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드라마 속 대사로부터
직장 생활을 통틀어 가장 험난했던 프로젝트가 막을 내렸다. 걷기만 해도 좋은 초봄부터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늦여름까지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일에 매달렸다. 4개월이란 시간 동안 우린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여러 번 겪어야만 했고, 그럼에도 각자의 주말을 반납하고 머리를 쥐어짜고 또 쥐어짜야만 했다. 지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텅 빈 거리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처음으로 굳은 다짐을 했더랬다. 그래. 이놈의 프로젝트. 끝나기만 해 봐라.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다. 이를 악물었다.
비장한 다짐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건지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자마자 전에 없던 휴식이 주어졌다. 휴식이라고 해봤자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긴 했지만, 사람 마음이란 참 간사해서 안정적인 생활에 적응하고 나니 새벽 3시의 다짐은 이미 흐릿해지고 없었다. 그 이후엔 코로나로 인해 숨 가쁘게 돌아가던 일들이 잠정적으로 연기됐다. 실적이나 성과급을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 그제야 계절과 시간이란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해피엔딩은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났기에 가능했다.
우리 결과 가지고 이야기하지 말자고요.
결과가 나쁘더라도 과정이 좋으면
사람이 남더라고요.
_드라마 '김 과장'
성공 혹은 실패로 끝나는 일을 자주 접하다 보면, 실패의 무게가 버거울 때가 있다. 심할 경우 자책감에 빠지거나 자존감을 깎아먹기도 한다. 아마도 그건, 성공이란 것이 '무조건 좋은 일'이라는 당시의 확고한 인식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반드시 좋은 일'과 '반드시 나쁜 일'을 명확히 구분 지어두었을까. 그렇다면, 실패 뒤에 남은 '귀한 사람'과 '단단해진 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성공의 기쁨보다 더 오래 남을 것들을 나는 이미 경험한 바가 있다. 그래서인지, 성공과 실패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은 분명해도 그 일이 두고두고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예측하기가 어렵다.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어느 순간 가장 도움되는 일로 남기도 하고, 당시엔 운이 좋았다고 여긴 일이 조금은 원망스러운 일로 기억되기도 하니 말이다.
덕분에 나는 지나치게 마음 졸이며 사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실패를 맛보겠지만,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면 괴로워하는 일은 조금 미뤄두자 생각한다. 지금 눈앞에 찾아온 일들이 훗날 내 인생에 어떤 조각으로 남을지는 두고 봐야 알게 될 일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