영의 집에 머물면서, 기회를 보아 계포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주가는 계포가 당시 자신의 주군을 위해서 충성을 다한 것뿐인데, 그런 유능한 인물을 황제가 항우의 부하라는 이유만으로 찾아 죽여야 한 다면, 항우의 신하를 다 죽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와 계포가 한나라를 피해 흉노나 남월로 도망가게 된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황제에게 용서를 구해달라고 하자, 하우영은 주가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고 황제에게 계포의 용서를 구하자, 황제가 마침내 그를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황제의 용서 이후로 계포는 효혜제 때 중랑장(궁궐의 경비책임자)이 되었습니다. 당시 흉노의 선우가 여태후에게 편지를 보내 모욕을 한 일이 있었는데, 여태후가 크게 노하며 장수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상의했습니다. 상장군이 된 번쾌는 여태후에게 10만의 군대를 주면 자신이 흉노를 치겠다고 하자, 나머지 장수들도 여태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동조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본 계포는 유방조차 당시 40만의 군대로도 흉노 원정에 실패하고, 진나라도 흉노에 신경을 쓰다가 내부의 반란군들을 제압하지 못해 망했는데, 현재 한나라가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부하는 말로 천하를 동요시킨다고 하며 번쾌의 목을 벨 것을 여태후에게 요청했습니다. 번쾌는 여태후 여동생의 남편이기도 하고, 개국공신이나,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 계포의 기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모두 다 그 말에 크게 떨었고, 결국 여태후는 조회를 파하고, 계포의 방향을 따르기로 합니다.
계포가 하동군 태수가 되었을 때, 어떤 이가 황제인 효문제에게 계포가 현명하다고 하자, 어사대부를 시키기 위해 그를 불렀습니다. 어사대부는 관리를 감찰하는 수장으로 승상, 태위와 함께 삼공으로 불리는 높은 자리입니다. 계포는 장안으로와 기다리는 동안 어떤 이가 황제에게 계포는 용맹하지만 술주정이 심하다고 말합니다. 이로 인해, 한 달이 지나도 황제를 만나지 못한 계포는 황제에게 다음과 같이 진언했습니다. 신이 이렇다 할 공도 없이 하동군수의 직책을 맡았는데, 갑자기 이곳에 오라고 하신 것은 어떤 이가 터무니없이 자신을 칭찬을 하여 황제를 속인 것이고, 황제가 자신을 보지 않는 것은 또 어떤 이가 자신을 헐뜯었기 때문일 텐데, 황제께서 한 사람의 칭찬 때문에 신하를 부르고, 한 사람의 헐뜯음 때문에 신하를 돌려보내는 것은 황제의 식견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황제는 크게 부끄러워했고, 계포는 하동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季布一諾(계포일락), 계포의 승낙은 백금보다 낫다는 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입니다. 계포는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키는 신의(信義)의 사람이었습니다. 계포의 신의는 전쟁의 상대였던 한나라의 신하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었고, 결국은 유방까지도 인정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용맹하고 유능한 사람이기도 하였지만, 유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던 팽월, 영포, 한신 등이 유방에 의해 버려진 것을 보면 유방이 더 중요하게 보았던 것은 신의라고 보입니다.
사마천은 특히, 계포가 현상금이 걸려 노예와 같은 삶을 살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것을 진정한 용기라고 말합니다. 또한 현명한 자는 자신의 죽음을 중히 여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사마천이 자신의 '목숨'을 중히 여긴다고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중히 여긴다고 한 것입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 것을 두려워했던 사마천의 강한 신념이 개인적으로 읽히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