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 사립같은 시립도서관

엥겔지수 높이는 메뉴를 선택해도 될 것 같다.

by 물가에 앉는 마음

세 번째 직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자유시간이다. 직장과 도서관이 수원시 광교 호수공원을 끼고 있어 책을 보거나 빌려 호수를 한 바퀴 산책하면 6~7 천보 정도 된다. 산책을 마치면 호수공원 주변에 맛집이 많아 하나씩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을 보고 빌리고 산책까지 하게 되니 집에 있을 때보다 편리하다.

호숫가 도서관은 경사면을 이용했다. 성냥갑 같은 네모 반듯한 건물이 아니라 돌출된 부분이 있는 계단식 건물구조를 갖고 있어 뒷문으로 들어가면 3층이지만 정문으로 들어가면 1층이다. 뒷문으로 들어가면 3층에서 1층까지 이어지는 계단이 이어져 있으며 개방감 좋아 눈과 속이 시원하다.

1층까지 이어진 계단은 통로이자 휴게공간이다. 군데군데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차와 샌드위치정도 가져간다면 카페 같은 분위기 속에서 책을 볼 수 있다. 밖에서 봐도 예쁘지만 내부는 아기자기하고 편리하게 인테리어를 했다. 이 정도면 시립 수준을 넘어선듯하다.

분당에도 집 근처 공원 내에 도서관을 신축하고 있는 중인데 이곳처럼 개성 있고 예쁘게 지으려는지 모르겠다. 경제발전에 발맞춰 重厚長大(중후장대)도 좋겠지만 輕薄短小(경박단소) 또한 인구절벽시대에 걸맞은 정책방향 중에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도서관의 장점은 회원등록만 하면 거의 무제한으로 책을 대출받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한 번에 7권까지 대출가능하지만 욕심부릴 필요는 없다. 등에 지는 색에 책을 7권이나 넣고 호수를 한 바퀴 도는 것은 노동에 가까운 일이다. 갈 때마다 3~4권을 빌리고 반납하곤 한다. 일이 바빠 대출도서를 읽지 못했다면 대출연장을 할 수 있다.

도서관에는 개인 서점 같은 기능이 있다. 읽고 싶은 신간은 월 2권까지 신청할 수 있으며, 1달 내에 구입하여 통보해 주며 신청자에 대출우선권이 있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22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으며 종이책과 전자책 모두를 대출받을 수 있다.


회원가입부터 모든 것이 앱에서 이루어지며 책을 대출받고 반납할 때만 도서관에 가면 된다. 이만하면 도서관에 관한 한 선진국반열에 확실히 들어선듯하다. 퇴직 전에는 그렇게 많은 세금을 걷어 무엇을 할까 궁금했었지만 직접 혜택을 경험해 보니 깨닫는 것이 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간 대출권한은 먼저 신청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기에 바로바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격 급한 사람은 개인구매를 해야 한다. 앱에는 대출 예약 기능도 있으나 그렇게까지 촌각을 다투며 읽어야 할 책은 많지 않다.

시립도서관을 이용하며 단골 인터넷서점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개인구매 횟수와 금액이 대폭 줄어 이제는 인터넷서점에서 VIP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반고객 수준으로 전락했다.


나주에 있을 때 숙소 앞에 도서관이 있어 여러 번 이용했었다. 시험철이 되면 도서관에는 초, 중생들이 넘쳐나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책 읽기 곤란했었다. 이곳은 성인과 어린이 열람실이 따로 있어 매우 조용하다.

단점은 식당이 없고 카페만 있다. 식당까지 20분 정도 걸어야 하니 식사하려면 1시간 이상 소요되지만 어찌 보면 이것도 장점이다. 하루종일 눈을 혹사하지 말고 밖에 나와 초록과 파랑도 보고 스트레칭도 하라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도 귀찮다면 샌드위치정도 싸와서 열람실 밖에 있는 계단식 소파나 야외 테라스 파라솔에 앉아 먹으면 된다.


아내와 같이 책 4권을 빌려 누계 60권이 되었다. 아내에게 ‘책 읽고 백만 원 벌었네’ 라며 농담했다. 호수 한 바퀴 돌고 점심을 먹는다면 오늘은 절약한 문화비가 있으니 엥겔지수 높이는 메뉴를 선택해도 될 것 같다. 대신 수원시 도서관에 신세 졌으므로 수원시에 있는 음식점을 이용해야 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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