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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Sep 09. 2017

43.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죠?

확신을 주세요, 칭찬해 주세요

 무대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박수 때문이었다. 손바닥과 손바닥을 마주해 소리를 내는 그 행위. 그 행위만 놓고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무대 위의 연기를 마친 배우에게 전달될 때는 마치 뜨거운 무언가가 고막을 관통해 심장 가장 깊숙한 곳부터 손끝과 발끝으로 퍼지는 느낌을 만들어 낸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위로받는 느낌이랄까. 박수소리 따위에 정말 목소리가 담겼을 리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짜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미쳤다, 진짜...! 완전 감동적이야!!! 고마워..!"

 "완전..!! 최고다!!!"

 "사랑해!!!"

 이런 말을 듣고도 기분 좋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배우들이 자꾸 무대에 서는 이유는 계속해서 이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라고 나는 확신한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달콤해도 너무 달콤한, 칭찬이라는 이름의 목소리.

 결국, 나는 칭찬받고 싶어 무대 위에 서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받는 칭찬은 즉각적이고 파워풀하다. 창작물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이렇게 1:1로 마주하는 형태의 예술은 거의 무대예술이 유일하다고 본다. 사람들에게 쏟아낸 에너지에 바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림만 그렸던 내게 이런 식의 피드백 구조는 엄청난 센세이션이었다. 그림을 그려서 받는 칭찬과는 그 성질 자체가 달랐던 것인 게지. 아니, 생각을 해보자고요. 왜, 누군가가 어떤 플랫폼에 창작물을 올리면 베스트 댓글에 "와... 작가님 미쳤어요?!!!! 어떻게 이런 작품을...!!! 와, 진짜 완전 너무 좋아요!! 사랑해요!!!! 꺅!!!" 같은 내용이 달리는데, 이런 반응을 온몸과 표정으로 표현하는 '실제' 사람들이 몇 백 명, 몇 천 명 정도나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보라. 무대에 중독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나는 어려서부터 칭찬에 목마른 아이였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 집의 한쪽 벽면은 내 상장으로 도배되어있었다. 과학경시대회부터 시작해서, 전국 말하기 대회, 영어 발표 대회, 반장 임명장, 과학 상상화, 팝송 대회, 글짓기 대회, 사생대회 상장 등등... 몇 백장이 넘는 상장을 깨끗하게 코팅까지 해서 대롱대롱 매달아 놨었다. 내가 미친 천재여서 상장을 휩쓸어 왔던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감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까지 뛰어난 재능을 가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난 칭찬받고 싶었던 것이다. 상장은 칭찬의 상징이었으니까. 백 마디 말없이도, 한 장만으로 '잘한다'는 증명이 되니까.

 칭찬은 늘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이유도 어렸을 적 유치원 선생님이 해준 '잘 그린다'는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에 엄청난 매력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다 연기를 시작하게 된 것 또한,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엔 큰 미련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남들이 잘한다고 해주는 일보다는, 순수하게 나의 관심으로, 흥미로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었던 것이다. 그게 연기였던 것이고.

 그러나 결국 연기를 시작하고도 늘 칭찬이 고팠다. 흔히들 '왜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는 면접용 질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저를 통해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어서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서요.'라는 멋들어진 답변을 준비하는데, 솔직히 난 칭찬받고 싶어서 연기했다. 이상적인 배우 마인드에 어긋나는 것 같아 좀 부끄러운 얘기긴 하지만, 사실이 그러한 걸 어쩌나. 나는 나 잘했다고 해주는 게 좋아서, 박수받는 게 좋아서 무대에 섰다. 똥배우 같아요? 칭찬받고 싶어서 연기하는 배우가 똥배우라면, 그렇다면 난 똥배우 맞나 보다. 안녕하세요, 똥배우입니다.


 칭찬받고 싶은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칭찬에 너무 목매달다 보면 나 자신이 누구인지 희미해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끝없는 칭찬의 굴레에 경계심이 생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정말 이것이 좋아서 하는 것인지, 아님 남들 성을 채워주기 위함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 여기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남을 의식하지 않고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썼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다곤 못 하겠지만(어찌 됐든 공개적인 곳에 글을 썼으니) 남들의 반응보다는 나 자신을 솔직하게 적어 내려가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글을 쓰기가 힘들어졌다. 왠지 아무 반응이 없으면 괜히 씁쓸해지고 글을 잘못 쓴 것만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남들이 좋아하는 글이란 어떤 글일까에 대한 고민 때문에 첫 문장을 썼다 지웠다 끊임없이 반복하는 일이 잦아졌다. 칭찬을 못 받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칭찬은 달콤하다. 칭찬을 받는 순간만큼은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 확신하게 된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하고, 자신감을 심어주고, 심지어는 나처럼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칭찬은 그것이 없는 순간 초조함을 만든다. 누군가가 잘했다 확인해주지 않으면 이상한 길로 접어든 것만 같단 말이지. 그만큼 '잘한다' 한 마디가 만들어내는 파장은 어마 무시하게 크다. 내가 그린 그림이나 글 따위를 계속해서 업로드하는 이유,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좋다, 잘한다, 멋있다는 칭찬을 들으며 지금 하고 있는 게 옳은 짓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은 것이다.


 남의 시선 상관하지 않고 순수하게 즐길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이 구리다고, 때려치우라고 욕하더라도 내가 좋으니까 그냥 계속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뚝심 있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한다. 칭찬받을 때의 그 기분이 너무 짜릿해서, 이 기분을 느끼지 못할 바에야 굳이 이걸 할 이유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 내가 뭐, 엄청난 대작가나 대배우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 기분 좋자고, 행복하자고 하는 창작활동들인데. 그 행복의 원천이 칭찬이라면 굳이 솔직한 이 감정을 경계할 필요는 없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결론은 칭찬해달라는 거다. 나는 계속해서 확인받고 싶어요.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물론, 진짜 완전 너무 극도로 끔찍하게 혐오스럽고 역겨울 정도로 구리다면 칭찬할 이유가 없겠지만, 에이, 솔직히 내가 그 정돈 아니잖아요?(아닌가..?) 물론 나도 진심 어린 칭찬을 받을 수 있게 더 발전할게요. 그러니 제게 박수를 쳐 주셔요. 그래야, 계속,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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