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교수의 은밀한 매력, "중도"의 화끈한 파탄 편.
적폐 세력의 사도마조히즘 본색을 드러낸 KBS 스탠딩 토론.
유승민이 "주적"이란 채찍으로 문재인을 마구 때릴 때, 안철수는 그게 꽤 괜찮다 여겼는지 덥석 물었다.
[썰전]의 유시민이 예리하게 짚어낸 안철수의 변신.
[청춘콘서트](한나라당 책략가인 윤여준 기획물)로 20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정치인이 몇 달 만에 5, 60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정치인으로 변해버렸다.
적폐 언론의 펌프질로 며칠 사이 20퍼센트의 지지율을 얻어낸 것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일이다.
안철수가 20대의 젊은 유권자만 속여왔던 건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철수에게 우호적인 평가를 내린 모든 정치 평론가와 지식인이 여기에 속았다고 생각한다.
세계 최초로 박근혜 탄핵을 외쳤던 도올이나 김어준도 예외없이.
2005년 안철수는 CEO 자리를 관두고 도미한다.
3년의 공백.(나는 이 시기에 중대한 심적 변화가 있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2008년 귀국한 안철수는 카이스트 교수직을 꿰차는 것으로, CEO라는 자본가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난 상아탑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신분 세탁한다.
이때 이미 "대선"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것으로 나는 추정한다.
언론에서는 부인인 김미경 교수가 연루된 카이스트 패키지 채용을 언급하지만, 사실은 안철수의 카이스트 임용 자체가 특혜 의혹이다.
안철수는 카이스트에 임용될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안철수가 그 사실을 몰랐을까?
그 사실을 모르면서 임용되길 원했다면 정상적인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안 될 거라는 걸 알고 정문술 석좌 프로그램 절차를 밟았다.
한국 사회가 거부한, 기부 입학 제도의 교수 버전.
정문술이 카이스트 계좌에 300억 원을 쏘지 않고, "안철수"를 석좌 교수로 신청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 카이스트는 "을"의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를 정문술 석좌 교수로 채용하기도 전에 자격 미달인 김미경을 임용한 걸 보면.
이명박 각하 시절 있었던 수많은 이상한 일 가운데 하나다.
이명박이 안철수를 좋아했을까?
예스.
안철수를 지지하는 당신보다 백만 배는 더 좋아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명박은 안철수를 한나라당 서울 시장 후보로 영입하려 했다.
이명박은 안철수를 총리직 후보로 고려했고 미래기획위원회에 2회 연임시켰다.(연임된 위원이 거의 없었다)
이명박은 안철수가 포스코 사외이사 의장으로 있을 당시 자원 외교를 마음껏 해치웠다.(포스코 자회사를 발판 삼아)
안철수가 이명박의 4대강을 비판했을까?
안철수가 세월호의 단초가 된 이명박의 선령 완화에 반대했을까?
안철수는 브이소사이어티 회원이었고 분식 회계를 한 최태원 회장의 구명 활동에도 나섰다.
안철수는 벤처 버블이 극에 달했던 당시 벤처 사업가라면 누구나 하는 BW 발행으로 현재의 자산을 손에 넣었다.
안철수는, 소위 놀아본 자본가다.
안철수재단?
이명박의 청계재단과 안철수재단의 공통점은, 아무 것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냥 "재단의 형태"로 묶인 자산 표시의 하나.
안랩 V3을 무료로 배포했다고?
그 전에 네이버에 "대기업의 갑질"이라고 항의하는 공증 서류를 보냈다.
알약이 무료로 배포한다고 하니 마지못해 유료화 정책 철수.
우리 같이 정치에 무관심한 유권자는 속는다 쳐도 도올이나 김어준 같은 사람도 안철수에게 후한 평가를 내렸던 걸 보면 이미지 관리에 얼마나 뛰어난 인간이었는지 알 수 있다.
서울 시장 후보로 여론조사에 이름을 올릴 때부터 시작된 "중도"라는 아이콘은, 안철수가 유권자에게 제시한 가장 강력한 이미지였다.
여기서 "중도"란 양비론이다.(이념 논쟁에서의 "중도"나 "제3의 길"과 전혀 무관한)
그는 단지 자신의 좌표를 (사람들이 혐오하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넣고 싶었던 것이다.
