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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가연 May 17. 2024

6샷 모카포트 : 좋아하는 거면 더 맛있게 먹기로 해



쓰는 물건 연재를 잠시 멈추었다. 우선 집중력이 흩어졌고, 감정적으로 지쳐 있는 순간들이 꽤 있었다. 내 주변이 혼란스럽게 느껴지면,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정리를 한다. 어쩌면 봄에서 여름이 되어가는 계절이어서 단순히 여름옷을 꺼내느라, 겨울 동안 묵은 집안의 물건들을 털어내느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책상 두 개를 버리고, 소파를 버리고. 한동안 입지 않았고 언젠가 입을 거라 생각했던 옷을 자주 다니던 교회에 기부했다.


내 곁에서 오래도록 남은 물건들은, 그 존재의 의미를 견고하게 다져간다.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는 사이에서 6샷 모카포트는 5년은 사용했을 것이다. 덜렁거리는 내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듯, 플라스틱 손잡이는 녹아내렸고 불에 그을러 전투형이 따로 없다.


모카포트는 아침마다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토해낸다. 나는 그것을 받아먹으며, 새 아침에 대한. 오늘 하루에 할 일들을 메모한다. 이 정도의 긴장감은 누구나 가지고 살아가는 건데... 때때로 6샷 커피를 먹는 것이 내가 내 몸에 하는 행동 중 최고로 해로운 짓이 같아서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과하게 술도, 식사도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커피만큼은 과하고 과하게 달리는 편이다. 그게 병을 부른다. 때때로 눈 밑에 경련이 나고, 얼굴 근육이 땅기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밤새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참지 못하고 계속 커피를 마시고 있다.


왜?


그 깨질 듯 당겨져 있는 카페인에 취해 있는 감각이 좋아서다. 그런 상태로 밤에 혼자 키보드를 두들기며 제 속에 있는 이야기를 적어 내려다보면 세상만사, 오늘 하루동안 했던 고민들이 이 글처럼 한 줄로 정렬되어 매듭이 지어질 것만 같다. 그 당겨지고 정갈해진 기분이 꽤나 좋아서 아이들이 자고 그 시간이 얼른 오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매일 밤을 그렇게 보냈다가는 반드시 병이 난다.


커피 때문에 위염, 장염, 수면장애가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38살이 되자 밤을 새우는 일도 어렵고 아무리 늦어도 2시에 잠들지 않으면 다음날까지 활동할 때 지장이 생긴다. 전날 새벽 2시에 잤다면 그다음 날은 반드시 11시쯤에 누워서 푹 자두 어야 한다. 이렇게 나를 쉬게 해주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여러 번 무리를 하고 아파본 뒤에 생긴 습관이다. 한참 일욕심이 많을 때는 6샷의 커피로도 모자라서 하루 12샷을 먹을 때도 있다. 들이붓고 또 부으며 나 스스로를 재촉했다.


달려 더 달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성과를 위해서 스스로를 쥐어짰다.


그래서 해냈어?


아니었다. 중간쯤. 나는 계속 떨어져 나가기를 반복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마도 커피만 마시면서 쥐어짜기에는 이제 바닥이 나버린 체력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짜낼 체력도 없으니 운동이 시급하다.


임시방편으로 커피를 마시지 않고 6샷 모카포트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커피를 참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커피를 참는다는 것은 밥보다 고기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매일 먹던 커피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 놈의 검고 검은 물. 그 물을 입 안 가득 들이부으면 참았던 시간만큼 더 달다. 그런데 정말이지 내가 이 커피 맛을 제대로 즐기고 있기는 한 걸까. 어느 순간. 정신없이 유튜브를 보며 퍼 마시던 커피 잔을 허망하게 쳐다보았다. 아메리카노에 얼음이 다 녹아서는, 싸구려 커피콩으로 겨우 뽑아 올린 밍밍한 그 맛.


이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좋아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것뿐이고. 그 일을 위해서 좋아하던 커피를 마셔 밤 잠을 줄이고 나를 재촉했던 것뿐인데. 이 방법이 아니었다고?



글과 커피에 온전히 집중할 수는 없을까.


우선 당장 바꾸기 쉬운 커피부터. 카페인을 수혈하기 위해 마시던 것에서 벗어나, 커피 원두를 업그레이드했다. 우리 동네 로스팅을 직접 하는 지인 가게에서 다크로스팅 커피콩을 구입하기로 했다. 갓 뽑은 커피는 전에 먹던 커피보다 만원 정도 비싸다. 1킬로에 2만 원에서, 3만 원이 되었다. 만원 차이지만 만족감은 꽤 컸다.


