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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슝 shoong Jan 13. 2023

웹디자이너 열정페이 놀랍지도 않은 20년차 웹디자이너

나의 20년 쇼핑몰 웹디자이너의 삶이란




















































삼십 대엔 뭐라도 될 줄 알았지 슝)

아... 개나 소나 다하는 웹디자이너요?

나의 20년 쇼핑몰 웹디자이너 삶이란


쇼핑몰 웹디자이너 열정페이 연봉으로 말이 많은 요즘

나는 솔직히 놀랍지도 않다.

동종 업계 종사자들도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었다는 기사를 보며 그 회사는 직원들의 월급을 잘 책정해 주는 회사인가 봐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사를 보며 나의 웹디자이너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라떼는 말이야....




나는 웹디자이너 21년 차다.

웹디자이너 21년 경력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퇴사하고 지금은 캐릭터 디자인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백수다.

솔직히 마지막 회사도 온라인팀이 망해 퇴사를 하게 되었다.


경력도 많은데 웹디자인 쪽으로 일을 더하라는 취업지원세터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웹디자이너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웹디자이너 외길인생 21년,

나는 웹디자이너 중에서도 쇼핑몰 웹디자이너였다.

21년 중 1년은 UIUX 쪽 일을 하고 20년은 유통 관련 화사 쪽으로 취업이 되더니 계속 쇼핑몰 디자인 쪽으로 취업이 되면서 평범하게 사는 게 소원일 정도로 시트콤 같은 인생을 살았다.


21년의 경력 중에서 나는 총 8군데 회사를 다녔고, 일주일 다닌 회사, 세 시간 다닌 회사, 점심 먹고 나온 회사, 한 달 다닌 회사들도 있었다.

쇼핑몰 쪽이 오프라인하고 별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 쉽게 뛰어들었다 망한 회사들이 많았다.


8군데 회사들 중 4군데 회사는 회사가 망하거나 회사 안에서 온라인 팀이 망하고, 2군데는 파산 신청까지 내고 회사가 망했다.

회사 다니고, 회사 망하고, 노동청 가고, 회사 구하고, 회사 다니고, 회사 망하고, 노동청 가고, 회사 구하고

나의 20대, 30대 중반의 삶은 회사 다니고, 망하고, 월급 못 받아 노동청 다닌 기억 밖에 나지 않는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당시의 나의 삶은 좋게 말해 시트콤 같은 인생이었다.


쇼핑몰 웹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다른 직장인들과도 같다.

개발세발 기획서를 퇴근시간 세 시간 전에 들고 와 디자인을 화려하게 해 달라는 기획자

퇴근하기 전에 1차 시안을 보여달란다.

2차 시안은 내일 오전에 보여달란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1차시 안 작업을 시작으로 목요일까지 기획전 세단짜리, 한단짜리, 두 단짜리를 섞어서 3~4개를 만들어야 하고, 중간중간 컨펌을 받아야 하고, 최종 컨펌을 받으면 금요일은 코딩 작업을 해야 하고, 중간중간 이메일 작업도 해야 하고, 배너 작업도 해야 하고, 다른 작업들도 해야 한다.

야근은 일상이다.

8시에 일이 끝나면 정말 일찍 끝나는 날이었다.

야근 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밥값이라도 주면 감사할 뿐이다. (라떼는 말이다.)

요즘은 법이 바뀌어서 야근 수당을 주는 회사들도 있지만 안 주는 회사들은 여전히 많이 있다.

회사 집 회사 집이 전부였다.

주말은 꿈에서도 기획전 작업을 했다.


이렇게 일을 해도 쇼핑몰이 망해가기 시작하면 인력 감축 일 순위는 웹디자이너다.

사이트는 다 만들어져 있고, 운영은 본인들도 디자인할 줄 안다며 단물 쪽쪽 빨아먹고 토사구팽 당하기 일쑤였다.


본인들은 내가 만든 디자인으로 짜집기 해놓고 어디 가서 디자인 작업도 한다고 하고 다닌다.

이래서 개나 소나 다 하는 웹디자이너라는 소리가 나오는 거다.


