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안은 제사가 많았다.
설 또는 추석 외에 돌아가신 날에도
큰 집과 작은 집에 친척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
가문의 화목과 뿌리를 중시한 나의 어머니는
나를 아버지와 함께 꼭 제사에 참석시키곤 하셨다.
그때 들었던 사자성어 같은 표현들...
홍동백서, 조율이시 등 등
제사상의 음식 배치는 항상 큰집 아저씨가 하셔서
어린 내 눈에는 제사는 매우 오래전부터
절대적인 질서로 전해 내려 온 것처럼 보였다.
그 젊던 새댁들도 아줌마가 되고
형들은 군대 가고 사회인이 되면서
제사에 참석하는 인원은 점차 줄었다.
내가 중학생 때 큰집 제사에서
친척들에게 할아버지가 하셨던 말이 생각난다.
'자꾸 사람이 주네. 큰 일이야. 큰일...
조상 고마운 것을 알아야 하는데...
우리 죽으면 얼마나 가겠나?'
이 제사를 마지막으로 우리 집안도 설과 추석에만
함께 모이는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했다.
며칠 전 포털뉴스에서 성균관의 홍보기사를 봤다.
제사는 간소화해야...
기름에 튀긴 음식은 유교식 아님... 등 등
지금 내 지인 중에 제사 지내는 집안 자체가 드물다.
성균관의 제사 간소화 기사가 30년 전인 90년대에 나왔으면 어떨까?
지금보다는 제사 지내는 가정이 많이 유지되었을까?
한 편으로는 성균관이 이해된다.
제사는 농산물 소비가 가장 활발한 의례이며
제사상의 질서를 잡아온 집안 어른들의 권위는 어떻게 되는가?
부동산 가격을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하는
역대 우리 정부들처럼 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