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나는 꽤 낯을 가리는 아이였다. 집에서 까불면서 잘 놀다가도 낯선 사람이 오거나 하는 상황이 되면 갑자기 조용해지고 방으로 들어가고 하는 식이었다. 낯선 사람이 싫었다기보다는 왠지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중학생 때는 낯가림이 많이 사라진 시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본적인 성향이 변했다기보다는 소위 말하는 중2병(?)의 영향으로 인한 변화였다. 하지만 사람의 타고난 성향이 완전히 변할 수 없듯이 그런 변화는 일시적인 것이었다. 더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된 후에는 어린 시절의 모습처럼 낯을 가리는 나로 돌아와 있었다.
사실 낯을 가린다는 건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없는 하나의 성향이자 특징일 뿐이다. 그런데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는 낯을 가린다는 게 묘하게 단점처럼 느껴졌다. 물론 낯을 가리는 게 나쁘다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보통 낯가림이 없고 친화력을 가지고 있는 성격이 장점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기에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낯을 가리는 성향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인간관계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20대 초반에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관계가 넓고 낯선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지는 사람들이 멋있게 보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낯을 가리는 성향을 바꿔보려고 노력을 해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모르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 모임에 간다거나 친구한테 친구의 친구를 소개받는 자리도 거절하지 않고 나가거나 하는 식이었다. 누군가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런 자리를 항상 피해 왔던 나에게는 나름대로 큰 노력이었다.
그렇게 하면서 어느 정도 친해진 사람들도 있었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그런 노력들이 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만나서 시끌벅적하게 놀 때는 즐거웠지만 거기까지였다. 친해졌다고는 하지만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고 나의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약간은 피상적인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도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물론 인간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인위적인 노력으로 맺어진 관계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원래 내 곁에 있던 친구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게 미안하게 느껴졌다.
누구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고 인기를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다른 사람들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장점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이 또 다른 누군가에는 단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상대에게 아무렇게나 하고 예의 없이 행동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결국은 친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도 오래 지속된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사실을 깨닫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 앞에서 자주 인생은 어차피 혼자야라고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그냥 아무 말 없이 웃어준다. 내 진짜 진심을 다 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