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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기술 (The Art of Time)

재핑(zapping), 채널을 멈추게 하는 힘

by 성민기
대한민국, 분초 사회에 살다

오늘날 우리는 그야말로 ‘분초 사회’에 살고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몇 초가 늦게 닫혀도 조급해지고, 배달 앱에서는 ‘10분 배달’ ‘30분 보장’ 같은 시간 경쟁이 치열하다. 그리고 SNS에서 짧게는 15초, 길게는 1분짜리 숏폼 영상이 콘텐츠의 주류가 되면서, 시청자의 시선은 점점 더 빨리 이동하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 직장인의 85%가 번아웃을 경험하고(30~40대 기준), 20대조차 건강보조식품을 챙겨야 버틸 정도로 바쁘다는 기사를 누구나 쉽게 접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바쁘다.


이런 바쁜 리듬은 홈쇼핑과 닮아 있다.

24시간 중 20시간을 생방송으로 이어가는 홈쇼핑은, 그야말로 ‘분초 단위 사회’를 압축해 보여주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초 단위의 전쟁과 재핑(zapping)

이런 분초 단위로 매출을 가늠하는 홈쇼핑은 재핑(zapping) 채널의 특성을 갖는다.
여기서 재핑이란 “시청자가 광고를 피하거나 더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찾기 위해 채널을 전환하는 행동”이다. 이는 TV방송 시청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따라서 쇼호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재핑의 순간시청자를 붙잡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첫인상은 불과 6~7초 안에 결정된다(Mehrabian, 1972)고 한다. 그리고 이때 미디어에 노출된 등장인물의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다.

결국, 그 중요한 찰나의 순간에 고도의 고객 설득이 매출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드라마 재핑 타임
드라마틱한 순간

특히 공중파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은 그야말로 홈쇼핑에겐 ‘드라마틱한 시간’이다.
광고를 피하거나 여운 속에서 채널을 돌리던 시청자들이 홈쇼핑으로 동시에 대거 유입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짧은 ‘드라마 재핑 타임’이 홈쇼핑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때 쇼호스트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고객님, 지금 <ㅇㅇ 드라마> 보고 오셨죠? 저도 참 좋아하는 드라마예요.”
이 한마디는 고객을 놀라게 한다.
마치 낯선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처럼, 즉각적인 친밀감이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드라마틱한 공감 소통의 힘이다.


1분의 힘
시간은 곧 매출

이렇게 홈쇼핑에서는 시간을 잘게 쪼개 관리한다.
방송 종료 직전, “매진 임박!” “주문 서둘러 주세요!”라는 멘트는 단순 과장이 아니다. 시청자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서 결정을 내리며, 실제 결제까지는 약 3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홈쇼핑에는 ‘분당 주문액’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 달 매출이 아니라, 1분 단위로 매출 효율을 관리한다.
실제로 진행했던 한 방송에서는 1분에 1억 5천만 원의 매출이 발생한 적도 있다. 만약 이 기록이 10분 이어졌다면? 10분에 15억 원이 되는 셈이다.
이렇듯 홈쇼핑은 시간과 매출이 곧장 연결되는 살아 있는 현장이다.


SNS 속 재핑
스크롤을 멈추게 하는 힘

그러나 이제 재핑은 더 이상 TV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같은 SNS에서도 우리는 매일 재핑을 경험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 친구의 일상을 보다가 광고 영상이 삽입된다. ‘넘길까? 몇 초 더 볼까?’를 즉각 결정한다.

유튜브: 영상을 클릭하면 프리롤 광고가 뜬다. 대부분 ‘5초 후 건너뛰기’를 누르지만, 어떤 광고는 흥미로워 끝까지 보게 된다.

틱톡·릴스: 짧은 영상 사이에 끼어든 광고는 1~2초 안에 시선을 못 잡으면 바로 스와이프 된다.

네이버·카카오: 뉴스 기사 중간에 삽입된 배너도 대부분 스킵 대상이다.

리모컨 대신 손가락을 움직일 뿐, 본질은 같다.
단 몇 초 안에 고객의 시선을 붙잡느냐, 놓치느냐의 싸움이다. 재핑은 이제 TV를 넘어 우리의 모든 디지털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분초 사회와 재핑의 교차점

지금 세대는 더 빠르다.

15초 숏폼 영상 → 5초 안에 흥미 없으면 넘긴다.

배달·쇼핑 → ‘빠른 시간 = 서비스 가치’로 직결된다.

AI와 자동화 → 답변·추천도 몇 초 안에 이뤄져야 한다.

이처럼 분초 단위로 시선이 이동하는 사회에서, 홈쇼핑의 재핑 대응 전략은 단순 방송 기술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마케팅의 교훈이 된다.

“짧은 시간 안에 시선을 붙잡고,
떠나지 않게 만드는 힘.”


순간의 힘

세네카는 말했다.
“우리에게 허락된 삶은 매 순간 줄어들고 있다.”
순간의 합이 시간이 되고, 시간의 합이 삶이 된다.


재핑 시대에 중요한 것은 순간을 붙잡는 힘이다.
홈쇼핑의 ‘1분 매출’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고객의 선택이 이루어지는 삶의 순간을 증명한다.


그래서 생각해봐야 한다.
“당신의 브랜드는 단 1분 안에 고객을 멈추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참고문헌

김진호, 신해진, 박준환 (1995). 텔레비전 시청 중 재핑 행동에 관한 연구. 방송연구.

Mehrabian, A. (1972). Nonverbal Communication. Chicago: Aldine-Atherton.

Rubin, A. M., Perse, E. M., & Powell, R. A. (1985). Loneliness, parasocial interaction, and local television news viewing. Human Communication Research, 12(2), 155–180.

최양호 (1999). TV 앵커의 전문성과 준사회적 상호작용. 한국방송학보.

김현주 (1994). 텔레비전 시청시간과 준사회적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박웅기 (2003). 미디어 등장인물의 성별과 준사회적 상호작용의 관계. 언론학연구.

Seneca. (c. 65). On the Shortness of Life (De Brevitate Vi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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