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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Aug 25. 2017

42. 슈퍼우먼이 되고 싶은 엄마

강해진다는 것의 의미

 몇 주 전, 엄마가 다시 운전을 배우겠다고 했다. 면허를 따고도 몇십 년간 단 한 번도 운전대를 잡은 적이 없는 엄마였기에 무슨 심정의 변화라도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다. 갑자기 왜 운전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엄마는 대답했다.

 "아빠가 운전을 못 하게 되어 버리면 엄마가 해야 하니까."

 아빠는 항암 치료 중이다. 상태는 계속 호전되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의 아빠는 아프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며 혹시 모를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던 것이다.

 말문이 막혔다. 엄마가 다시 운전을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운전을 하겠다고 하는 거냐며 가볍게만 여기고 말았기에. 엄마가 운전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도 아닌, 단순히 운전을 하고 싶어서도 아닌, 내 사람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니 엄마는 아빠가 수술한 그 이후부터 그 전과 달랐다. 음식 재료를 고르는 데 신중해졌고, 바쁜 와중에도 어떻게든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려 했다. 그런 와중에 탁구장 일은 멈추지 않았고, 아빠의 식사도 챙겨가며 이젠 운전까지 배우고 싶어 했다. 엄마는 더,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마치 슈퍼우먼이 되고 싶은 사람처럼. 그 이유를 이제 깨닫는다. 엄마는 영웅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던 것뿐이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삶 앞에 무력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과연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늘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지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아빠를 지키기 위해 슈퍼우먼이 되고 싶어 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슈퍼맨이 되고 싶어 했던 것이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잃기 두려웠던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두려움이란 대개 그런 형체가 없는 두리뭉실한 감정이기에. 지키고 싶은 것이, 잃고 싶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일단 강해져야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때로는 이기적이다 싶은 행동을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 합리화시키며 감행하기도 했다.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등 맘 편하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움직일 수 있던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아마 그런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섭섭함이라는 이름의 상처를 입혔는지도 모른다. 강해지기 위해선 그런 것쯤이야 가볍게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겠지. 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슈퍼맨 역시 도시의 빌딩이며 도로 따위를 부수는 것을 불가피하게 여기지 않던가.

 그러나 그것이 정말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들이었나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져 가는 앞에서도 여전히 나 스스로를 지키려고 할까? 주변에 상처를 입혀가며 나를 단단하게 만들겠다고 행했던 일들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정말 내가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일까? 설령 내가 슈퍼맨이 된다 한들,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진 이후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빠가 아프고 나서야 비로소 떠오르는 질문이다. 서글프다.


 엄마 앞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코 슈퍼맨이 될 수 없구나. 엄마가 보여준 강해진다는 의미는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사람을 지킬 수 있는 뜨거운 심장을 지니게 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알았다. 난 강해질 수 없었고, 절대 슈퍼맨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나는 사실 강해지려던 게 아니라, 도망치려 했다는 것을. 도망치는 게 강해지는 것인 줄 알았다. 슈퍼맨은 도망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슈퍼맨이 될 수 없었다.

 슈퍼맨의 자격은 강한 사람이 아닌, 가슴에 품은 뜨거운 심장이다. 내 심장은 너무나 차가웠다. 그 시린 온도가 이제 와서 자꾸 뜨거운 눈물을 만들어낸다. 나는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여전히 이 사실이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내 곁엔 아직까지 가장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그것들이 사라질 것이란 사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소중한 사람, 소중한 장소, 소중한 기억들. 그리고 그 사실은 자꾸만 내게 준비하라 얘기한다. 삼십여 년 만에 다시 운전을 배우겠다는 엄마처럼.

 엄마는 요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한다. 노후에 아빠와 어디서 살지, 10년 뒤의 우리 가족의 모습은 어떠할지, 우리가 바라던 일들은 이뤄냈을지.

 과거가 아닌 미래를 얘기하는 엄마가 좋다. 자신 있는 것이다, 엄마는. 지금 우리가 가진 행복이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란 것을. 슈퍼우먼 엄마의 노력으로 결코 깨지지 않을 것이란 것을. 동화 속의 마지막 장면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될 것이란 것을.

 그래, 나도 지킬 수 있다면 뭐라도 하겠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계획했던 것, 꿈꿔왔던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차근차근 하나씩 이뤄 내리라. 슈퍼맨까지 되지는 못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옆에 남아 있을 순 있지 않은가. 그거라도 좋아. 아니, 그게 더 좋아. 강해지지 않아도 좋으니, 내 모습이 볼품없고 초라해도 좋으니, 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래. 그래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적은 엔딩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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