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핫 스팟'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 외계인을 비롯하여 초능력자, 미래에서 온 사람 등 신비로운 등장인물들을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가 이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기 시작했지만 신선한 소재에 이내 마음이 끌렸다. 이들은 저마다 가진 능력으로 주위 사람들의 어려움을 도와준다. 실제로 외계인이나 초능력자가 내 주위에 있다면? 혹은 내가 외계인이거나 초능력자라면 주위의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을 바랄까?
만약 내가 외계인이거나 초능력자이고 나만의 초능력을 한 가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능력을 고를까?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이게 현실이라면 정말 행복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약간의 고민 끝에 내가 고른 능력은 바로 지우고 싶은 기억 지우기이다. 자신의 지우고 싶은 기억도 타인의 지우고 싶은 기억도 없앨 수 있는 초능력을 고를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기억 중에는 너무 좋은 기억이라 평생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한 순간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들도 있다. 그런데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 좋은 기억은 금방 희미해진다. 하루빨리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은 끈질기게 나를 괴롭힌다. 때로는 아주 오래된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놀랄 때도 있다.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직도 그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해? 이제 제발 좀 지워버려라고 자신을 다그치기도 하지만 그건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그 기억은 바로 어제 있었던 일처럼 더 선명해진다.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나쁜 기억이라도 결국에는 다 지나간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붙잡고 있는 건 오히려 자신 아니냐고.
지나간 건 맞다. 하지만 지나갔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내가 겪은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시간이 흘렀을 뿐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과 상처들은 어느샌가 내 몸의 일부가 되는듯하다. 내가 붙잡고 싶어서 잡고 있는 게 아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일 뿐이다.
내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기억들은 결국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언제나 나와 함께일 것이다. 그 사실이 가끔 숨 막히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가 외계인이나 초능력자도 아니고 내 주위를 아무리 봐도 외계인이나 초능력자는 없기에 달리 방법이 없다.
살면서 기억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시간은 때때로 찾아올 것이다. 또 그 고통이 너무 힘들 때면 만약에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만약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나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해방시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