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Jan 28. 2022

연두가 나왔어요.

앗, 작은 연두! 를 발견했어요. 참 기특하지요?

얼마 전 무성한 란타나 나뭇가지를 자르면서 의연한 척했지만 내심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요. 잎이 안 나올까 봐요. 휴우, 안도의 숨을 쉬고 또 한 번 보고 또 숨 죽이며, 또 쉼표, 사이에서 나는 연두가 얼마나 고맙던지요. 살짝 눈물이 날 뻔했어요. 뜻밖의 환호성은 이유가 있었겠지요. 그동안 나무 앞에서 유심히 살펴봐도 매일같이 아무 흔적 없는 마른 갈색이었거든요. 그랬는데 이랬으니까요. 새 잎을 기다리던 시간이 마치 면죄부를 받은 듯이요.


마른 가지에 연두의 점 하나 없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연두가 온 것일까요? 연두는 뿌리 없이 어디 있다가 가지에서 나오는 건지 도무지 아득해지는 동화 같아요. 가지는 그대로 물길 없이 갈색인데 말이죠. 봄이 오는 길에 만난 봄과 연두는 서로 사랑하나 봐요. 기다림이 의연했지 싶어요. 조바심이 없었기에 더 애틋했답니다. 흩날리는 색을 품어 움튼 연두 가요. 잎마다 연두를 길렀어요.


이렇게 연두가 어떤 위로를 주었는데요. 그건 아무 말 없는 위로였어요. 그저 작게 보여줄 뿐이었어 요.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지는 모르지만 오직 나를 위로하듯 다정히 나왔어요. 가지마다 다 연두는 아니어도 연두를 잉태한 가지들이 곧 부풀어 오를 것만 같았어요. 끄트머리가 파르라니 했거든요.


우리 삶 어디에 슬픔이 있었으며 기쁨이 있었을까요? 저도 모르게 살아가면 저절로 살아지는 시간들. 틈 사이 작은 균열이 커지기도 하겠지만, 작게 보듬어 안으면 희미해지거나 사라지는 걱정들. 특별하지 않게 제 빛은 또 기쁨처럼 스미는데요. 이런 삶을 스케치합니다.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시간은 없을 것 같아요. 시나브로, 만나고 스치는 사람과 사물은 끊임없이 이어져 갑니다. 봄이 보이지 않게 와도 먼저 닿아 퍼지는 것처럼요. 빛을 품은 바람에도 스며든 온기가 소리 없이 멀리 퍼져갑니다.


퍼져가는 것들 속에 우리는 무엇에 스미고 여미고 내가 될까요. 쌀 한 톨에 우주가 담기면 나는 그 우주를 먹는 것과 같다는 깊이가 남다르지 않는 것 같아요. 아주 거창할 것 같은 우주라는 단어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익어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죠. 우주가 우리 안에 있데요. 쌀 한 톨이 여물기까지 시간과 내가 여물어 가는 기나긴 시간의 이어짐도요. 그렇게 마음에 길이 나면 떨어질 수 없는 우리가 됩니다.


다독이는 거죠. 빛이 와서 안기면 회복되는 것들. 거기 없었던 것 같이, 오늘도 오늘처럼 살다 보면 문득 제 빛을 찾겠지요. 아무도 모르는 익숙함이 낯섬으로 다가와도 그때마다 결대로 익어가면 좋겠습니다. 갈색의 가지에서 오늘 연두가 익어온 것처럼요.


연두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잎을 기다리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