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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2. 책과 노트북과 놀다 보니 어느새

봄이 되었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긴 겨울이 끝나간다. 절기로는 우수도 지났지만 춥다. 겨울은 모든 서민들에게 힘든 계절이지만 낚시꾼에게 유달리 혹독한 계절이다. 유튜브 낚시동영상과 낚시 사이트를 기웃거리지만 낚시素症(소증)을 가라앉히기에는 한계가 있다. 낚싯대도 정비했으며, 색이 바랜 찌에는 밝은 색을 입혔고 줄도 새로 묶었지만 봄은 아직 멀리 있다.

물론 가끔씩 실내낚시터에도 달려가곤 하지만 실내낚시터는 커다란 비닐하우스다. 갈 때마다 답답하기도 하고 야외가 그리워 후회도 한다. 손으로 전달되는 붕어의 몸부림만으로는 素症을 가라앉히기 힘들다. 붕어가 잡히지 않아도 탁 트인 전망과 시원한 공기를 마셔야 낚시하는 맛이 난다.

용감한 낚시꾼들을 위해 겨울 내내 실외낚시터를 운영하는 곳도 있다. 수면에 波紋(파문)을 일으켜 낚시할 곳의 물이 얼지 않게 조치하고 석유난로도 대여해 준다. 낚시의자용 온돌 등 낚시꾼을 위한 전용난방용품들도 개발되었지만 혹한 속에서 손을 호호불어가며 낚시할 용기는 없어졌다.

나이 들면 용기는 줄어들고 겸손이 늘어나게 인간을 설계한 조물주의 지혜에 감탄할 따름이다. 나이와 용기가 정비례하고 겸손이 반비례하는 설계도였다면 겸손을 모르는 무모함으로 인해 인간평균수명은 대폭 짧아졌을 것이다.


매년 겪는 일이기에 해가 바뀐 겨울에는 도서관과 친하게 지낸다. 손녀집 근처 산책로에 예쁜 공공도서관이 있다. 보고 싶은 책 신청부터 알림까지 앱에서 이루어지고 책대출과 반납만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열람실 여건도 좋다. 산책 가는 길에 책을 반납하고 빌리니 매우 편리하다.

지인들에게 한 달에 책 2권 정도를 소개한다. 지난겨울 2~30권 넘게 읽었으니 일 년 동안 소개할 책을 거의 다 읽은 셈이다. 지난겨울에는 동양고전을 많이 읽었으나 이번겨울에는 주로 불교철학과 스님들이 쓰신 책을 읽었다.

손녀를 돌보느라 지인들 만나는 기회가 줄었다. 반가운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기회가 줄어 섭섭하기는 하지만 건강을 위해 외식을 줄여야 하는 상황과는 잘 맞아떨어졌다. 손녀가 할아버지 건강을 챙겨준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으며, 지인들에게 소개해줄 책 읽는데 많이 사용했으니 섭섭함은 줄었다.


많이 끄적거려 놓았다. ‘brunchstory'에는 1주 3편 정도 글을 올려놓는데 요즈음은 커피로스팅, 네덜란드와 그리스 여행기, 책소개를 올려놓는 중이다. 노트북과 열심히 놀다 보니 글도 많이 써놓아 여름 낚시시즌까지 놀아도 될 정도로 많다. 나이 들면 잔소리가 늘어간다는데 입은 조용하나 돌연변이처럼 손가락이 시끄러운 인간유형도 있나 보다.

새로운 놀이도 하나 생겼다. 지난 이야기는 비슷한 주제들끼리 묶어 'YouBook'이란 플랫폼에서 ‘minibook’으로 만들고 있다. 'YouTube'가 동영상을 올린다면은 'YouBook'은 글을 올리는 플랫폼으로 운영은 비슷한 개념이다. 10페이지짜리 ‘minibook’은 작가와 운영자가 수익을 나누기로 되어있어 정가 100원을 매겨 놓았다. 취미는 돈을 써야 하는 것이란 지론을 갖고 있지만 공짜로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이 미안해 상징적으로 가격을 책정했다. 새로 생긴 놀이도 있어 은근 짜인 시간을 보냈기에 심심하지는 않은 겨울을 보냈다.


책과 노트북과 열심히 놀다 보니 눈이 침침해졌다. 도수를 조정해 안경을 새로 만들었다. 지인과 만나 가끔 당구 치며 공이 맞지 않으면 안경 바꿔야겠다며 농담하곤 했는데 실제로 눈이 나빠졌단다.

놀다 보니 어느새 봄이 되었다. 양지바른 앞 베란다의 목련은 1월부터 하얀 솜털 봉오리를 만들고 시위하고 있다. 목련 아래 자리 잡은 동백은 성질이 까칠하다. 매년 꽃봉오리가 터질 듯 하지만 꽃은 보기 어렵다. 까칠한 것이 아니라 수줍음이 많은 것인가? 매화도 움이 봉긋 솟아올랐다. 작년 초겨울 따뜻한 날씨에 꽃이 피었던 벚꽃도 움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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