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계 물의 날' - 최종수 저 '물은 비밀을 알고 있다'
오늘(3.22)은 '세계 물의 날'. 물에 대한 평범하고도 심오한, 인문학적이면서도 과학적 지식을 담은 책 한권을 소개한다.
[서평]최종수 著 ‘물은 비밀을 알고 있다’
한 겨울 한파가 수일간 몰아치면 일기예보에서는 어김없이 한강 결빙 소식을 전한다. 거대 담수인 한강이 언다는 것은 그만큼 날씨가 춥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한강 결빙은 혹한의 기준이 된다. 한강은 얼마나 추워야 얼까. 한강의 결빙은 어디가 기준일까. 그 동안 궁금하긴 했지만 억지로 찾아보지 않았던 소소한 지식 정보를 최근 한 신간을 통해 접했다.
‘물박사’로 통하는 최종수 박사가 최근 펴낸 ‘물은 비밀을 알고 있다’(부제-세상과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완벽한 재료)는 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상식이 담긴 쉽게 풀어 쓴 일반인용 수문학(水文學)이다. 최 박사에 따르면 한강의 결빙은 통계적으로 영하 5도 이하 추운 날씨가 3일 이상 지속되면 가변부터 얼기 시작한다. 1906년 이후 관측 결과 1월 중순경이 결빙이 일어나는 시기다.
이번 겨울 한강 결빙은 지난해 12월 25일 처음 관측됐다. 이는 12월 12일에 결빙이 관측됐던 1946년 이후 71년 만에 가장 이른 것이다. 한강 결빙의 가장 큰 요인은 북쪽, 흔히 말하는 시베리아에서 내려오는 찬 대륙고기압 때문이다. 이번 한강 결빙은 평년(1월 10일)보다 16일, 2020년 겨울(2021년 1월 9일)보다 15일 빠르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한강 결빙은 어디를 기준 하는 것일까. 한강 결빙 관측은 1906년에 시작됐으며 노량진 현 한강대교 부근을 기준삼고 있다. 정확하게는 한강대교 두 번째 및 네 번째 교각 상류 100 m 부근이다. 더 정확하게는 노들섬 남쪽에 있는 올림픽대로 중간지점이다. 이 구역 교각 주변 모양 구역이 완전히 얼음으로 덮여 강물이 보이지 않을 때를 결빙으로 판단한다.
1906년은 한강대교가 건설되기 전이다. 지금의 한강 다리 대부분은 과거 포구가 있던 곳에 놓였다. 포구가 있었다는 것은 접근이 쉬웠다는 의미다. 때문에 결빙 관측 역시 접근하는 데 가장 적합한 장소를 기준 지점으로 삼았다. 과거 노량진 포구에 한강대교가 놓이면서 기준이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참고로 서울의 첫눈과 개나리 개화 시기는 종로구 송월동에 있는 서울기상관측소가 기준이다.
서울의 한강은 얼어도 서울보다 훨씬 추운 강원도 춘천 소양호는 얼지 않는다. 인제와 양구 등 소양호의 수원이 되는 상류지역은 얼지만 소양댐 수문이 있는 소양호는 한 겨울에도 수면이 어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이는 수온에 따라 달라지는 물의 밀도 때문이다. 기온이 낮아지면 찬 공기를 접하는 수면의 수온 역시 낮아지면서 밀도가 커져 낮은 곳으로 움직이고 아래 있던 물은 상대적으로 수온이 높고 가볍기 때문에 위쪽으로 밀려난다.
이 같은 대류현상 때문에 수심이 깊은 호수일수록 한 겨울에도 0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물론 팔당호 같은 수심이 얕은 호수는 대류현상이 빠르기 때문에 한겨울이면 얼음으로 뒤덮인다. 결빙기준점이 일반 상식이라면 대류현상은 과학적 지식이다. 이처럼 물에 대한 과학과 일반 상식이 책 전체를 단단하게 지탱하면서 지루함 없이 읽히는 게 장점이다.
최 박사는 이데일리에 꾸준히 물에 대한 칼럼을 게재해왔다. 이번 책은 그간 썼던 칼럼을 엮은 것이다. 책은 물에 대한 과학, 문화, 역사, 일상 등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북극곰과 펭귄, 누가 추위를 덜 탈까?’, ‘재판까지 받은 ’음란한‘ 수영복’, ‘살수대첩은 정말 적을 수장했을까?’, ‘라면 국물의 역습’ 등 소제목이 읽고 싶은 충동을 한껏 자극한다.
저자는 와인과 같은 술도 물 이야기 범주에 넣어 이야기를 ‘술술’ 풀어간다. 와인은 어려운 술의 일종이다. 포도 품종별, 나라별, 지역별, 와이너리별, 생산연도별 별의별 변수가 많아 종류로 따지면 와인은 수 만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을 제대로 마시려면 공부를 해야하는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최 박사는 와인이 복잡하고 어려워진 이유를 아이러니하게도 ‘대중화되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귀족 중심의 일부 계층 전유물이었던 와인이 생산기술과 운반․저장법이 발달하면서 양조장이 늘고 점차 대중화 됐다. 와인을 병에 담아 팔려다 보니 정보가 적힌 라벨이 필요했다. 라벨 표준화가 있을 리 만무했던 시절, 복잡한 라벨로 인해 이때부터 와인은 어려운 술이 됐다. 대중화라는 것은 쉽게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상황으로의 발전인데, 와인은 반대의 길을 걸은 셈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웨이터가 건넨 와인 메뉴판 앞에서 긴장하거나 연기할 필요가 없다. 단지 즐겁게 마시고 기분 좋게 누리면 된다. 마치 인류 최초로 와인을 마셨던 수메르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라며 와인을 대하는 쿨한 자세로 마무리 했다. 이런 점이 독자를 촉촉한 정보가 가득 찬 책 속으로 흡수하는 매력인 듯하다.
최 박사는 공공기관 연구소에서 30여 년간 물 연구를 하고 있는 물 전문가다. 그는 수많은 연구보고서와 논문을 써왔지만 일반인들이 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는 세상 모든 일이 ‘물과 통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물은 최초의 생명을 잉태하고 공룡 배 속을 거쳐 발전기 터빈을 돌리고, 개인의 일상뿐만 아니라 나라의 운명까지 결정하는 물질이 되었다. 물은 지구 역사를 온전히 지켜본 물질이자 지구 생명체에 절대적인 존재다”<웨일북, 1.15 초판발행, 327쪽, 1만8000원>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