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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Sep 13. 2017

44. 이렇게 쓰면 기분이 조크든요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얼마 전에 반바지를 입고 밖에 나갔다. 나는 원래 반바지를 잘 입지 않는다. 다리가 굵어서요. 그렇다면 굳이 반바지를 입은 이유가 무엇이냐.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반바지를 입지 않을 이유는 수 십 가지다. 다리가 굵어서 예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좋게 봐주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입고 나갔다가 후회할 것 같기 때문에.

 그러나 반바지를 입어야 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그럼에도 그날 나는 반바지를 입고 나갔다. 가끔은 그런 날이 있는 법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도 마음 내키는 대로 반바지를 입는 날.


 나는 이유에 갇혀 살고 있다. 특별한 도전이 아니더라도 스스로에게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진다. 왜 공부를 하니? 왜 이 음식을 먹니? 왜 이 일을 하니? 왜 이 옷을 입니? 왜 학교에 다니니? 왜 그 사람을 만나니? 왜 여행을 가니? 왜? 왜? 왜???

 "왜?"라는 질문은 좋다. 삶에 의문을 던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만 삶에 대한 태도가 의욕적이 여질 테니깐, 질문은 좋은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에는 자연스레 정답이 따라오고, 도무지 정답이 나오지 않을 땐 그 부담이 고스란히 내 것이 된다.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납득할만한 정답, 즉 이유를 찾지 못하면 무력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무력감의 원인은 '왜?'라는 질문 자체엔 없는 것 같다. 거기에 담긴 서브텍스트, 즉 질문을 던지는 진짜 속내가 문제다. 지금 이 시대의 '왜?'라는 질문은 대개 순수한 호기심에서 보단 정답에 비껴나갔을 때 사용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일 년간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왜 여행을 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여행 가고 싶은 이유 같은 게 딱히 없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아 빈 노트에 여행을 가려는 이유를 적기 시작했다.

 1. 새로운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

 2.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서

 3. 견문을 넓히고 지식을 쌓기 위해서

 한 3번까지 적었을까. 더 이상 쓸 말이 없었다. 사실 적어 내린 3번까지도 내가 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가 아니었다. 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 따윈 없었다. 나는 그냥, 그냥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냥 가고 싶으면 안 돼? 난생처음 유럽 대륙의 땅을 밟는 순간, 그곳의 공기를 내 두 콧구멍으로 들이마시는 순간,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그 순간과 마주하고 싶을 뿐인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그런데 나는 왜 이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면접 준비하는 취준생 마냥 이러고 있느냔 말인가.

 원인은 ‘왜?'라는 질문에 담긴 서브텍스트 때문이었다. ‘왜 여행을 가느냐’는 질문에 담긴 속내는 사실, ‘왜 20대의 중요한 이 시점에,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채로 일 년씩이나 휴학을 하고 여행을 가려하느냐’는 의미를 담고 있던 것이다.

 이 질문대로라면 ‘그냥’이라는 대답은 용납되지 않는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팔자 좋게 ‘그냥' 여행을 떠나?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이 얼만데 부모님 등골 휘게 만들 일 있어? 뭐, 그런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미래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며 어떻게든 예쁘게 포장해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럼 사람들은 ‘용기 있다’, ‘멋있다’ 말해줬다. 그러나 나 자신은 진실을 피할 수 없었다. 난 용기가 있는 것도, 멋있는 것도 아니라는 진실. 이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것뿐이라는 진실.


 ‘왜 여행을 가느냐’, 이런 질문은 일상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왜 결혼을 안 하니?”

 그 나이 먹도록 남들 다 하는 결혼도 안 하고 있으니 네가 매우 한심하다는 의미다.

 “왜 화장을 안 했니?”

 자고로 여자라면 당연히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게 예의고, 지금 너의 얼굴은 매우 예의가 없다는 의미다.

 “왜 일을 안 하니?”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일을 해야 하는데 팔자 좋은 너를 보니 억울해 죽겠어서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 기분이라는 의미다.

 “왜 화장하고 다니니?”

 자고로 남자라면 마초스럽게 스킨로션마저도 스킵하는 대담함을 가져야 하거늘, 아이돌도 아닌 네가 화장을 하니 매우 불편하다는 의미다.

 결국 ‘왜?’라는 질문은 사회의 통념에 벗어나는 짓을 굳이 왜 하려 하느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스스로에게 ‘왜?’라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무력감을 느끼는 이유도 이와 같다. 남들이 원하는 모습에 내가 굳이 비껴 나가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에 대한 정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유가 뭐긴 뭐야, 그딴 거 없어. 하면 기분 좋잖아.


 이런 성향은 내가 쓰는 글에도 드러난다. 나는 이유가 없는 글은 잘 쓰지 못한다. 반드시 이유와 결론이 들어가야 한다. 그 결론을 뒷바쳐 주기 위한 논리 또한 필요하다. 논리적이지 못한 글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논리를 잃는 대신 매력적이여질 수도 있는데 말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혹은 부조리극처럼.