두 정당을 싸잡아 비난해 자기는 두 정당과 무관한 새정치를 하겠다는 선언.
이런 선언이 가능했던 자체가 안철수의 정치 인식이 얼마나 얕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만.
그는 서울대에 입학해 의사의 길을 걸은 수재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은 나보다 얕다.
충격적일 정도로 깊이가 없다.
이념논쟁은 싫다.
여기서 이념은 같은 값이 되어버린다.
그의 인식 세계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서로 싸우는 걸로 보였던 것이다.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서로 싸우는 두 집단으로 인지, 양쪽 다 나가지 않았다고 말한 것처럼)
해의 반대말은 "달"이라고 하겠지만 천문학적으로 태양과 달이 등치를 이룰 만한 "별"인가?
태양이 없으면 인류는 죽지만, 달이 없어도 인류는 산다.
태양은 스스로 빛나는 별이지만 달은 "죽은" 지구의 위성에 불과하다.
밤하늘에 달이 빛나는 건 태양처럼 스스로 빛나는 게 아니라, 달표면에 태양 빛이 반사되어 나타나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산의 반대가 바다?
바다는 인류가 기어나온 생명의 보고다.
그렇다면 산은 생명이 죽어 묻히는 죽음의 보고인가?
안철수가 논하는 정치적 수준이 이 정도다.
그의 눈에는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한나라당과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민주당이 매일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그의 실제 인식은 다를 수도 있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을 청중으로 하여금 믿게 했다.
한나라당이 신자유주의를 추구한 건 사실이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정권을 잡은 지난 9년간 "헬조선 개돼지"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대신하는, 새로운 헌법이 됐다.
민주당이 사회주의를 추구했나?
여기서 뿜으면 된다.
이정희의 통합민주당이 사회주의를 추구했다?
여기서도 뿜어야 한다.
심상정의 정의당이 사회주의를 추구하려고 대선에 나섰을까?
배꼽 잡고 목청이 터져라 웃으면 된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이 다수당임을 앞세워 국회에서 헬조선 강화법을 만들 때마다 민주당과 나머지 야당이 반대한 건 반대되는 이념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사회를 더 나쁜 지옥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사회를 천국으로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즉각 그런 반론을 품는 것이 바로 양비론의 핵심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반대되는 주장 품기)
심상정이 KBS 사도마조히즘에 편승해 문재인 후보를 비판했을 때 그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
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했다.
그건 박근혜가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과 유사한 발언이다.
자기를 지지해준 사람들을 위해 권력이 시장에 넘어가지 않도록 끝까지 싸웠어야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는, 한나라당은 노골적으로 재벌 권력의 편을 드는 반면 민주당은 그래도 시민 사회의 눈치를 본다는 점이다.
"진보"로 대변되는 나머지 야당은, 시민 사회의 입장과 상관없이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제도와 맞서 싸우는 집단이고.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체재 자체를 부정한다.
헌법을 바꾸지 않는 한 "그럴 수도" 없는 일이다.
안철수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매일 싸운다고 싸잡아 비난하며 걷겠다고 한 "중도"는 그가 말한 대로 이해하자면 노골적으로 재벌 편을 드는 한나라당과 시민 사회 눈치를 보는 민주당 사이의 길로 가겠다는 선언이다.
한나라당만큼은 재벌 편을 덜 들고, 민주당보다는 시민 사회 눈치를 덜 보는 길.
안철수가 [청춘콘서트]를 통해 설파한 "중도"의 가장 적확한 해석.
도올이나 김어준 같은, 지식인 언론 매체가 기존의 이념 공식을 그대로 가져와 "제3의 길"처럼 번역한 건 안철수를 "믿고" 띄워준 결과에 불과하다.
안철수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안철수의 주장을 호도하는 이미지를 뿜어낸 것이다.
안철수를 이해하기 위해 [안철수의 생각]과
[안철수의 전쟁]을 읽고
KBS 스탠딩 토론도 2시간동안 꼼꼼히 챙겨봤지만, 그가 "지식인"이라는 포지션에서 쏟아낸 말들은 공허하기 그지없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그의 인생은 그런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거나 싸우거나 고쳐나갈 어떤 동기나 명분도 가질 수 없는 데 위치했다. 사람들이 흔히들 "금수저"라고 하는 삶) 그 어떤 확고한 신념에 바탕한 대답이 아니기 때문에 두루뭉술하다.
