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와 폰은 떨어지면 아까운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은 만보를 훌쩍 뛰어넘고 어느 날은 약속된 챌린지 6천보도 겨우 채우기도 했다. 어느새 일주일이 되어간다. 작심삼일을 넘겼다. 함께한 그녀들도 아무튼 날마다 성공이다.
걷기를 좋아한다. 때론자주 핑계를 대고 게을러지기도 한다. 그래서 시작한 걷기 챌린지가 혹여나 의무가 되면 어쩌지 했는데 적당한 긴장과 도움을 준다. 기여하는 약속들이 지켜지면 건강해지겠지. 그리고 하루를 사는 일이 하루를 걷는 일과 병치되는 일인걸 알아가겠지. 했다.
걷기 낭만. 뭐든 하루에 한 가지씩 즐기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게 1월과 2월은 대부분 한갓지다. 뭔가 꿈틀대는 에너지를 느끼는 것도 설렌다. 알고 보면 보통의 일상이 심심치 않게 살아지면 그때부턴 특별한 순간이 되어주니까. 감사함이 하나씩 많아진다.
오늘은 일찍 나와걸었다. 한참을 걷는데 뭔가 주머니 속이 허전했다. 내 폰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맨 처음 든 생각이 아까워서 어쩌지,였다. 나의 걷기가 기록되지 못한 순간. 아예 기록되지 못했던 걸음을 찾아올 수 없음의 아쉬움 따위들. 잠시는 허탈했고 잠시는 그만큼 걸었으면 되었다 싶었다. 걷기 위해 걸었으니까. 카운팅은 염두에 두지 말자. 이렇게 되면 찾지 못한 걸음 덕분에 다시 또 걸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만큼 건강해지겠지.
내 숨이 쉬어가라고 했다. 잠시 벤치에 앉았다.오늘 대한, 이라고 했다. 그다음은 뭘까? 민국? ㅎㅎ 나오기 전에 듣던 Fm라디오에서 들려준 사연에 같이 웃었더니 기억이 나네. 신기하다. 유머라면 따로 적어서 기억해야 될 정도로 유머감각이 약한데 말이다. 청취자의 사연 주인공 아이가 맑다. 아이들은 원래 그렇게 맑다. 누구나.
마음 놓고 더 앉았다. 조금 몸이 서늘해지면 또 걸었다. 이미 카운팅은 배제되고 오로지 걷는 자가 되었다. 오로지 걷는 즐거움만 가지고 하루씩 걷다 보면 하루씩 살아지겠지.
바깥은 마치 봄.처럼 햇살만 눈부시다. 쏟아지는 겨울 햇살 참 좋다. 커피 한잔 가져와 거실 창가에 앉아서폰을 만지다.알면서 역시 기록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나를 보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