 연극에 ‘부조리극’이란 게 있다. 이름 그대로 조리가 없는 극, 앞뒤가 없는 연극이다. 요즘 말로 하면 ‘아무 말 대잔치 극’ 정도가 되려나?

 부조리극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 대잔치다. 의미 없는 대사와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할 뿐, 흥미를 끌만한 사건 같은 건 등장하지 않는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예로 들어보자. 연극의 주요 등장인물은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내용은? 제목 그대로 고도를 기다린다. 끝. 진짜 끝. 아니, 이게 진짜 끝이라니까?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도를 기다린다. 이게 끝이다. 논리도, 결론도, 이유도 아무것도 없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리는 것, 이게 전부다.

 그렇다면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대체 누구인가? 아무도 모른다. 당연히 끝까지 등장하지도 않을뿐더러, 추측할만한 단서조차 던져주지 않는다. 그저 이 연극은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연극의 언어로 풀어놓은 느낌만 든다.

 부조리극이란 이런 것이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원인과 결과'가 없는 연극.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연극이 끝날 때쯤이 되면, 의미 없이 공허하게 던져진 것 같은 배우들의 대사 속에 나 자신이 투영되고 있음을 느낀다. 원래 삶이란 기다림의 연속이지 않은가.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무작정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리는 고도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기다림과 나의 기다림이 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의미 없는 대사와 행동 속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부조리극을 두고 ‘연극에 시를 도입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의미 없이 나열된 단어들이 관객 저마다의 의미가 되어 가슴속에 내려앉는, 연극의 시. 정답도, 이유도 묻지 않는, 연극의 시.


 그래서 말인데요, 이 글은 이렇게 마무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냥 내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던져놓았을 뿐, 결론이 없어요! 가끔은 이렇게 다리 굵은 저도 반바지를 입고 나가고 싶을 때가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굳이 왜 이렇게 끝내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할래요.

 “이렇게 쓰면 기분이 조크든요!"




 그동안 <4ㅏ4ㅏ로운 이야기>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인사 올립니다. 꾸벅 (--)(__)(--)

 <4ㅏ4ㅏ로운 이야기>의 시작은 입대 후 꾸준히 쓰던 일기였어요. 일기를 꾸준히 쓰다 보니 글 쓰는 재미를 다시 찾게 되었고(예전엔 즐겨 썼었는데 점점 안 쓰게 되더군요), 이렇게 브런치 매거진까지 열게 되었던 겁니다. 입대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진지하게, 꾸준히 글 쓸 일이 절대 없었을 거예요.(그렇다고 다시 입대하고 싶단 얘긴 아닙니다.ㅎㅎ) 그런 의미에서 <4ㅏ4ㅏ로운 이야기>는 군생활이 남긴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4ㅏ4ㅏ로운 이야기>는 올해 안에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감개무량하게도 좋은 출판사의 좋은 편집자님과 연이 닿아 이런 감사한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 부족한 부분이 많아 고치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도 있지만, 좋은 책이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D 책이 나오면 '사사로운 출간회'같은 것도 해볼까 싶어요ㅎㅎ (출판사랑 얘기된 부분은 아닙니다만...ㅋㅋ 저의 작은 소망^^)

 

 글을 쓰는 이 순간 확인해보니 제 브런치 독자가 1,266명이네요. 1,266명이 제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니 기분이 묘해지네요ㅎㅎ

 글을 쓰는 동안 힘든 순간마다 독자님들의 응원에 정말 많은 힘을 얻었어요. 비록 얼굴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여러분의 정성 어린 댓글을 통해 따뜻한 위로를 받았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리고 싶어요. 여러분 덕에 44가지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쑥스 -/////-)


 사실 이 마지막 44번째 글은 실수로 발행했다가 모르고 삭제해서 싹 다 날아갔던 글이에요...ㅎㅎ 삭제 버튼과 발행 취소 버튼이 헷갈려서 삭제를 해버렸던 거죠. 한 오 분 동안 벙쪄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더 다행이구나 싶더라구요. 마지막 글이니까, 더 살펴보고 다듬을 수 있게 됐거든요. 처음 썼던 글에 더 좋았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뭐,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요~~!

 뭐든 다 그런 것 같아요. 과거는 추억하는 데 사용하면 아름답지만 연연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게 되잖아요. 글 삭제 사건을 통해 하나 또 얻어갑니다. 마지막 글을 통해 무언가를 또 얻어갈 수 있어 참 좋습니다 ㅎㅎ


 사실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종합 선물 세트 받는 기분 내고 싶어서 일부러 오늘 마감하기로 했어요.  오늘 받은 생일 축하만으로도 제겐 너무 과분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더 많이 축하해주세요 ㅎㅎ!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브런치 관계자 및 에디터님, 출간 기회를 주신 곽 편집자님, 늘 글 잘 읽고 있다고 응원해준 우리 가족과 친구들, 독자분들, 그리고 15중대 대원들, 브런치를 소개해주신 문작가님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


배낭멘곰 윤수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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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com/bpm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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