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사랑해야지 이 작은 것들(2) (이철수著, 삼인刊)
눈이 오시네요
밤눈이 소담스럽습니다.
긴 이야기 대신 넉넉하고 아름다운 눈발 보냅니다.
잠시 눈 오시는 소식 들어보시지요.
세상과 마음의 구차한 변명 같은 것 잊어도 좋을 듯합니다.
마음 집
당신 몸뚱이가 당신의 마음 집이잖아요?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마음처럼 살지 말고, 집에 정붙여 살아야지요.
인물이 못해서? 다리가 짧아서? 스타일이 아니어서? 머리가 나빠서?
설사, 눈 어둡고 귀 어둡고 말 못하고 사는 몸뚱이라도 엄연한 집입니다.
마음 깃들기 모자람이 없지요.
한판
밝고 우애 넘치는 하루가 되시기를...
윷판도, 삶도....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한판입니다.
이겨도 좋고 져도 좋은 판이지요.
함께 어우러져 꿈인 듯 놀다가는 길에, 다툼이라니요!
저울 하나
살찐 새는 본 적이 없습니다.
야생의 것들은 가볍게 움직이지 못하면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아는 탓이지 싶습니다.
사람과 함께하는 것들이나 사람을 닮아 살도 찌고 성인병도 앓습니다.
저도..., 저울 하나 샀습니다. 몸이 이는 듯싶어서요.
꿈자리
꿈자리 사나워 밤중에 잠 깨다.
.....마음자리에 도둑이 든 탓이다.
깊은 밤,
혼자서 뉘우치다.
주름
이 바쁜 와중에, 아내와 아이가 사진을 정리한다며 작업실을 어수선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웃고 이야기하는 모녀가 정겨워 보이네요. 가끔 제게도 보여주는 재미난 사진을 보면서 문득 문득 흐르는 시간이 느껴집니다. 보톡스란 주사약으로 주름을 없앤다고 하지요? 옛 사진을 보면서 확인하게 되듯이 주름은 시간의 산물입니다. 시간하고 싸우자고 드는 무모함이라니요. 어리석은 짓이 분명하지만, 그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어지는 중장년의 심경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닙니다. 마음결이 곱고 따뜻하게 드러나는 보기 좋은 주름이나 꿈꾸고 살아야겠다 싶었습니다.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의 손 안 빌리고 혼자 할 수 있으니 해볼 만한 일입니다.
밥의 깊은 의미
값싼 백반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게 된 식당에서 물을 담아놓고 밥을 기다리는데, 동행한 친구가 그 식당소개 겸해서 해준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제게 좋아서 그대로 옮깁니다.
어느 날, 밥 먹고 있는데, 거지 중에도 상거지라고 할 만큼 험하고 더러운 몰골을 한 남자가 식당에 들어서더랍니다. 들어와서 주인을 찾더니 밥 좀 얻어먹을 수 있겠느냐며 묻더라지요? 그리고는 식당 한가운데 탁자를 차지하고 앉았다고 했습니다.
아직 새파랗게 젊은 식당집 아들이 걸인에게 밥을 차려 내는데, 보아하니 돈 내고 먹는 밥상을 한 가지도 빼지 않고 다 가져다 놓더랍니다. 그리고 걸인이 비우는 밥그릇을 살피다가 밥 한 그릇을 더 갖다놓아 드리더랍니다. 걸인은 부끄러운 기색 없이 배불리 밥 먹고 일어났는데, 복색이며 역한 냄새까지 불쾌해할만하다 싶었는데도 식당 집 아들은 끝내 불쾌한 내색 없이 여느 손님처럼 맞고 보냈다지요.
참 아름답고 깊어 보이는 밥장사 청년은, 벌써 밥의 깊은 의미를 알고 사는가보다 싶었습니다. 충주 영덕삼거리에서 만난 사람이야기입니다.
어머니처럼
잠시 대문밖에 나갔다가 돌아들어오는 길에,
흙바닥에 나지막이 깔려있는 키 작은 초록생명을 보았습니다.
키 작고 아름답습니다.
키 큰 명자나무 아래 조금 드러난 흙에서,
봄의 온기 따라 그 작은 키를 키우고,
겸손하고 작은 꽃을 피워낸 생명이 문득 소중했습니다.
이 키 작은 생명처럼
비좁은 데서 당신의 마음과 몸을 다해 우리를 키우신 어머니처럼.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 오신 날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 세상이 알고 이웃이 알고 내가 아는 껍데기뿐인 내가 진정 나인가?
그 물음을 전하자고 부처님이 오신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내일이 그날이지만 오늘 저녁에 그 물음을 마음에 품어 안지 못할 이유가 없겠지요?
욕심에 사로잡히고, 세상에서 얻은 것에 연연하며 살아가는, 진흙탕 속의 나를 깊이 생각하면서 오늘 이 주말 밤 잠을 설친다고 해도 다행히 내일은 공휴일입니다. 부처님의 철학을 따라 믿는다는 이들도 저를 살피는데 열심이기 어렵고 힘든 세상이기는 합니다. 자비와 연민이 마음에 그득한 존재가 되는 건 더 멀리 있는 꿈이지요. 그래도 오늘 하루쯤은...
닫힌 마음
살다보니 제일 많이 듣게 되는 게 정치인들의 말입니다. 그중에도 거짓말을 많이 듣게 되는 듯합니다. 조금씩 말을 바꾸고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지요. 멀리서, 언론 등을 통해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그 행간이나 말 사이에 드러나는 마음길이 훤히 보입니다. 장사를 해도 좋은 장사꾼이 되기 어려워 보이는 인물들이 공익을 다루는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으니 나라가 쉽게 좋아지기는 어렵겠다 싶습니다. 그래서 까다로운 규제와 감시 장치가 필요한 것이기는 합니다. 누구라도 한없이 정직하고 한없이 욕심 없이 살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도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형편이 어렵고 남을 향해 손가락질 할 때는 쉬워보여도 제 손으로 주물러보면 김밥한줄 싸기도 쉽지 않습니다. 밖으로 열려있지 못한 마음길입니다.
노심초사
오늘도 두어 번 논에 들어온 백로를 쫒아내고,
비 개고나면 날아 들어올 배고픈 산비둘기의 콩밭 공략을 하마 걱정하느니.
사람의 마음, 옹졸하고 옹색함이 이렇습니다.
넉넉하여 가진 것이 많을수록 노심초사 지킬 것이 많은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