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드라마 속 대사로부터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일상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게 익숙한 나도, 한동안 SNS를 끊은 적이 있다. 계정을 모두 비활성화하고, 핸드폰 속 어플도 모조리 지워버렸다. 다른 이들의 삶이 궁금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알고 싶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여러모로 주눅이 든 상태였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것 같은데, 결과는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듯했고, 어렵게 얻은 기회마저 자꾸 빼앗기는 것 같았다. 결국 누군가의 행복이 상처가 되는 지경에 다다랐다. 내 주위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내 길만 험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더 끙끙댔을까. 억울하다는 생각에 젖어있는 동안, 나는 잘 걷지도 잘 뛰지도 못했다. 그 생각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불안감. 남들보다 더디게 성장하는 듯한 답답함. 이런 상태라면 마음을 다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인생 마라톤인 거 몰라?
이번 코스가 끝나면 다음 코스가 나와.
원래 내 길만 험해 보이는 거야.
다들 자기가 결정한 길,
기어서라도 가야 되는 건 다 똑같아.
_드라마 ‘오 마이 베이비’
그때의 난 단거리 트랙 위의 선수와 같았다. 내가 정해둔 목표지점이 있었고, 같은 지점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바빴다. 옆 트랙은 얼마나 앞서갔는지, 나보다 뒤처진 트랙은 얼마나 되는지 연신 눈을 돌려댔다. 그러고 나면 내 트랙이 유난히 거칠어 보였다. 내가 신은 러닝화만 낡고 초라해 보였다. 그럴수록 점점 더 달리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고민 많은 이 길을 나는 앞과 옆, 뒤까지 신경 쓰며 달리고 있었으니. 결국, 그런 생각들이 내 삶이 아닌 다른 삶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이의 삶이 유난히 빛나 보이는 건, 그 사람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보기 때문이란 말이 있다. 나 또한 누군가의 하이라이트를 보며, 부러운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런 마음으로 나의 하이라이트를 찾아 기록했을 것이고, 누군가도 그 기록을 보며 여러 감정을 느꼈을 테지만,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실이 있다. 우리 모두는 비슷비슷하게 행복하고, 비슷비슷하게 불안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렇게 공평하게 주어진 하루가 또 지나가고 있다는 것.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단거리 트랙이 아니다. 거리도, 모양새도, 골인 지점도 같지 않을 저마다의 장거리 트랙 위에 서 있다. 그렇다면, 그 길에서 계속해서 살펴봐야 할 대상은 과연 누구일까. 남이어야 할까, 나 자신이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