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였으나, 황제인 유방을 따르던 무리들은 기존의 귀족이나 지식층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로서, 모이기만 하면 큰 소리를 지르고, 서로 자신의 공이 크다고 다투었습니다. 그중에는 칼을 뽑아 기둥을 내리 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황제는 매우 근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전투에서는 뛰어난 장수와 용감한 군인으로 거친 행동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전쟁이 없어진 이후에 그들의 행동은 정상 국가의 신하들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살펴본 숙손통은 황제를 만나, 선비와 함께 천하를 얻을 수 없으나, 얻어진 천하를 지키는 일은 선비가 할 수 있다며, 자신의 제자들을 불러 모아 조정의 의례를 정할 수 있도록 청하게 됩니다. 황제는 의례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복잡한 의식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에, 주저했으나, 결국 숙손통에게 의례를 시험 삼아 만들도록 허락하였으며, 쉽게 만들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황제의 승인을 받은 숙손통은 의례에 밝은 노나라로 가서 선비 30여 명을 모집했습니다. 그러나, 이 들 중 몇몇은 숙손통이 자주 군주를 바꾼 것과 숙손통이 아첨을 일삼는 사람으로, 이를 통해 관직을 얻고 있다며 비난하고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에 숙손통은 웃으며, 그들을 가리켜 시대의 변화를 모르는 고루한 선비라고 말하며, 30명의 선비를 모두 데리고 한나라로 돌아왔습니다. 이 선비들과 숙손통 제자 1백여 명이 의식에 대해 정하고, 야외에 장소를 정해, 풀로 사람을 만들어 한 달여 동안 연습을 하였습니다. 연습이 완료된 후 숙손통은 황제에게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고, 황제는 나가서 보고는 만족하며, 그 의례를 시행토록 승인하였습니다.
의례도
10월 조회에 숙손통의 정한 의례대로, 모든 신하와 군대가 정렬되어, 전차, 기병, 보병, 위병의 순대로, 공신, 열후, 장군, 군 리는 서열대로, 무신은 서쪽에서 열을 만들어 동쪽을 향하고, 문관은 동쪽에서 열을 만들어 서쪽을 향했습니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제대로 진행하지 않는 자는 현장에서 즉시 데리고 나가자 어느 누구 하나 예를 위반하는 사람 없이 의례가 집행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황제는 오늘에서야 황제가 얼마나 고귀한 지 알게 되었다며 숙손통을 태상에 제수하고 황금 5백 근을 하사했습니다. 숙손통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과 같이 동고동락을 해온 제자들을 추천하여 관직을 요청하자, 황제는 흔쾌히 그들 모두에게 관직을 내렸습니다. 숙손통은 자신이 받은 황금 5백 근 모두 여러 선비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매우 기뻐하며, 숙손통을 성인으로 추앙하며, 그의 능력을 칭송했습니다.
태자를 보호한 숙손통
황제 유방은 자신이 보잘것없을 때, 결혼한 본 부인인 여태후에게서 난 아들을 태자로 삼았는데, 총애하고 있는 척부인의 아들인 여의로 태자를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숙손통은 태자를 바꾸어서 혼란을 겪은 나라의 역사 예를 들고 가까이는 진시황제가 태자 선정을 지연하다 결국은 나라까지 망하게 된 예와 모든 어려움을 같이하고 내조를 했던 여태후를 배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만약 태자를 폐한다면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자, 황제는 농담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숙손통은 태자의 선택은 천하가 진동하는 일로서, 천하를 논하는 것을 농담할 수 없다고 얘기하자, 황제는 태자 폐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장량의 계책으로 황제는 마침내 태자 교체에 대한 생각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사마천은 숙손통에 대해 말하기를 시세의 변화에 따라 나아가고 물러나 결국 유학의 위대한 스승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매우 곧은 것은 굽어 보이고, 길이란 원래 꾸불꾸불하다는 노자의 도덕경의 말을 들어 숙손통을 비유하였습니다. 모든 길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이어져 있지만, 목적지까지 곧게만 뻗어 있지 않습니다. 숙손통이 유연성과 지혜로움 없이, 고집스러운 학자의 모습으로 군주들을 대했다면, 그는 하급관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자신의 뜻을 펼쳐 볼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군주와 신뢰관계를 형성한 이후에는 자신의 소신을 강하게 전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진정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사람이었으며, 잠시나마 돌아갈 뿐 자신이 정한 목적지에 도달하는 방향을 잃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큰 뜻을 품고 이루어 나가는 자세로서 숙손통만큼 좋은 교훈을 주는 사람은 없다고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