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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CON Oct 16. 2016

꽃개 네트워크 22A 광교 애견공원에서 무슨 일이?

공원은 폐쇄됐다. 범인은?


어제.

새벽 6시 40분경,

꽃개가 나가자고 졸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볼일을 보고 들어온 뒤 바로 잤다.

지난밤 새벽 3시쯤 잠들어

그 이상 돌아다닐 정신이 없었다.

꽃개도 내가 졸리고 힘들어하면 수긍해,

바로 들어와 주는 편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일어나는 날엔

내가 괜찮다는 걸 알고, 산책도 제법 길어진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자는 단잠이 꿀맛인데

9시 40분경 벌떡 일어나 외출을 준비했다.



광교 애견 공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10분경.

먼저 도착한 둥이네가 대형견 놀이터에 자리를 잡았다.

입구에 '덴저(위험)' 경고 띠가

폴리스라인처럼 처진 게 이채로웠다.

얼마 전 이용자끼리 다툼이 있었다.

맹견으로 지정된 로트와일러를

입마개 없이 풀어놓는 건 위험하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

그런 차원의 '위험'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입장해

공원을 즐겼다.



프리스비도 하고.

화면 왼쪽에 있는 외국인한테 가서,

'유어 덕, 솃' 하고 말도 걸어보고.

'리얼리? 감사, 합니다'

외국인 남성은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바로 가서 치웠다, 땡큐.



낯선 개들도 보고.

울타리를 마주한 어떤 개가 물똥을 싸자,

견주가 바가지로 물을 떠 와 부었다.

전염될까 위험하지 않느냐는 우려는

호들갑이 아니다.



노즈 워크를 하다 혀를 갖다 대는 건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개들은 '더러운' 개념이 우리랑 다르다.

꽃개도 땅에 떨어진 걸 잘 집어먹는 편인데

 가래를 먹은 적도 있다.



호기심 많은 개들의 관심을 돌리는 데는 간식이 최고.



직립 보행도 해보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대화도 나누고



흙투성이가 되도록 개슬링도 하고



아저씨한테 사진도 찍히면서.



카메라를 싫어하지 않는 둥이.

포토제닉한 것이

모델견으로 활동해도 될 것 같다.



꽃개는 오늘도 원반 사냥.



광교 애견 공원의 최대 장점은 사이즈다.

개들이 뛸 수 있는 공간이 넓어

뛸 때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다.

꽃개가 전력 질주하는 순간을 보면

기어 변속한, 스포츠카 같다.


상자 속 이미지 1.5배 확대.


꽃개가 프리스비를 하는 걸 본 어느 견주 분이



자기네 개는 안 한다며 미니 사이즈 척잇을 주셨다.

우리야 참 고마운 일이지만...



이것은 둥이네가 같은 이유로 넘겨준,

빅 사이즈 라텍스 원반.



이것은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원반.

안 그래도 우리는 하나를 새로 살 계획이었다.

같은 걸로 할지, 날다람쥐 스타일로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는데.



어쨌든 (그거 나한테 넘기라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건

꽃개 본인의 강력한 의지였다.



공원은 평화로웠다.



물을 마실 때도 질서를 지키는 둥이.



이것은 꽃개가 그린 지도.

공원에서 물을 많이 먹는 걸 본 아내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꽃개가 꼬리를 말고 겁에 질린 모습을 보고

아내가 '나가자' 했지만

실례를 하고 말았다.

꽤 길게 쌌는데 발판이 흡수를 잘 했다.





하루 종일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쓰고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러 튀어나갔더니

아내가 프리미어 축구를 틀어놨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결방이라고.

토트넘과 웨스트브로미치의 경기.

이란 원정 경기에서 완벽하게 사라진

손흥민은 벤치에서 출발했다.

페널티킥을 놓고 손흥민과 신경전을 벌였던

라멜라는 기대 이하의 플레이를 반복했다.

스마트폰을 하던 아내가

불길하고 이상한 소식을 전했다.

광교 애견 공원에 가면 안 된다는데?

왜?

대형견 놀이터에서 개 두 마리가 죽었대.

진짜?

독극물 가능성이 있어 폐쇄했대.

갔다 왔잖아, 우린?

입구에 처놓았던 '덴저' 경고 띠가 생각났다.

아내가 자주 찾는 애견 커뮤니티에 올라온 그 글은,

수원애견모임에 D라는 사람이

오후 9시에 올린 글을 퍼온 거였다.

수원시 공원관리과 담당자로부터 연락받았다며

수요일에 강아지 두 마리가 

대형견 놀이터에서 놀다

구토 후 사망한 사건이 있는데

독극물 가능성이 있어 폐쇄하기로 했으니

절대 가지 말고, 주위 애견인들에게

널리 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당혹스러운 '공지'였다.

수요일에 발생한 사건에 관한 공지를

토요일 오후 9시에 올린다는 것도 그렇지만

꽃개는 원반을 선물 받을 정도로

열심히 프리스비를 하고 왔는데

원반이나 공에 지푸라기나 흙 따위가 묻어

오염 물질이 입으로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게 인간에 의한 살해 사건이고

그가 사용한 방법이 독극물을 뿌려놓은 거라면

꽃개나 둥이가 먹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대형견 하나가 물똥을 갈긴 일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독극물로 오염된 땅에서 놀다 온 걸까?


