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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an 02. 2018

기다림의 미학

기다림, 그 자체가 주는 행복




언제부턴가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면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떼쓰는 아이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내겐 아직 먼 미래의 일인데도 매번 그 상황을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내가 마주쳤던 부모들은 대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거나 어르고 달래 그 자리를 벗어났다. 나라면 혼내기도 달래기도 어려워 발만 동동 구를 것 같은데, 저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하나 벌써부터 걱정스러웠다.



어른의 눈으로 봐도 참 예쁜 인형과 마주친 날은 유독 그랬다. 몇몇 아이들이 그 인형 앞에 꼭 붙어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여자아이는 직접 엄마 손을 끌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엄마 이 인형 너무 예쁘죠", "엄마 여러 가지 옷도 입힐 수 있나 봐요", "머리카락도 다른 색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라며 온갖 이야기를 쏟아냈다. 갖고 싶은 마음을 조금도 숨기지 못하는 나이였다. 그때마다 "그러네", "엄마가 봐도 참 예쁘구나" 일일이 대답해주는 다정한 엄마였다. 반응이 꽤 긍정적이라고 생각한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세상 가장 예쁜 말투로 말했다.



"생일선물, 일찍 받으면 안 돼요?"



저렇게 간절한 눈빛이라면 나는 결국 사주고 말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무릎을 굽혀 아이와 시선을 맞추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 엄마랑 같이 생일날 와서 사자."

"왜요? 지금 사주면 안 돼요? 그날 아무것도 안 받아도 돼요."

"생일날 받기로 했으니까 엄마랑 일주일 후에 다시 와요."

"왜요? 지금 사는 거랑 그때 사는 거랑 똑같잖아요."

"똑같지 않아요."

"왜요? 그럼 기다려야 하잖아요."



아이는 쉴 새 없이 이유를 물었고, 엄마는 아이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느린 속도로 또박또박 말했다.



"기다려야 하는 게 항상 나쁜 건 아니에요. 엄마는 우리 딸이 기다리는 동안의 행복도 알게 된다면 좋겠어요. 내가 인형을 가졌을 때 어떤 기분일까,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면서 즐겁게 기다리는 거예요. 엄마는 그동안에도 아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죠?"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는 듯했다.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다음 주에 다시 올게, 우리 행복한 마음으로 기다리자, 라며 인형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는 여러 번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 작고도 소중한 경험으로 인해 기다리는 과정마저 즐겁게 받아들이는 아이로 자랄 것 같았다. 안된다는 말 하나로 꾹 참느라 속이 상하고 이유도 모른 채 다음으로 미루느라 애가 타는 아이가 아니라, 어쩌면 갖고 싶은 걸 갖지 못하게 되더라도 크게 절망하지 않는 아이로.



엄마와 아이는 백화점 안의 커다란 장식물을 지나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문구와 새해를 반기는 문구들, 그리고 다양한 크기의 선물상자들이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그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났다. 한 편으론, 받게 될 선물을 손꼽아 기다리는 동안 이미 흠뻑 행복에 젖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어떤 걸 기다리며 그토록 설렜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기다림, 그 자체가 준 행복들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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