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돼지 삼 형제>를 읽어주며 엄마 영은 말했다. 아가들아 보아라. 어른이려면 스스로 집을 구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 책 앞에 둘러앉은 나, 호롱, 도롱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각 열 살, 여덟 살, 네 살이었다. 갑자기 영은 진지하고도 무서운 표정으로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모여보라는 뜻이었다. 신호 맞춰 영의 근처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엄마도 스무 살이면 짐 딱 싸주면서 나가라고 할 거야.
스무 살이면, 의심할 여지없이 어른이었다. 선포는 장난스럽지만 확실했으므로 난 즉시 "응"하고 대답했다. 동생들은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응, 하고 키득거렸다.
계획보다는 늦게, 예상보다는 빠르게 집을 영영 나가고 싶어진 날이었다. 캐리어를 꺼내온 건 영이었다. 오래 쓰지 않아 먼지가 얼기설기 묻어 나왔다. 물티슈로 캐리어 구석구석을 닦는데 못마땅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기동성은 캐리어야. 여행을 그렇게 다녀봤는데 아직도 몰라?”
무거운 20L 배낭을 내려놓고 그녀의 말대로 짐을 쌌다. 조잡하게 구겨 넣은 수건, 잠옷, 양말, 팬티가 무더기로 쌓여있었다. 퉁퉁 부은 눈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러시아 유학을 조기 종료하고 쫓기듯 한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비자에 문제가 생겨 3일 만에 도착했고, 잠정 보균자로 분리되어 방에 격리되었다. 가족 중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의 손이 음식을 바닥에 내려놓고 사라질 뿐이었다. 잘 먹으라는 얘기라도 해주고 가지. 골이 났다. 문을 닫고 꼴 딱 꼴 딱 2주를 버텼다. 격리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조심스럽게 거실로 나왔다. 고생 많았어, 우리 딸. 영은 명절 같은 점심상을 차려놓았다.
내가 먹고 싶다고 말한 음식으로 식탁은 번잡스러웠다. 영은 삼겹살을 구웠다. 쌈을 크게 싸서 입 안 가득 넣으니 씁쓸하고 고소한 우렁 강된장에 혀가 돌았다. 마침내, 집이었다. 유학생은 깡그리 모스크바 제3 감염 병원에 감금된다던 흉흉한 소문을 지나, 무차별적 동양인 혐오를 건너 형형하고 온전한 쌈 한입을 입에 넣기까지 생생한 장면들이 눈앞을 스쳤다. 눈물이 차올랐다. 서서 고기를 굽는 영의 허리를 안았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더니 뱃살이 하나도 없었다. 영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서 두서없이 말을 토해냈다.
도중 아빠의 지적이 날아왔다. 나의 발화법과 단어 선택이 불편한 것 같았다. 갑작스레 "너 입이 참 더럽구나"하더니 태연히 쌈을 쌌다. 평소대로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면 그만이었다. 이상하게도 무시가 불가능했던 건 그가 댕강, 나와 엄마와의 대화를 끊어먹었기 때문이었다. 불편하고 거슬렸다. 악의 없다는 재스처로 매번 나를 겨냥하는 것 같았다.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이 더 더러워."
아빠는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꽈악 쥐고 손을 떨었다. "너 뭐라고 했어." 식탁 위 그릇들이 요동쳤다. 조금은 무서워져서 치와와처럼 소리를 질렀다. "뭐, 어쩌려고. 때리려고?" 그의 입술을 부들거렸다. "집 나가. 너 같은 딸년 필요 없어." 손이 문을 가리켰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을 있는 힘껏 닫고 이불속에서 목이 터져라 울었다. 눈물 콧물을 먹으며 애인 늘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늘보는 같이 욕을 얹으며 기꺼이 본인의 집을 내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짐을 캐리어로 옮겨 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영은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안 될까? 표현이 저래도… 의도한 건 아닐 거야. 너네 아빠가 원래 그렇잖아. 말주변도 없고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이잖아.”
작고 곤란한 목소리가 성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분주한 손을 멈추고 잠시 영을 쳐다봤다. 영은 양 무릎을 손으로 감싸고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갈색 동공과 진한 쌍꺼풀, 옅은 눈썹. 나와는 어디 하나 비슷한 구석이 없었다. "딸이라고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눈물이 보일까 잽싸게 팽, 돌아앉았다. "...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격리가 해제되는 00시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캐리어를 끌었다. 때 맞춰 택시 알람이 떴다. 방에 함께 앉아 있던 영도 현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방은 안 무거워?”
영은 뒤에서 배낭을 만지작거렸다.
“별로.”
빡빡한 운동화를 구겨 신는 동안 영이 배낭을 대신 들고 문을 열었다.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와. 뭔 일 있으면 전화하고, 없어도 전화하고.”
택시는 서울로 향했다. 전화가 울렸다. 내 담당 공무원 번호였다. 위치 확인차 전화를 걸었다 했다. 격리 장소를 의도적으로 이탈했는지를 물었다.
역병의 시대엔 예외 없이 야간근무를 하는 모양이었다. 정중하지만 가쁜 목소리가 상황이 위급하다는 걸 짐작케 했다. 지난 2주간 매일 아침마다 나의 방역 체크로 하루를 시작했을 그를 차분히 진정시켰다. 격리 기간을 착각한 그가 사과를 건네며 전화를 끊었다. 열 두시 20분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올림픽대로는 텅텅 비어 있었다. 이어폰을 꽂고 텅 빈 도로를 주시했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밤과 다를 바 없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