월급이 밀리고, 임금체불이 되고, 파산 신청을 해버려 임금을 다 못 받은 회사도 있었다.

월급이 밀리고,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새로운 회사를 구하기 전에 그동안 모아둔 돈을 써야 하다 보니 21년 동안 일을 했지만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그런 데다가 쇼핑몰 쪽은 UIUX디자인에 비해 월급이 많이 적다.

기획전, 배너작업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연봉의 앞자리를 바꾸는데 10년이 걸렸다.

기획전, 배너  이미지 작업 말고도 md대행, 기획, 플래시 작업, 상품 촬영, 상세 페이지 작업, 사진 리터칭, 이벤트 작업, 기본 코딩 작업, CI.BI 작업, 홈페이지 사이트 구축, 쇼핑몰 사이트 구축, 쇼핑몰 사이트 관리, 리뉴얼 작업, 편집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을 할 줄 알아서다.

요즘은 영어, 동영상편집까지 해야 한단다.


나도 마지막 회사에선 상품 촬영을 비롯해 요리도 하고 상품 데코 작업까지 하고 추가로 연출물 작업도 하고, 쇼핑몰 보다 sns에 신경을 쓰라고 해서 손그림을 그려야 했고, sns 관련 기획, 사진 촬영, 디자인 작업을 하였다.


회사 입사 조건을 보고 입사를 하지만 입사하고 나서는 야금야금 더 많은 일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연봉이 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알고 하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해 들어간 회사니까.


디자이너가 분야별로 나뉜 곳이 아니면 웹디자이너가 한 명인 곳에서는 일당백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디자인작업을 하다가도 인력이 부족한 곳에 가서 일을 도와주거나 퇴사한 사람의 일까지 내가 땜빵을 해야 한다.

회사는 하나 같이

“우린 가족 같은 회사예요 서로서로 도와야죠 “

“월급 더 올려서 다른 데 가야지”

“네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야”

“그 나이에 갈 때 있어? 여기서 잘해야지 “

“사람은 새로 뽑지 않을 거야. 네가 해“

”잘하면 월급 올려줄게 “


차라리 미안해하면서 일을 시켰으면 그 일을 잘할 수 있게 노력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너를 위한 거라고 말하며 당연하게 강압적으로 시키는 회사들뿐이었다.


물론 미래의 나에게 도움은 된다.

이 일도 할 줄 알고, 저 일도 할 줄 안다.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넣을 수 있다.

누가 보면 일 잘하는 줄 알지만 이렇게 많은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뭐 잘하는지를 모르게 된다.

웹디자이너가 전문 직업이라고 하지만 나는 전문성이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백수가 된 김에 취업을 하기보다는 내가 뭐 잘하는지를 알기 위해 “나 알아가기”를 고민해 새로운 일들도 해보았다.

결국 다시 해보기로 한 일도 캐릭터 디자인이었다.

허허허허허...

웹디자인과 캐릭터 디자인은 엄연히 다르지만 말이다.




가수들은 저작권이라는 법이 생기면서 본인들의 창작물에 대한 보호를 받으며 돈을 받게 되지만 디자이너들은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디자인이 절로 나오는 줄 알고 공짜로 달라는 사람들도 많고, 캡처해서 쓰거나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라 내 디자인이 어딘가에서 쓰이며 다른 사람의 배만 부르게 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21년 동안 남들은 별로 겪지도 않는 일을 겪으면서 볼꼴 못 볼꼴을 보니 사회생활에 실물이 났나 보다.

엄마는 니 성격에 사회생활 오래 한 것도 놀랍다고 할 정도로 나도 내 성격에 사회생활을 21년이나 했다는 것에 놀랍기도 하다.

것도 웹디자이너로서 21년을 하다니...


웹디자이너로 성공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더 말하지 않은 수많은 역경들 속에서도 그래도 웹디자인 하는 게 좋아 어떻게든 버티며 지낸 21년이었다.

그런, 나 자신 칭찬한다.


앞으로 또 먹고 살길을 찾아야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21년을 해 왔는데 뭔들 못하겠니? 남은 인생도 포기하지 않고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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