더 고소해졌다.


커피와 마찬가지로 글에 대해서도 내가 정말로 놓치고 싶지 않은 신조가 무엇일까. 내가 애초에 글을 왜 쓰고 싶어 했는지,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읽고 이 길에 들어섰는지 떠올려 보았다. 어린 시절 나는 청소년 문학을 읽으면서 종종 눈물을 쏟았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도 좋았지만, 독서를 하면서 가장 강렬한 경험을 했던 책은 바로 엑토르 말로의  <집 없는 아이>였다. 이제는 너무 오래전이라 구체적인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지만. 집 없는 아이가 엄마를 찾으러 다니고, 배에서 그 엄마를 만나는 엔딩만큼은 여전히 기억한다. 내 마음속에 그린 장면은... 흐릿하고 아련하게 남아있다.


그 당시 나는 중학생으로 장편을 후루룩 읽어낼 만한 독서력이 없었다. 근데 엑토르 말로 작가는 내가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나를 끌어당겼다. 오로지 이야기와 문장만으로. 엑토르 말로 같은 작가를 사람들은 페이지터너.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 힘은 실제로 느껴본 사람은 감탄하고 존경하게 된다. 이미 죽은 엑토르 말로 작가가 내 옆에서 살아서 종이를 넘겨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 사람은 이미 죽었는데... 내 안에 살아있어.


그 강한 이끌림. 나는 그 경험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 문학을 전공하고, 교육원에서 드라마를 배웠다. 이론으로는 클리셰와 문학의 문법은 이해했지만. 그 작가만의 아무라만큼은 여전히 이해할 수도 없고 해낼 수 없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때 내가 홀린 듯 읽어 내려가며, <집 없는 아이>를 쓴 작가와 미친 듯이 대화를 나눈 것 같았던 감각 말이다.


이십 대에 성장하고 난 후에는 강렬하게 내 안을 휘젓고 간 작품은 폴오스터의 <달의 궁전>과 <우연의 음악>이었다. 폴오스터는 특유의 노동자 마인드로 가난한 이들을 생생하게 묘사해 냈고 그 현장을 신랄하고 유머 있게 그려냈다. 그의 솔직하고 수다스러운 말투가 책 페이지마다 떡처럼 이어진다. 그 겹겹 쌓인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숨이 턱 막힌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와 결이 맞는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의 문장 떡이 사랑스러웠다. 그 문장들이 아주 재밌었기 때문이다.


폴오스터의 작품은 전체 작품을 다 읽어야겠다는 목표로 하나씩 도장 깨기를 해왔다. 그러면서 그의 작품들이 마치 하나의 덩어리처럼 머리에 섞여 버렸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은 모두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 변주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계속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경계를 점점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폴오스터 작품 전체가 변주되면서 그는 이십 대 후반, 방황하던 나에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우연의 음악일 뿐이다. 그 우연에 의미를 더해 자신을 탓하지 말거라. 너의 실패도, 너의

성공도 우연이다. 그저 우리는 달리는 차 안에서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노래를 들을 뿐이란다."


소설 전체를 읽고 나는 폴오스터에게 그 말을 선물로 받았다. 내가 자주 자책할 때마다... 그가 내게 말해준 마법의 단어를 떠올린다.


 "이건 내 삶에 잠시 벌어진 우연일 뿐이야."


폴오스터의 임종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아주 먼 곳에 있던 별이 져버린 기분이었다. 폴오스터 작가가 한국에 내한한 적이 혹시 있었을 수도 있는데... 왜 진작 그의 소식을 더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언제나 그 작가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그 아쉬운 마음으로 떠난 폴오스터의 작품들을 마저 읽어야겠다.


내가 더 좋아하는 커피를 맛있게 먹는 것으로, 퇴색된 일상을 세우려고 했다면...  폴오스터의 달의 궁전에도

예술을 대하는 삶의 자세를 알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한 노인이 자신에게 소설을 읽어주는 청년에게 전시장에 있는 그림을 보러 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그 청년은 그 한 장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 그 그림을 보기 전에는 길이나 버스에서 되도록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 전시장에 있는 다른 그림도 보지 말고 오로지 그 그림만을 직진으로 보고 온다.

 


바로 이 그림이다. 어떤가. 완전히 맨눈으로. 깔끔한 눈으로 이 그림만을 온전히 집중해서 마음에 담는다면... 그 행동 자체로 이 그림은.. 내가 만원을 더 지불하고 마신 커피콩처럼 신선해질 수 않을까? 맛있는 커피를 골라 목마른 입술에 붓는 마음으로 매일을, 이 밤을 나날이 적어 내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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