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은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재상 중의 한 명이며, 관중보다 대중들에게 찬미를 받고, 동시대 인물인 공자에게 칭송을 받은 인물입니다. 제갈공명도 안영을 노래한 ‘양보음’을 즐겨 불렀고, 사성(史聖)이자 사기를 쓴 사마천 조차, 안영의 마부가 되기를 원했을 정도이니 그의 인기는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안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사기의 많은 부분이 ‘춘추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잠시 춘추전국시대의 환경을 소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 고대국가가 하, 은, 주로 이어져 내려오다가, 주나라에 이르러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는 시점, BC 770년으로부터 중국이 통일되는 BC 221년까지를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라고 합니다. 춘추와 전국시대의 분리 기점은 여러 설이 있는데, 모두 BC 481년 ~ BC 403년 내에 모여 있습니다.
기존의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진나라, 한나라로 이어지는 중앙집권체제가 형성되는 과도기적 시대가 춘추시대로, 수많은 제후국이 존재했고, 당시 춘추오패(제 환공, 진 문공, 초 장왕, 오 합려, 월 구천)로서 국가보다는 제후가 한 시대의 리더로서 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전국시대에는 수많은 제후국들이 전국칠웅(제, 초, 진, 연, 위, 한, 조)의 7개의 국가로 정리되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전쟁과 반란이 자주 일어났던 혼란한 시기로 사회적으로 제도, 사상, 경제가 발달을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안영 (기원전578년~기원전500년)은 전국시대보다 더 혼란한 춘추시대를 무대로 제나라에서, 관중 이후 가장 뛰어난 재상으로서 57년간 세 명의 군주를 모신 인물입니다.
안영
의기양양(意氣揚揚)한 마부
우리가 잘 아는 고사성어입니다. 안영에게는 마부가 있었는데, 마부의 아내가 어느 날 외출하려는 남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마부는 매우 의기양양하고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이를 본 마부의 아내의 남편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이혼을 요청합니다. 깜짝 놀라 마부가 그 이유를 묻자, 아내는 키가 6자도 되지 않는 재상은 천하의 제후들도 두려워하는 사람임에도 나랏일을 걱정한 듯하며, 겸손한 모습인데, 당신은 키가 8자나 되며 고작 마부이면서 자신의 주제를 모르니 같이 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마부가 깊이 뉘우치며 겸손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영은 마부의 태도 바뀐 것을 알아보고 그 사실을 묻자 마부가 전후 사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에 안영은 자신의 잘못도 알고, 분수에 맞게 행동하겠다는 그를 새로운 높은 자리로 천거하였습니다.
임갈굴정(臨渴掘井),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판다
노나라는 안영이 있는 제나라의 이웃국가입니다. 노나라 왕이 소공이 삼환 씨와 싸우다 패해 제나라로 피신을 해왔습니다. 무능한 정치로 나라를 빼앗긴 소공에게 제나라 경공은 왜 젊은 나이에 나라를 빼앗겼는지 묻자, 소공은 자신이 아첨하는 사람들만 좋아하다가 충신들을 멀리하게 되어 이런 결과가 되었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경공은 소공이 충분히 반성을 하니 다시 좋은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안영에게 물었으나, 안영은 그렇지 않다고 답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물에 빠진 다음에 물에 빠진 원인을 알고 길을 잃은 다음에 길을 묻는 것은 전쟁에 닥쳐서야 무기를 제조하기 시작하고 목이 말라서야 우물을 파는 것과 같고, 아무리 빠르게 무기를 만들고 우물을 파도 이미 늦었다고 합니다.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이 모든 일을 닥쳐서야만 안다면 그 국가는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하며, 모든 일들이 발생하기 전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안영은 여러 왕들을 섬겼으며, 제후 들 사이에 이름을 떨치었습니다. 안영은 왕에게 간언 할 때 왕의 기분을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항상 충성을 생각하고,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는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은 그런 안영의 마부도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안영은 본질을 바탕으로 왕에게 충언을 올렸고, 어려운 외교 자리에서 언제나 상대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논리로 상대를 설득했습니다.
안영은 재상이 되었음에도 매우 검소하게 생활을 했고, 먹고 입는 것에 사치함이 없었습니다. 왕이 바르게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그 명령을 따르지 않을 정도로 소신이 강했지만,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죽임을 당한 장공이 살해되어 시신이 마당에 던져 놓아 졌을 때, 애도하는 이들을 죽이겠다는 위협에도 불구 홀로 군신의 예를 갖추고 애도할 정도로 용기와 대범함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