토론회를 지켜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안철수는 "자기 생각"을 밝히는 게 아니다.
어떤 질문을 받든 항상 "정답"으로 생각되어지는 발언을 한다.
흔히들 "원론"적인 대답이라고 하는 그것.
세월호 사건을 보면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하는 건 없다)
메르스 사태를 보면 "의료 체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하는 건 없다)
북핵 사태를 보면 "북한을 혼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하려는 게 전쟁?)
유승민이 문재인을 "주적"으로 몰아간 것은 자신의 가치관이 "전쟁주의자"란 걸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유승민이 채찍으로 휘두른 "주적" 개념은 어떤 원론적인, 어딘가에 기재된 정답의 토로가 아니다.
따스한 보수를 자처한 유승민이 피에 굶주린 전쟁주의자라는 디테일은 "사드 배치"에서 확인된다.
그는 중부 내륙에 한 기만 설치하는 걸로 끝내지 않고 휴전선을 따라 최대한의 사드를 배치한다는 공약을 갖고 있다.
사드로 북한의 핵공격을 막고 우리가 보유한 핵미사일로 북한을 끝장내겠다는, 전술핵배치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다.
(그리고 이러한 유승민의 전쟁에 굶주린 태도는, 따스한 보수를 자처하며 심상정 후보한테도 칭찬받은 복지 공약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유승민이 자신의 공약대로 전쟁을 결정하는 순간 복지 혜택을 받던 국민 중 절반 이상은 전쟁 중 살해되거나 강간당하거나 부모와 헤어져 비참한 삶을 이어가다 비루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므로)
안철수는 국방백서에 "주적"으로 되어있다는 허위사실까지 공표한다.
국방백서를 본 적이 없어서.
거짓말 논란이 일자
적과 주적은 같은 말
이라는 선동에 나선다.
대한민국의 적은 전 세계 국가를 포함한다.
예컨대 일본.
그들은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빼앗으려 한다.
그러한 만행을 일삼는 일본은 대한민국의 적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외교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주적은?
우선해서 무조건적으로 무찔러야할 대상이다.
유승민이 문재인 후보에게 "주적" 개념을 강요한 것도,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해야 다음 단계인 "전쟁"을 스타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이나 주적이나 같은 말이라는 안철수의 주장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안철수가 "주적"에 집착할수록 그가 표방했던 "중도"는 사라진다.
그가 "중도"를 주장했던 게 "사기"였음이 드러난다.
처음부터 철학이나 신념과 무관한, 그저 단지 자기한테 유리하도록 설정한 "좌표" 중 하나였기에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다.
더 웃긴 건 국민의당 처지다.
오죽했으면 통일부 장관을 지내며 대선의 야욕을 불태웠던 정동영이 튀어나와 "주적" 논쟁을 그만 하자고 했을까.
안철수는 길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안철수가 거짓말을 잘 해왔다는 증거일까,
준비가 전혀 안 된 후보라는 반증일까?
아니면 그에게 베팅한 비선 실세를 위해 할 수 없이 하는 말일까?
"주적"이란 채찍으로 "문재인 후보는 빨갱이"라고 신나게 벌을 주더니 다음 날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봉하마을을 찾는다.
박근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
정신의 파탄, 붕괴, 분열.
안철수는 지금 누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느라, 저리도 정신이 없는 걸까?
자본가는 모든 걸 수단화한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걸 "수단"으로 삼아 "이득"을 확장한다.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내미는 이력서나 다름없는 선거 벽보에선 천재 광고의 이름을 수단으로 삼고, 선거 로고송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 TV연설까지 한 고 신해철 씨를 수단으로 삼더니, 오늘 있었던 광화문 유세에서는 전인권을 불러내려다 실패했다.
오직 친노를 심판하기 위해 민주당을 찢고 나간 뒤엔 봉하마을을 찾고, 민족 화합을 외친 김대중 정신을 받들겠다며 이희호 여사와의 독대를 녹취한다.
"중도"라는 이미지가 필요해 팔아먹었듯이 "주적" 논란도 이득이란 판단에 약장수처럼 팔아먹는다.
모든 게 수단인 정치인.
이런 사람이 2등을 달리는 자체가 우리나라 유권자의 비극이자, 나 자신의 프라이빗한 치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