꽃개의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줌을 참다 실수한 탓도 있겠지만

주눅 든 모습이, 아플 때와 유사했다.

둥이네는 괜찮은지 당장 확인하고 싶어도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손흥민은 라멜라가 70분 동안 못한 일을

15분 만에 해냈다.

델레 알리의 동점골에 일조한 것.

침대에 누운 뒤에도 [그것이 알고 싶다]는 계속됐다.

아내는 인스타그램을 뒤져 관련 정보를 찾아냈다.

누가 광교 애견 공원 출입문에 걸린

'펼침막'을 찍어서 올렸다.

토요일 저녁,

공원은 진짜로 폐쇄됐다.

애견인 B는 목요일에 공원에 갔다,

자기 개들이 놀았던 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확인하러 온 

피해 견주 V에게 '들은 걸로 추정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세상을 떠난 두 마리 개가

자기 개랑 어울려 노는

예전 사진과 함께.

수요일 오후 공원에 와서 두어 시간 놀다

오후 9시경 자기 개 두 마리가 구토를 해

병원에 갔는데 그대로 떠났다는 내용.

V는 경찰에 신고했고,

병원에선 유독 물질에 중독된 거라고 하는데

애들은 이미 화장했으며

공원 주변엔 CCTV가 없어,

어떻게 된 일인지, 쉽지 않을 거란 전망.

다른 한 견주는 자기 개도 공원에 다녀온 뒤

노란 토를 했다고 전했다.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이틀 동안 토했다고.

사건 당일 대형견 놀이터에 쭉 있다

잔디 깎기가 시작돼

소형견 쪽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수원애견인모임의 D가 오후 4시에 

최초로 올린 공지에는

'독극물'이란 말이 없고

'제초제'란 말이 나온다.

사건 당일인 수요일,

공원 측에서 잡초 제거 작업을 했다는 것.

혹시 '제초제'에 의한 사망 사고는 아닌지

하는 의혹이 제기돼

공원관리소 측에 문의해봤지만

'제초제'는 절대 쓰지 않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시간을 먹고 차분해진 우리는

천천히 가설을 검토했다.

1. 광교 애견 공원은 독극물에 오염된 상태일까?

아닐 것이다. 

누가 개를 죽일 목적으로 뿌린 독극물이라면

그 시점은 수요일 오후 9시 이전이 된다.

이후로도 많은 개들이 

대형견 놀이터를 방문했을 것이므로

구토 증세를 보이며 응급 상황까지 간 개들이

더 많이 나왔어야 했다.

개 두 마리가 당한 비극도 모르고

다녀간 개들이 안전성을 입증한 셈이다.

꽃개와 둥이도 오늘 밤을 무사히 잘 넘기면???

(쭉 소형견에 가다, 오늘은 대형견에 간 것이다!)

그렇게 심각한 위험은 없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2. 공원 폐쇄는 적절한 조치일까?

D가 2회에 걸쳐 올린 공지 중

첫 번째 글에 밝혔다시피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면

공원을 폐쇄할 필요는 분명히 존재한다.

수사관들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때까지.

하지만 이런 조치가 정말 필요한 거라면

수요일 오후에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고

판단되었을 때 바로 조치를 취해

목요일엔 아무도 이용하지 못하게

막았어야 했다.

지금은 너무 늦었고,

일요일엔 '비' 예보도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비가 오고 있다)

3. 공원의 '개'들을 노린 증오 범죄였을까?

무참히 희생당한 개들의 부검 결과가

정확히 공유되지 않는 현시점에서는

그 어떤 추론도 위험해 보인다.

*한 견주의 두 마리 개가 동시에 당했다는 게

현재로선 가장 유의미한 단서가 아닐까.


*이것은 잘못된 정보임을 알립니다.

수원애견모임의 D가 10월 17일

오후 6시 40분에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피해 견주는 두 분이라고 합니다.

아내와 내가 이 정보를 접하고 받은

충격에 대해선 다음 회에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새벽 4시.

꽃개가 나를 깨웠다.

옷을 꿰어 입고,

손전등과 배변 봉투와 가슴 줄을 챙겼다.

서둘러 나간 꽃개는 빅 똥을 쌌다.

변기에 내리면 막힐 거라고 직감할 수 있는.

(실제로 막혀서 뚫었다.

뚫어뻥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나는 일찌감치 미쳤을 것이다)

냄새가 굉장히 심한 똥이었다.

꽃개 똥을 1년 3개월째 치우고 있지만

가장 역한 똥이었다.

꽃개는 서둘러 어디론가 갔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었다.

맙소사.

똥을 또 쌌다.

늪 같이 질척거리는 똥.

(이 똥은 오전 10시에 나와 치웠다)

꽃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파서, 불안한 것이다.

침대에 올려 같이 잤다.

그제야 겨우 녀석도 눈을 붙였다.

오늘 오전,

둥이네와 통화를 마친 아내가 전했다.

괜찮다고.

꽃개도 아침밥을 먹은 뒤로

한결 나아졌다.


4. 개 두 마리를 죽인 범인은 잡힐까?

멀쩡한 사람을 죽인 뒤 그 유가족까지

희롱해대는 이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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