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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잡기의 연속

9화 : 시니어가 된다는 것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제가 다니는 곳에선 경력이 8년 차 이상인 사람들을 ‘시니어’라고 부릅니다. 8년 내내 주니어로 살다가 처음 “시니어님”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죠. 갑자기 책임을 더 묻는 것도 아닌데 마음가짐이 많이 달라졌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저만의 기준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기도 했고, 여러 성향의 사람들과 일을 해보며 대혼란을 겪기도 했었죠. 어느 정도까지 이타적이고 우호적이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그동안 제가 가진 기준이라곤 ‘친절한데 일도 잘하는 사람’ 이 한 줄 밖엔 없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모호한 기준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친절하다는 것과 일을 잘한다는 것 모두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요.


저 한 줄만 갖고 회사 생활을 하기엔 생각들이 마구 뒤엉키기 일쑤였습니다. 친절한 사람이라는 기준을 갖고 일을 대하다 보면 딱 잘라 말해야 하는 순간에도 일단 감정을 꾹꾹 누르게 되었죠. 그러다 보면 억울한 마음이 생기고 어느 날 엉뚱한 방식으로 날 선 말들이 튀어나오기도 했습니다. 마음이라도 후련하면 모를 텐데 되려 후회하며 밤새 뒤척이곤 했어요. 다시 생각해도 정말 피곤하고 괴로운 날들이었습니다. 무작정 웃으면서 열심히만 하는 게 능사는 아닐 텐데. 저는 혼란스러웠던 상황들을 곱씹으며 하나하나 골똘히 생각해 보기 시작했어요. 가령 이런 것들이었죠.


회사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집단임을 잊지 않는다.

회의실에선 감정을 빼고 사실에 집중한다.

일에 대한 피드백을 나에 대한 피드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서로 감정 상하면서까지 해내야 할 일은 없다.

모든 일을 할 땐 ‘이걸 왜 하는지’ 생각한다.

무례한 대상에게 친절할 필요는 없다.


일이나 관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질수록 감정소모를 하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저 기준들이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를 지킬 가이드라인을 세워두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런 경계 없이는 침범당하기도, 상처받기도 쉬워지는 거 같거든요. 문득 제가 참 좋아하는 김경일 교수가 한 말이 떠오릅니다. 일에 진심인 데다 인품까지 좋은 동료라면 더더욱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비겁하고 못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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