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다!
요새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다. 자매품으로는 “지친다”가 있다. “지친다”, “지친다”를 두어 번 되뇌는 상황이 오면 자연스럽게 “지겹다”라는 말이 뒤따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20개월에 접어든 아이에게는 공포의 재접근기가 찾아왔고, 나에게는 공포의 마감이 찾아왔다. 게다가 며칠 전부터 1시에서 3시까지 꼭 낮잠을 자던 아이가 낮잠을 안 자려한다.
재접근기 & 사라진 낮잠 & 마감, 그야말로 환장의 컬래버레이션이 아닐 수 없다.
나름 올해부터 계획적으로 살아보겠다고 <거인의 노트>와 <파서블>을 완독 하고, 한 달 일기장을 구입하고, 아침마다 하루를 시뮬레이션하며 한 달을 알차게 채워보리라 다짐했건만, 아이는 이 모든 것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마땅히 자야 할 낮잠 시간에 자지 않으니 그때 해야 할 집안일들이 밀리고, 내 하루도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이 다 무슨 소용이냐, 이럴 땐 계획을 세운 게 오히려 스트레스다)
아이는 어느새 내 하루의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되었고, 아이가 낮잠을 안 자고 버티는 오후 시간은 무의미하게 버리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졸린데 자지 않으니 잔뜩 짜증이 난 아이의 징징거림과 재접근기로 인한 매달림은 기본 옵션이다)
그러다 오늘 아침, 한 주 계획과 하루 계획을 세우다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었으니, 내 한 달, 일주일, 하루 계획에 티거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얼마나 충격이었냐며, 심지어 내 하루 계획에는 '장보기'도 들어 있었다. '어머님께 전화드리기' 같은 것도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물론 티거가 깨어 있는 시간에는 내내 같이 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대한 계획은 전혀 없었다. 기껏해야 그 시간 동안 틈틈이 빨래 개기, 청소하기 같은 계획만 있을 뿐, 오롯이 티거에게 집중하는, 티거를 위한 시간이 없는 것이다.
육아 역시 나의 중요한 과업 중 하나인데, 어느새 ‘알아서 크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막 태어났을 때, 아니 돌까지만 해도 몇 개월에는 어떤 발달이 있는지 하루에도 여러 번 검색하고 찾아봤는데, 최근 검색 기록을 보니 ‘20개월 아기 짜증’ 정도가 검색어의 전부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티거와 함께 있는 시간을 소홀이 여긴 것도 모자라, 그 시간을 낭비하는 시간, 무의미하게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집안일이나 글쓰기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으니까.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너무도 확연한 결과물이 있는데. 우리 티거가 눈앞에서 하루하루 자라고 있는데.
당장 내 하루 계획에 티거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하루 10분 스트레칭처럼 최소 하루 10분은 육아 정보를 검색하자. 새로운 유아식을 만들어주거나 새로운 놀이를 하거나. 그리고 저녁 시간은 오롯이 티거를 위해 쓰자. (생각해 보니 그때 뭘 하려고 한 게 오히려 더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다)
아이와 있는 시간 역시 내가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되고 만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아이와 함께 하는 오늘은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